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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Jan 30. 2024

“문화예술 통해 나와 이웃의
자존감 채울 수 있었죠”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1)화. 정현식 예술수색단 대표

[고양신문] 고양신문은 이번호부터 고양시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웃시민들의 이야기와 일상을 조금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월 1회 ‘사람책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인터뷰는 지난 2015년부터 장애인, 탈북자, 청년 등 다양한 시민들 이야기를 사람책으로 담아낸 나경호 지역활동가가 진행합니다.   


첫 인터뷰 대상자인 예술수색단 정현식 대표(49세)는 20년 동안 재개발 문제로 인해 시간이 멈춰있던 서울 수색동에서 비어있는 공간과 예술,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활동을 2014년부터 진행해왔습니다. 현재는 고양시 능곡동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재발견’이라는 비전으로 마을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문화기획학교 멘토 강의를 하고 있는 예술수색단 정현식 대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소한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 과정이 서로의 삶에 능동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좋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능곡이 일상에서 문화와 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예술가 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린 시절 의정부에 살던 외할아버지가 자전거 뒤에다 대추나무를 실어 쌍문동에 있는 저희 집까지 오셨는데 저희 집 마당에 그 나무를 손수 심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마당에는 여러 나무들이 있었고 당시 나무에서 나오는 대추랑 앵두를 제철마다 어린 저는 맛있게 먹었죠. 마당 뒤편에 계단 위를 올라가면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옆집 벽을 넘으면, 같은 구조의 옆집 장독대 공간이 있어서, 대문보다 장독대가 있는 공간의 벽을 넘어 옆집 동갑내기 친구와 자주 어울렸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의 권유도 있었고 아버지의 먼 친척이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이셔서 소개를 받아 돈암동에 있는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고2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학교의 기억보다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리던 기억이 더 많이 생각나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저는 내가 미술을 과연 좋아하는지, 내가 왜 미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반복적으로 그림만 그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시절을 떠올려보면 입시미술 중심이다 보니 즐거운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 살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 중 하나를 말씀해주세요.


바로 대학에 합격을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익근무요원 군복무를 하고 미술강사나 호프집 등 여러 알바를 전전했어요. 그러다 98학번으로 홍익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5수로 들어가게 되었더라고요. 근데 입학하자마자 IMF가 터지고 아버지는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꿈에 그리던 대학교였지만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굉장히 힘들어하며 현실 도피하듯이 술에 빠져 지냈는데 후회가 많이 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4월부터 ‘의정부 문화예술기획학교’에서 멘토로 출강을 나가는데 요즘 청년들을 보면 그 시절 제 모습이 자주 떠오릅니다. 정말 상황이 안 좋았지만 그럼에도 학교에서 그 시절만 누릴 수 있는 좋은 경험과 감정을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 젊은 나는 계속 도망만 다니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지금도 간혹 후회될 때가 있습니다.


■ 살면서 가장 눈부셨던 순간을 설명해주세요.


작년에 멘토로 활동했던 ‘의정부 문화예술기획학교’가 저에게는 유의미하고 무척 재밌었습니다. 이십대 초중반 친구들이 문화기획이라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좋았고, 누군가의 앞에서 제가 아는 것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에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지역에서의 문화기획이 저에게는 가장 큰 고민인데, 같은 고민을 하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니 오히려 배우고 느끼는 점도 많았고 덕분에 힘이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  최근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문화기획 쪽 일들은 겨울에 완전 비수기입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 낮에는 라이더로, 밤에는 대리운전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최근 무언가가 자꾸 여러 의미로 리셋되는 기분입니다. 배달일을 하다 보면 몇 천원 단위에 민감해지고 크고 작은 여러 자극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일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이 일을 하면서 한 분 한 분이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최근에는 봄도 오고 위드코로나가 되면서 본업인 문화기획 쪽 일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예술가는 ‘예민하다. 민감하다’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예술가는 사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은 남들이 쉽게 넘기는 감정이나 사건에서도 다양한 자극을 받고 동시에 그 자극을 소중하게 다루는데, 저는 이런 행위나 시도들이 예술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소한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 과정이 서로의 삶에 능동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좋은 예술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 예술 때문에 나는 무엇을 얻었나요?


2014년 겨울, 수색동에서 ‘예술수색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으로 100만원을 지원받아 당시 작업실이 있는 건물주분께 말씀드려 벽화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빈 점포 ‘작은공간’에서 예술가를 초대해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건물주는 임대를 홍보하는 <임대중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지역주민이 문화향유를 할 수 있는 1석3조의 프로젝트였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음 해에는 4군데의 빈 공간과 4명의 작가를 초대해 확장된 <임대중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임대중 프로젝트를 문화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면서 반응이 좋아 동대문 DDP에서 전시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술가&문화기획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지역상인분들이 함께 공통적으로 만족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자주 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시하는 거라면, 문화기획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예술을 찾아가는 거라 생각해요. 예술과 문화기획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보니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자존감이 점점 높아지는 경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수색단 활동을 하면서 내 스스로가 삶의 주인공임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남들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하거나, 남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것들을 창작하는 예술도 있겠지만, 저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나와 다른 이웃들의 만족감과 자존감을 동시에 고려하는 예술도 존재한다 생각합니다.




■ 능곡은 어떤 곳인가요? 


예술수색단으로 활동하면서 점점 동네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수색이라는 마을에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색동은 20년 동안 재개발을 추진하는 동네였는데 주민들의 갈등으로 위태해 보이는 공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수색과 지금의 능곡이 저에게는 많은 것이 겹쳐 보였습니다. 1904년 경의선이 만들어질 때 생긴 역이고 전통시장이 있고, 오래된 원도심 구조에 심지어 철로 밑에 있는 토끼굴까지 똑같았습니다. 비어있는 공간도 많았고요. 그러다보니 지금 나의 아내를 처음 만난 2009년부터 연애를 하면서 자주 능곡에 가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저에게 무척이나 관심이 가는 동네였습니다. 


당시 수색은 재개발로 인해 상황이 굉장히 날카로운 동네였습니다. 반면에 제가 능곡에 자리 잡을 때만해도 도시재생의 기류가 있다 보니 주민 한 분 한 분들이 마을에 정착하려 애쓰는 젊은 예술가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죠. 특히 지금도 능곡시장의 지역상인분들도 굉장히 잘 대해주시는데 이런 점 역시 저처럼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아주 좋은 환경이라 생각합니다. 능곡뿐만 아니라 고양시는 여전히 예술과 생활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지역이라 저희에게 아주 큰 기회의 선물을 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 어떤 친구와 이웃이 있으면 좋을까요?


현재 능곡에 자리 잡은 여러 예술가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홍대 인디밴드 씬에서 굵직한 하이미스터메모리, 김마스타처럼 능곡에 거주하고 활동하면서 지역과 예술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꿈과 방향을 바라보는 친구와 이웃들이 많이 있다면 아무래도 힘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능곡이 일상에서 문화와 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예술가 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어떤 인간이 되고 싶나요?


앞서 예술가로서 소통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정작 저는 스스로 소통을 잘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늘 고민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지금 현재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언제라도 극복가능한 한끝 차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잘 극복하고 소통을 더 잘 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면 지금보다 재밌고 멋진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나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미래의 나를 응원합니다.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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