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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Mar 20. 2024

8살 때부터 살았던 동네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8) 허지수 <독립서점 오후서재> 서재관리자

8살 때부터 살아온 동네에서 독립서점을 운영 중인 허지수씨. [사진 = 대화동 독립서점 오후서재, 허지수 서재관리자]


[고양신문]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나? 라는 주제는 취업과 창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 괴롭히고 고민에 빠지게 했습니다. 최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지역에서 찾고자 하는 고민과 시도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8살 때부터 살아온 동네에서 독립서점을 운영 중인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으려 합니다.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는 ‘혼자 일하는 게 좋지만 가끔은 심심한 사람들의 작업실’이라는 모토로 운영되는 독립서점 '오후서재'가 있습니다. 고향, 동네라는 단어가 희미해진 요즘, 서점을 운영하는 청년에게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이 있었는지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동네와 책방을 기반으로 다양한 로컬 콘텐츠제작이 가능합니다.”

“일산신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애정, 애환을 담아 

<일산신도시 키드>라는 비정기 잡지를 만들기도”


“책방보다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나의 존재가 가장 큰 강점”

“저는 제 인생에서 회사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없앴습니다.”


“혼자 일하는 게 좋지만 가끔은 심심한 사람들과 프리랜서들로 서점을 채웁니다.”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독립서점이 마을 커뮤니티를 돕는 역할을 하기도”




■ 어린 시절의 풍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제 눈 밑 꿰맨 상처가 보이나요? 제가 4살 때였나? 아버지와 어린 저는 서울에 있는 지점토 공예학원을 다니는 엄마를 데리러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자동차 창문 너머 어스름한 저녁의 서울과 반짝이는 풍경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당시에는 카시트가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뒷좌석에서 까불대던 제가 앞좌석을 머리로 들이받았어요. 피가 많이 났는데 그때 병원으로 옮겨진 4살의 조그만 허지수가 의사선생님한테 "살려 주세요"라고 외쳤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제가 8살 때 대화동 성저마을에 이사를 왔습니다. 당시 제가 다녔던 성저초등학교는 올 핑크색에 초록색 지붕이었는데, 그런 학교 모습은 어린 저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성저초는 '열린교육(지금의 ‘혁신학교’와 비슷한 개념)'을 하는 학교라서 저를 이곳에 입학시키기 위해 저희 부모님은 대화동에 터를 잡았습니다.


제 기억에 저의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에 비해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남달랐어요. 고등학교도 부모님이 먼저 제안해서 수사님이 운영하는 대안학교를 가게 되었고요. 부모님은 제가 책상에 앉아있는 것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기를 바라셨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저는 유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넉넉하지 않은 가산을 탕진했습니다. 돌아보니 노스페이스 롱패딩을 사달라는 요즘의 젊은 친구들보다 제가 더 큰 등골브레이커였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도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는 사실을 지금도 숨기고 다닙니다. 영국 가서 자신감만 배우고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외국인들한테 영어가 아닌 자신감으로 대화를 합니다.


보통 어학연수 끝나면 다른 부모님들의 경우, 재수학원을 보내거나 공부를 하라 했을 텐데 저의 부모님은 ‘성당에 가서 청년들이랑 캠핑 같은 거 하며 놀아라. 집에 있지 말고 밖에서 놀아라’ 이런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시로 대학을 늦게 갔죠.


그랬던 엄마가 이제는 변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이런저런 투자와 사업 등에 실패해서 마음이 조급해지셨나 봅니다. 서른 넘은 저에게 ‘너 이 자식 공부를 왜 안 했냐? 네가 진작 좋은 대학가서 졸업하고 취업 잘했으면, 또 자격증 같은 거 공부하고 그랬으면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잘 살았지 않겠냐?’라고 하십니다. 지금의 서점을 차리기 전까지는 ‘능력 없으면 얼른 결혼이라도 해서 잘 살아야지’라는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곁에서 '너 하고 싶은 것 해라'라고 말씀하시니 저는 당시 중간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라며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완벽하지 않아도 저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부모입니다. 모든 사람이 늘 완벽하지 않잖아요? 저도 그렇고. 가끔씩 실수를 하실 때도 있지만 저에게는 늘 변함없이 좋은 부모님이셨어요.



일산신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의 애환과 고민이 담긴 '비정기 잡지 일산 신도시 키드'


 


■ 간단한 개인소개를 부탁드려요.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8살 때부터 살았던 동네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독립서점 오후서재와 저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서재관리자 허지수라고 합니다. 저는 출판계의 N잡러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동네를 기반으로 책방에서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고요. 동네산책 행사와 책방에서 저자 초대 북토크를 진행하고 최근에는 <일산 신도시키드> 라는 비정기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성저마을에서 동네새를 탐조하는 산책 프로그램을 올해 진행했는데 12종의 새를 마을주민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까치와 참새 같은 새뿐만 아니라 폴더 이름으로 익숙한 직박구리, 오목눈이, 검은색보다 하늘빛이 더 많은 예쁘게 생긴 물까치에다 딱따구리 흔적까지 발견했죠. 반가운 손님이 오면 까치가 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일 수도 있다 합니다. 까치는 생각보다 똑똑해서 동네사람을 얼추 기억해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우는 것일 수도 있다는 탐조선생님의 말씀도 흥미로웠고요. 재밌죠?


뉴시티 로컬 매거진 <일산 신도시키드>는 1기 신도시 일산에서 나고 자라서 신도시를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잡지에는 키드들이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 추억으로 신도시를 다시 바라보는 시도가 담겨있습니다. 이 비정기 잡지에는 신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애정, 애환 같은 게 담겨 있습니다. 왜 '경기도민의 애환'같은 단어가 있잖아요. 경기도민이 서울에 출퇴근하며 하루에 몇 시간씩 써야하는 에피소드처럼 일산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일산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소개하려는 의도와 기획으로 잡지를 제작했습니다.



오후서재에서 동네를 기반으로 만든 각종 로컬콘텐츠.




■ 동네에 독립서점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독립서점을 좋아해서 연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열었던 게 큽니다. 저에게는 독립출판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 작가로서의 짧은 경험도 있고, 출판사 마케터로 일했던 경험, 공공기관 근무경험 등이 있다 보니 책방에서 이뤄지는 북토크 행사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열었습니다.


동네에 서점을 열게 된 것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 돈 때문이었습니다. 커다란 의식이나 소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월세의 장소를 구했는데 그게 마침 우리 동네였던 거죠. 서점을 열면서 이 조그마한 서점에 대체할 수 없는 강점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저의 존재가 가장 큰 강점이었고, 저 역시 로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도 서점운영의 중요한 동력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안됐어요. 물론 지금도 그리 잘 되지 않지만. 덕분에 긴 시간동안 서점운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서점을 그만두고 돌아갈 때가 없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제 인생에서 회사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없앴습니다. 그래서 서점을 접는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지 않았고 저에게 처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종 교육과 행사, 프로그램 등.


 


■ 고양시는 독립서점 같은 동네공간을 열기 좋은 마을인가요.



특별히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청년이 타깃층인 독립서점을 차리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서울에는 인테리어가 멋있고, 책도 많이 비치되어 있고, 북토크에 초대할 수 있는 쟁쟁한 작가들과 관련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조금만 걸으면 인근에 다양한 멋진 시설과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잖아요. 그래서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서울에 가서 자기 욕구를 다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굳이 동네의 서점을 찾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고양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책방지기들도 많습니다. 서울책방의 지기들은 재밌게도 경기도민들이 참 많더라고요. 고양시에서 한 명 모을 행사면, 서울에서는 열 명이 오거든요. 같은 노력에 비해 성과도,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동력도 다른 것 같아요. 덕분에 서울의 책방들은 월세가 높아도 유동인구가 높아 매출을 올리고 월세를 상쇄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합니다. 서울의 책방들은 고양시와 달리 평일에도 서점을 찾는 손님이 많다 하더라고요.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자리한 독립서점 오후서재의 내외부 모습.



■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이 오후서재에 자주 오나요.



제가 서점고객으로 타깃하고 있는 사람들은 프리랜서들입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말하면 혼자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혼자 일하는 게 좋지만 가끔은 심심한 사람들의 작업실’이 오후서재의 모토입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프리랜서끼리 이 공간에 만나 주간회의를 합니다. 특히 회의를 빙자한 클라이언트 성토대회를 주로 하죠. 그중에서 제가 성토를 제일 많이 합니다. 이곳에는 창작자 기질을 가진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옵니다. 영상작업가, 시나리오작가, 번역가, 웹소설 작가, 웹소설 전문 번역가 등. 최근 한국 웹툰이나 웹소설이 해외에 인기다보니 이를 번역하는 전문가들도 생겨나고 있다더군요. 나름 같은 기질을 지닌 동종업계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다들 전문영역이 있고 서로의 성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협업하기 편합니다. 가까운 지역 안에서 전문가들을 만나는 건 서로에게 정말 좋은 일입니다. 이 프리랜서 모임과 네트워크가 저에게는 서점을 운영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죠.




■ 독립서점은 마을과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는 공간인가요.



과거에는 작은도서관이 마을커뮤니티 역할을 주로 했는데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독립서점이 마을 커뮤니티를 돕는 역할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어느 지역에도 책생태계가 있는데 공공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등이 커버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동네책방, 독립서점이 있으면 이런 사각지대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고양시는 다행히 좋은 점 중 하나가 공공도서관들이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도록 시스템이 마련됐습니다. 경기인증서점을 받을 조건이 되면 도서관 납품 자격이 됩니다. 전국의 모든 동네와 책방이 전부 다 이렇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공공도서관이 지역 책생태계의 허브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각 지역서점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는데 모객에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지역서점의 행사소식 등을 이용자들에게 공유해 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부 독립서점 주인장들은 지역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책을 빌려보니 서점운영이 어렵다는 시선도 있는데, 책생태계 확장과 독서 사각지대 해소, 지역 도서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지역서점들과 공공도서관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오후서재가 어떤 서점이 됐으면 좋겠나요.



운영과 생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지, 서점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봤습니다. 나이가 점차 들다보니 사회적 사명 같은 게 저한테 필요하더라고요. 이전의 저는 지극히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저처럼 살아도, 독립서점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네’라는 생각의 씨앗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습니다. 오후서재가 저의 이런 바람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유명해지고 싶은 바람은 있는데 그건 ‘생계형 관종’ 같은 개념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유명해지고 싶지만, 유명해지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물론 조금 더 쉽게 먹고 살고 싶습니다만. 딱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쓰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100%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끔씩 사람들 안 볼 때 차도 없고 인적도 드문 폭이 좁은 도로에서 몰래 무단횡단도 해야 하고, 산책을 가다가 예쁜 꽃도 한번씩 꺾어줘야 하고, 남들 안보는 곳에서 흉도 좀 보고 세상욕도 좀 하고. 가끔 물욕에 로또도 사고 사치도 부려보고 돈 낭비도 하고! 아! 물론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음만 그렇다는 거죠. 가끔씩 못나고 찌질한 짓도 해줘야 착한 짓도 더 잘 할 수 있는 법입니다. 하하하. 저는 유재석처럼 살고 싶었지만 제 안에는 이경규, 김구라, 박명수 같은 존재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들이 저를 좀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제 얼굴도, 제 마음도, 지금 제가 하는 일도, 그리고 지저분한 내 방도. 많이 부족한 나지만 사람들이 귀엽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제 눈 밑의 상처처럼 저를 개구쟁이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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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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