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사람도서관 (2)화. 정현석 뜨렌비팜 대표
정현석 뜨렌비팜 대표
[고양신문] 정현석 뜨렌비팜 대표(59세)는 정서적 돌봄이 가능한 사회적 농장(케어팜)을 고양시에서 10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경계선지능인, 외국인노동자, 열대작물, 공정무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과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금번의 사람도서관 인터뷰는 장애를 가진 이웃들도 마을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시민들이 어떤 고민과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하고자 진행되었습니다.
“고양시에도 무려 10만 명의 경계선지능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왜 친구와 이웃이 필요 없겠어요? 내 아이만 보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그 안에서 내 아이들도 함께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듯, 다양한 개성의 이웃들을 보호하는 일이 결국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고향이 고양시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하고 썰매를 자주 탔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아이들과 콩깍지를 까고 달디 단 목화꽃도 따먹고 봄이면 송화가루를 따서 많이 먹었습니다. 봄부터 여름 접어들기 전까지는 비료포대를 타고 놀았어요. 그 당시 비료포대는 아무나 타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름 그 지역에서 잘 사는 친구가 비료포대를 가져오면 그거 하나 가지고 친구들과 다 같이 포대가 뚫어질 때까지 타고 놀았어요.
■ 마을활동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마을 내에서 많은 것을 누렸고 느끼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마을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을에 필요한 일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많은 활동을 자부담이나 자력으로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제 귀에 들릴 때가 있습니다. 나이를 이 정도나 먹었지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전히 혼란스럽고 위축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활동도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데, 이럴 때마다 내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 최근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일주일에 2번씩 경계선지능인 친구들과 자립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느린학습자라고 부르는데 그런 생각을 비우고 그냥 동네청년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이 농장에 오면 매번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하는 걸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마을주민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시켜요. 일부러 동네주민들과 자주 마주칠 수 있게 합니다.
친구들과 오전에는 농사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여러 교육활동 등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고양시에서 기후변화와 열대작물과 관련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마을주민들과 열대작물을 시험재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 자라는 열대작물이나 과일을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주민, 이주민들 여럿이 함께 방문하는데 열대작물로 그 나라의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등 교류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립자원프로그램 활동 모습
■ 느린학습자들과 함께 농업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요.
농사를 지은 지는 10년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10년 전에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는데 사회복지자격을 취득하려면 현장실습이 필수입니다. 청소년쉼터와 지역아동센터에서 한 달 동안 실습을 거쳤고 실습이 끝나고도 그곳에서 1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청소년쉼터 친구들 중에서도 경계선지능인 친구들을 거기서 처음 만났는데 그 친구들은 기관에서도 방임하고 주변에서 폭행수준의 왕따까지 당한 경험이 있던 터라 유독 눈에 밟혀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대다수의 경계선지능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별도의 법적 보호와 혜택을 받지 못하고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데 그 숫자가 무려 국민의 12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고양시에도 무려 10만 명의 경계선지능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조금 더 괜찮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일자리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그런 일자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는 고민을 계속 하였습니다.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귀천이 없는 일자리이면서 남들은 잘 모르는, 그래서 경쟁이 심하지 않은 일자리가 무얼까 고민하다가 결국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커피가 엄청 유행할 때라 커피를 접하게 되었고 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죠. 저는 카페 창업보다는 커피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제3세계 소수민족들과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다 공정무역과 열대작물을 아우르는 활동들까지 눈에 뜨게 되었습니다. 열대작물 대다수가 경업회피작물들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농산부산물로 가공이 될 수 있어 다양한 개성의 사회약자들에게도 적합한 일이라 판단하였습니다.
농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이 파생가능한데 경계선지능인 친구들에게 농업과 관련하여 다양한 길과 기회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서울에는 경계선지능인들을 위한 시설과 정책이 다른 곳에 비해 잘 구축되어 있는데 서울의 한 관련기관에서 농업파트를 맡아 달라 연락받아 자립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올해에는 고양시, 파주시, 주변 분들까지 관련 문의와 연락이 종종 오고 있습니다.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없으니 경계선지능인들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무한 반복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이와 달리 경계선지능인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원리나 이해에 대한 학습이 되어야 하며 이들을 위한 대화방식과 별도의 커리큘럼 등이 따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충분한 배려와 관심 속에서 이들 역시 사회구성원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육과 각종 정책에서 소외되는 게 현실입니다. 이 많은 수의 시민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 장애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장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을 부적절하게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다르다는 게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표현과 시선들이 다양한 개성의 장애인들을 대중 앞에서 나서지 못하게 만들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경계선지능인들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길을 잘 외우지 못해 밖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사회적 접점이 없다보니 언어나 정서 등 많은 부분에서 퇴행을 겪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친구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가 어렵고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왕따나 군대의 관심사병의 주 타깃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 구박당하고 조롱당하고 무시당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 농장에 오는 경계선지능인 친구들도 농업이 좋아서 오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거나 어울리면 너무 구박 받는데, 농업은 혼자서도 작업할 수 있는 일이니깐, 사람들과 어울려 작업하지도 않으니 오는 거죠. 항상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친구들을 대하지만 매번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후천적 경계선지능인의 경우, 유아 때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방임되었을 때, 초등학교 고학년 때 왕따 등 정서적 충격 등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친구들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많은 부분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때로는 머리로는 이해를 했을지라도 몸은 안 따라가는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스트레스가 굉장히 커요. 반복해서 설명해줘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사회의 교육과 많은 부분이 조급하고 경쟁적이라 충분히 이전보다 좋아질 수 있는 친구들 역시 악화나 퇴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농업이나 마을활동이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을 연결시키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을까요.
아주 좋죠. 조금이나마 자연스레 자연과 사람들과 스킨십을 한다는 게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혼자 작업할 수 있다 해도 결국 농업은 땀을 흘리면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농업에는 다양한 과정과 일들이 있어서 장애인, 비장애인을 따로 구분할 필요없이 각자 맡은 역할에 집중하거나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어요.
■ 느린학습자들과 함께 활동하며 나는 무엇을 느꼈나요.
만족감보다는 사실 중압감이 더 많습니다. 함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는데, 발달장애 쪽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경계선지능인은 대학, 사회복지 쪽에서 잘 다루지 않아요. 혼자다 보니 내가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고 관련하고 논의할 사람도 찾기 쉽지 않아요.
서울에서는 경계선지능인과 관련하여 시조례, 구조례가 잘 되어 있는데다 작년 6월에 경계선지능인과 관련해서 평생교육지원센터가 생겼습니다. 서울시민은 무료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고양시민들은 학비를 내야하는 상황이죠. 고양시에는 작년 12월에도 관련 조례가 통과되었지만 후속 행정조치가 따로 일어나지 않아 많이 아쉽습니다.
■ 느린학습자들과 동네 주민들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친구들은 사람 눈치를 너무 많이 봅니다. 눈치를 보는 게 거의 생활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다보니 평범하게 흐를 수 있는 대화에도 이 친구들은 야단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지마, 안 돼’ 등 집에서도 밖에서도 야단, 잔소리, 구박을 받다보니 항상 주눅들어 있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 나누는 법이 늘 어렵다보니 사회적 퇴행이나 퇴화가 되어가는 친구들이 많아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맞장구를 잘 쳐주는 친구와 이웃이 필요합니다. 마을과 주민들이 이런 역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진짜 이웃집 아저씨가 되고 싶어요. 아침에 눈 떠서 사람들과 눈 맞추며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에서 재미난 일들이 있으면 같이 재미있게 하고. 옛날에는 이런 아저씨들이, 아줌마들이, 형과 누나들이 내 주변에는 많았어요. 저도 그런 사람들이 되고 싶습니다. 옛날에는 못 살아도 잘못된 게 아니었어요. 못 살아도 따뜻하게 살았어요. 지나가도 마당의 평상에다 밥 먹다가 한술 뜨고 가라거나 따뜻한 인사말을 해주거나. 그 시절 어른들의 모습을 저는 지금도 닮고 싶습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나요.
경계선지능인들이 평소에도 훈련하고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나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학원이나 기관, 시설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시장 같은 곳에서 자기가 배워본 걸 활용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배운 걸 현장에서 써보고 체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본인이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꿉니다.
출처 : 고양신문
“우리에겐 맞장구 잘 쳐주는 이웃이 필요합니다” < 마이고양 < 뉴스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인터뷰 #고양신문 #글쓰기 #마을공동체 #마을활동가 #사회적농장 #carefarm
#민주시민 #장애 #경계선지능 #이웃 #마을 #농업 #느린학습자 #사람도서관 #사람책
#Human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