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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Feb 01. 2024

“청소년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3)화. 박미나 청소년지도사


[고양신문] 박미나 마두청소년수련관 부장은 올해로 13년째 청소년지도사로 근무하며 고양시 청소년들과 사회참여활동, 청소년의회, 자치동아리활동 등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달의 사람책 인터뷰는 스승의 날을 맞아 마을 속 다양한 청소년들에게 동네누나이지 언니로, 동시에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는 청소년지도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청소년지도사 선생님들은 청소년들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청소년의 삶과 직결된 다양한 문제와 고민을 청소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보니 매번 조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자유와 방임은 한끝차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자율에도 학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은 하고 싶은 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해야 하는 일도 적절하게 경험해야 하죠. 그렇다보니 청소년지도사들은 연차가 쌓일수록 청소년의 친구로서 때로는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공부도 많아지고 고민도 점점 많아집니다.”




■ 본인은 어떤 청소년이었나요?


저는 흔히 말하는 모범청소년이었습니다. 일탈도 없고 재미없는 학생이었죠. 어려서부터 제가 살고 있는 고양시를 무척 좋아했지만 막상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당시 저와 학급친구들은 성적 때문에 서로를 경쟁자로만 생각했지, 서로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서 돌아보니 학창시절 때부터 이어진 친구가 저에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분명 학창시절을 충실하게 보냈는데 나에게 남은 친구들은 왜 이리도 없을까?’라는 생각을 제법 오래 하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지금은 청소년지도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10대 때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고 그저 주어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청소년시기를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만약 제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수련관이나 저와 같은 청소년지도사 선생님들이 주변에 있었다면 아마 제 삶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청소년활동을 경험하고 제 삶을 전환할 수 있었다면, 스스로를 좀 더 빨리 발견하고 당시 내 안에 있던 고민과 질문들도 더 많이 해소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지금도 강합니다. 


돌아보니 제가 청소년지도사가 되고 고양시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나처럼 청소년시기를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활동하는 청소년들에게 적어도 청소년기에 좋은 기억을 하나라도 남겨주고 싶어서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일을 많이 벌리고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업무에 에너지를 많이 쏟다보니 자주 방전되기도 하여 가족들이나 동료들이 걱정하기도 하였는데 청소년들을 보면 다시 금방 충천되고 다시 또 금방 건강해지는 모습에 직장동료들이 ‘뼈지사’ (뼛속까지 청소년지도사)라고 놀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건 저뿐만 아니라 고양시의 다른 청소년지도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합니다. 




■ 청소년지도사 활동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을 말씀해주세요.


너무 많습니다. 질문을 듣고 보니 새삼 내가 정말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제 결혼식 때 10년 전부터 봐왔던 청소년들이 저 몰래 축가를 준비하여 불러줬던 순간입니다. 당시 일하랴 결혼식 준비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청소년들이 남편하고 몰래 짜고 식장이랑 따로 연락하여 축가를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결혼식 당일까지 전혀 몰랐죠. 막연하게 있던 제 로망 중 하나가 결혼식 때 축가를 청소년들이 불러주는 거였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 때 정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가 정을 주었던 청소년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곁을 내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청소년지도사는 정말 뿌듯한 직업입니다. 직장이 아닌 하나의 직업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성장하며 서로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고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죠.


작년 고양시 청년서포터즈(토스터즈) 친구들과 축제에 참여했던 사진




■ 최근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최근에는 주변을 살피며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차로 출퇴근할 때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왔습니다. 일도 마찬가지였고요.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덕분일까요? 지금은 제 주변을 잘 돌아보게 됩니다. 어제는 근무시간이 끝나고 청소년 때부터 봐왔던 22살~26살 친구들이 스승의 날을 빙자해서 찾아왔습니다. 서로 근황토크도 하고 취업준비를 한다고 서로 자소서 쓴 걸 봐주기도 했는데 저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상입니다. 어제는 저에게 무척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 청소년들과 관련한 직업을 갖게 된 계기는 무얼까요?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청소년지도사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깐. 아이가 너무 좋아서 막연하게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었는데 당시 언니에게 ‘네가 퍽이나’ 같은 놀림만 받았습니다. 결국 아동학과와 청소년학과 중에서 청소년학과를 들어갔는데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실상은 쉽지 않고 어려운 것도 많았으나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인생에서 자기 전공을 토대로 직업이나 진로를 갖기가 쉽지 않은데 그에 비하면 저는 운이 아주 좋았죠. 이 일은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큰 매력입니다. 비단 선생님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보고 좋은 영향을 받거나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이 일을 하게 된 것에 크나큰 감사함과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 요즘 청소년들의 눈에 띄는 특징이나 개성이 있나요?


제가 봐왔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자신을 잘 표현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노력하는 모습도 많이 봐왔죠. 그게 비록 어른들 입장에서는 다소 불안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제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수련관은 밀집된 학원가에 있다 보니 학업걱정을 하는 친구들이나 학원을 오가며 갑갑해 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입니다.


학원에 안가고 땡땡이를 치는 친구들도 종종 보이고, 심지어는 가출을 하고 싶은데 쉼터를 찾아 달라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당시 그 친구는 핸드폰 때문에 부모님과 다툼이 있었는데 카톡 등 자신의 사생활을 부모님이 침범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요즘 청소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와 주장을 제법 자연스럽게 인지하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나 미디어가 부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더라도 쉼터라는 정보를 확인하거나 조금이라도 안전한 환경을 청소년들이 직접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은 자신이 처한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제법 뚜렷하게 고민합니다. 결국 가출했던 친구는 어머니와 원만하게 서로 잘 해결되었고 기관과 서로에게 고마워하며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죠. 이걸 보니 어른들과 선생님은 청소년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기보다는 문제해결법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기여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죠.


제안창작소 마지막 공유회 사진


프레임 속 프레임 장애청소년 활동사진




■ 스승, 혹은 선생님이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나요?


저에게 스승은 격식이 없고 위화감이 없는 사람, 문턱이 낮은 사람입니다. 내가 나이가 들면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라고 생각되는 사람, 한번은 그 인생을 따라해 보고 싶은 사람이 저에게는 스승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청소년들과 함께 길을 걷는 동반자이자 좋은 길로 가게 만드는 나침반 같은 선배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청소년들이 저에게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받은 만큼 저도 돌려주고 싶어요.’라고.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이 역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승과 선생님들에게 저 역시 받은 만큼, 청소년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며 나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나요?


저는 무서움을 먼저 배웠습니다. 청소년들은 진짜 거울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내 앞에 있는 청소년들을 통해 고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매번 조심하고 또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 앞에서는 적어도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동시에 청소년들의 다양한 개성과 에너지를 저 역시 흡수하고 배우면서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크고 밝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들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저에게는 이런 배움 하나하나가 쌓여 스스로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 청소년들과 동네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꼭 청소년과 어른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이 지역을 살고 있는 시민들이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모든 일을 함께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가 있을 수 있지만 지역에 애정을 갖고 청소년들이 또 주민들이 함께 좋아지고 서로가 변화하는 모습을 경험하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자연스레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신뢰하며 보다 많은 일들을 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나요?


 주도적으로 청소년활동에 참여했더라면 제가 조금 더 빨리 성장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제게는 늘 가슴 한 편에 있습니다. 저는 결국 이 걸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더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이 되었다면 지금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지금도 큽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청소년지도사들에게는 늘 청소년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조금 더 준비된 선생님이었다면, 내가 조금 더 경험 있고 조금 더 많이 아는 선생님이었다면 지금의 아이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어른, 조금 더 괜찮은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미안함이요. 




■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청소년지도사를 한 지 벌써 13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흔히 말해 고인물 청소년이 진짜 많습니다. 심지어 수련관 개관멤버도 있고요. 말 그대로 이 공간과 시설의 주인인 청소년들이 고양시에는 이제 많아졌습니다. 청소년 당사자로서 시설에 대한 애정도 많고 청소년사업이나 정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죠. 저는 이 친구들이 또 다른 선배, 또 다른 선생님이 되어 새로운 청소년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청소년들이 입시나 군대, 취업 등 서로의 관계가 잠시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금 서로가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이 청년, 어른, 시민이 되어도 함께 어울릴 있는 관계를 말이죠. 이 흐름이 끊기지 않고 더 나아가 고양시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청소년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에 앞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출처 : 고양신문

“청소년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 고양사람들 < 지역 < 뉴스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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