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친구 10명을 우리 동네 능곡으로 이사시켰어요"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7화
하이미스터메모리(본명 박기혁)씨는 오랜 시간 홍대에서 활동하다가 10년 전 능곡으로 이사와 터를 잡았습니다. 주변 예술인 친구들과 지인들이 능곡에서 자리를 잡게 도울 정도로 능곡에 애정도 많습니다. 고향, 동네라는 단어가 희미해진 요즘, 한 예술인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어떠한 고민과 노력을 했는지, 또 주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능곡의 매력은 무엇인지 가늠하고자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다닥다닥 붙은 골목, 작은 땅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들이 많았습니다.”
“능곡은 홍대의 음악과 전통시장, 자연이
가깝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적 가능성과 기회의 마을입니다.”
“먼저 단골이 되어야 합니다. 마을에서 좋은 것을 소비해야 합니다.”
“내 음악이 이 세상에 국밥만큼 영향을 주고 있는가 고민하기도 합니다.”
■ 어린 시절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6~7살 즈음인가. 남가좌동 모래내에 대한 기억이 먼저 납니다. 제가 살던 남가동 2동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그게 50번 버스의 종점이었습니다. 저는 종점 옆 연흥교회 근처에 살았어요. 동네에서 조금만 더 가면 모래내시장도 있었고요. 저는 4살 때부터 엄마 손을 붙잡고 교회에 다녔고 그때 교회친구들과 많이 놀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골목에 대한 기억이 무척 많습니다. 저한테는 정겹고 그리운 풍경입니다. 다닥다닥 붙은 골목에서 작은 저와 제 친구들이 할 수 있는 놀이들, 작은 땅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들이 많았습니다. 땅따먹기, 구슬치기, 술래잡기, 숨바꼭질 등.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끔 그 장소가 생각나 가볼 때가 있어요. 아쉽게도 그때마다 풍경이 점차 사라지더니, 어린 시절의 풍경 중 지금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건 밤하늘의 달밖에 없더라고요.
■ 간단한 개인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이미스터메모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싱어송라이터 하이미스터메모리입니다. 이름은 말 그대로 ‘안녕, 기억씨’라는 뜻입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이 보통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잖아요. 이름이 기혁인데 친구들이 자꾸 기억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오래했는데 공연하다가 알게 된 재일교포 첼리스트 친구가 저를 볼 때마다 “하이! 미스터메모리”라고 인사를 했던 게 좋아 지금도 이 긴 이름을 고수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누군가가 놀리지만, 어른이 되면 나를 놀려주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놀린다는 의미로 이 이름을 가지고 활동합니다. 살아보니 저는 미래나 앞을 바라보는 사람보다는, 뒤를 돌아보거나 지나간 것을 자주 떠올리고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이 지금의 저와는 잘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 어떻게 가수가 되었나요. 그리고 노래 중 ‘다시 비가 내리네’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저는 원래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직접 각본을 쓰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 극작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습니다. 극단 산울림 22기로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활동했죠. 군대를 다녀오니 막상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때 중학교 때 같이 연주하던 형이 ‘연주를 다시 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줬어요.
원래는 연극계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부터 아르바이트식으로 가볍게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 내가 소질이 있구나 싶었어요. 극작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가사를 쓸 일이 많았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하니 연기와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했으니깐. 자연스럽게 학업을 접고 음악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다시 비가 내리네’ 라는 곡은, 2002년도에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신촌에 있는 집까지 걸어왔죠. 긴 시간이었는데 그때 용미리 언덕에서부터 비가 무척 많이 왔습니다. 심신이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오는 길에 아버지와 저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세차게 오는 비를 보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죠. 개인적인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비에 대한 추억들을 모아 하나의 곡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당시에는 간절했습니다. 사람들 모두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니깐.
그래서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편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실 때는 ‘비가 억수로 오는데 우산 없이 걸어도 되겠다 라고 마음먹은 날을 떠올리며’ 들으시라고.
■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여긴다 들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제 노래에는 딱히 메시지가 없습니다. 저라는 에너지가 관객과 부딪쳐 함께 즐거워질 때, 발생하는 이 분위기와 에너지를 저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 제 노래가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부로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건 아닙니다. ‘장터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라는 문구가 제 슬로건입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 행복한 얼굴로 집에 돌아가게끔 하는 게 가수로서 저의 목표입니다. 너무나 어려운 목표입니다만.
음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비싼 호텔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웬 허름한 점퍼의 아저씨가 야외수영장에서 신청곡 쪽지를 하나 주고 가시더라고요. 내용은 이랬습니다. '사업을 하다 집이 망했는데, 마지막으로 좋은 호텔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인생을 마무리 하려 했다'고. '그런데 제가 부른 노래로 마누라도 생각나고 딸내미도 생각나서 다시 살기로 했다. 그래서 고맙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이게 장난이 아닌 일이구나. 진심으로 해야 하는 일이구나. 내가 미처 모르는 순간에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이어졌는데 이게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 ‘능곡의 아들’로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능곡에 애착이 많은 것 같은데, 다른 고양시민들에게 능곡이 어떤 마을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능곡은 홍대에서 20분 거리, 일산에서 20분 걸리는 곳입니다. 가까운 곳에 행주산성이 있죠. 도시와 시골, 전통시장과 자연, 이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홍대의 음악과 전통시장의 문화, 자연이 언제든 가깝게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저의 주요 거주지는 10년 동안 홍대였습니다. 그때 친구가 능곡에 살아서 921번 버스를 타고 매번 여기로 놀러왔습니다. 홍대와 능곡 사이에는 정류장이 없어서 한 번에 직행으로 옵니다. 15분도 안 걸리죠. 조금만 움직여도 친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 좋았고 거기다 동네도 그 자체로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마침 작업실도 이곳 능곡에 마련되었고요. 홍대에서 이사를 가야할 때가 왔는데 상수, 연남 이런 곳보다는 자연스럽게 능곡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살다 보니깐 너무 좋았습니다. 제 어렸을 때의 감상과 이 동네는 너무 많이 닮아있었으니깐.
저와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 홍대에서 이곳 능곡으로 자주 놀러왔어요. 그러다 친구들의 집을 여기서 구해주게 되었죠. 10년 동안 예술인 10명 정도를 이사시켰습니다. 거주 환경도 홍대에 비해 훨씬 좋았고, 연습실은 같이 쓰면 되었으니깐. 비록 제 집은 아니지만 저는 부동산을 일일이 들러서 남의 집을 구해주는 취미가 있습니다. 이사도 공짜로 시켜줬습니다. 주변 지인 중에 탑차를 가지고 피아노를 운반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차로 이사도 시켰죠. 음악, 미술, 예술 하는 친구들이 점차 하나하나 넘어왔고 지금의 작업실에 모이게 된 거죠.
처음에 이 능곡작업실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준 형의 힘이 컸죠. 이 공간 때문에 결국 하나둘 모였으니깐. 저희가 떼로 몰려다니며 7~8년 동안 능곡에서 마신 술이 얼마겠습니까? 가게 주인들이 저희 정체를 궁금해 했어요. 가수라고 했는데 다들 안 믿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동료들과 7~8년 동안 다닌 식당, 술집의 주인분들을 모셔서 작업실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에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당일 공연 때 시장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금일봉도 주시고, 소주도 몇 박스 주시고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홍대에 가지 않고 이곳에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능곡에서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전부 없어진 시절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술을 먹다보면 저기 길 건너편 토당문화플랫폼을 자주 보니깐 아! 저기서도 공연을 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공모사업을 받아 공연도 하고 그랬어요. 코로나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매월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때 만난 상인들과 주민들, 능곡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사람들, 동네에 또 다른 예술인들을 알게 되어 큰 힘이 되었죠.
그때부터 여기 시장에 있는 사람들, 음악이나 문화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만나 서로들 도와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렇게 능곡 이 마을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고 동네주민들에게 정이 엄청 많이 들었죠. 그때부터 주변 예술인들이 저를 ‘능곡밖에 모르는 바보, 능곡의 아들’이라고 재미삼아 불렸던 것 같아요.
■ 예술가들이 지역에 정착하여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혹은 무엇이 필요할까요.
술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좋은 것들을 마을에서 소비해야 합니다. 저는 귤이 맛있으면 귤을 사먹고 시장 콩물집에 매번 들러 맛있는 콩물을 사는 것처럼 몇 년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냈습니다. 우리가 이 마을에서 공연을 해보겠다거나, 다른 의도로 이 시장에서 7~8년 술밥을 사먹은 게 아니잖아요. 저희는 여기 주민이고,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맛있고 좋은 물건을 파는 집을 자연스레 찾아 다녔어요.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골이 되어야 합니다. 한두 번 들락날락 하는 것으로는 지역에 정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좋아할 만한 식당, 과일가게, 튀김가게 등을 찾는 일, 그리고 이런 것을 본인이 진심으로 좋아해야 마을에 정주하고 정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집이라는 게 동네라는 게 잠자고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삶과 문화를 향유해야 하는 곳이잖아요. 이런 마음으로 연주하는 예술인들을 시작으로, 홍대에 있는 예술인들을 모아다 자연스럽게 능곡에 터를 잡게 하였죠.
■ 과연 예술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질문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국밥이, 갈비가, 사과가, 빵이, 커피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을 대단한 걸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이 세상의 활력과 에너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건 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내가 하는 음악이 과연 이 국밥보다 나은가라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저는 예술이 이 세상의 작은 요소, 하나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예술에 가장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려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창할수록 힘들어지고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일단 좋은 음악으로, 제 곡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리고 꽤 괜찮은 사람이었어. 유쾌한 사람이었어. 기분 좋아지는 사람 정도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제 코로나도 끝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능곡에서 고양시로 활동반경이 넓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능곡만의 일, 이 동네만의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생각이 좀 더 확장된 것 같습니다. 이 장소도, 이 고장도 중요하지만, 결국 같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으니깐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있어서, 사람들이 있어서 여기가 더 좋았던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있어 행복했던 거라고. 마을이,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능곡은 여전히 산재한 문제도 많고, 좋은 점도 여전히 많은 동네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공연이 많아져서 바빠진 탓에, 최근 능곡에 좀 소홀해진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능곡이나 고양시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나 활동은 최대한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능곡작업실에서 방송, 강연, 교육프로그램 등 주민들과 함께 할 콘텐츠를 고민 중입니다. 이제는 스스로가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길 고대합니다.
자료출처: 고양신문
"문화적 가능성 큰 능곡, 10년간 예술가 10명 이사오게 했어요” < 인터뷰 < 지역 < 뉴스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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