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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경 Jan 14. 2016

Amor Fati

새벽... 그리고 생각 하나...



내 몸은 캘리포니아 시계처럼 .....


새벽 2시에 깨어나   조금만 더 잠들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더 이상 잠을 잘 수는 없겠구나 싶어 포기하고 거실로 나오면

그 시간까지 허기진 배를 안고 나를 기다리는 남편을 만난다.
,,,,,,,





며질 전, 응답하라 1988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 난다.
정환이와 정봉이의 엄마인 라미란은
오밤중에도 새끼가 배 고프다면 잠이 확 달아나면서
벌떡 일어나 기꺼이 밥상을 차려내게 되지만
어쩌다 남편이 배고프다는 말을 하면
속에서 화가 올라오고 분노가 치민다고.....

그래서 ....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싶어서 다시 생각하다보면
남편이 불쌍해진다고.....
그 구구절절 공감가는 심정을 젊은 작가가 어찌 알았을까?  





나 또한 밥상을 차리는 여자로 살았던 세월이 참으로 길었지만
내 일을 시작하면서 왠지 조금씩 냉장고 문을 덜 열고

밥솥과 냄비로 부터 멀어지게 된 듯 하다.
밥을 짓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온전한 내 일이 아닌 듯한 마음도 가끔 들었었다.

어쩜 밥 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키우던 그 시절이 지겨웠는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사람이 밥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고 회식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안에서의 내 일들과도 조금씩 멀어졌을지도....





아이들과 나는 모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식감이 주는 행복감도 좋고

접시에 담긴 음식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만족도 또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그래서 특별히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고집하는 욕구가 전혀 없다.
미국에 살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장성하여 어른이 된 내 아이들을  만나러 가서 함께 하는 날들도
브런치를 즐기고 sea food를 즐기는  글로벌한 식성이라
특별이 내나라 음식이 그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며
내 아이들도 밥에 대한 개념이나 쌀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은 듯 하다.

그래서 늘 다양한 음식을 차리리 즐겼는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의 기내식이었던 비빔밥은 감동이었다.
튜브에 담긴 고추장과 비닐에 담긴 참기름을 밥을 비비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갑자기 뒷맛이 깔끔한 그  비빔밥이 그리 맛나고 고향의 맛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 떠나 있던 고향에 돌아 온 듯한 이상한 마음이 들면서
그래.... 우리는 조선인이구나 ....
어쩌면 우리는  김치와 비빔밥과 된장의 힘으로 사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3시에 나는 착한여자처럼 육개장을 끓였다.
그리고 착한 결심도 한다.
이제부터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내 남편에게 좋은 여자가 되자고...
아이들에게로 기울던 내 지극한 사랑은 이제 조금씩 거두어
내 곁에서 나처럼 늙어가는 그를 더욱 사랑하자고....

아이들에겐 그들만의 제각각의 특별한 사랑의 몫이 있음을 더욱 인정하자고...

우리들의 오래 묵은 사랑이 때로는 무덤덤 하고

내 손과 그의 손의 촉감이 다름을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사랑이라 이름 붙일 뜨거움 대신 이불 깔린 구들장 온돌의 온기처럼 서로를 느끼는 그 사랑....







마음을 오가는 생각들을 다잡고 돌아보니

격하지 않고

선명하지 않고

분명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더욱 아름답다는 마음이 든다.

생각을 멈추고 돌아보니 육개장 한 그릇을 다 비워내고 땀을 닦으며 좋아하는 남편이 있다.

연신 잘 먹었다....수고했다...고맙다....당신이 최고다....

이런 말로 그는 자신의 미안함을 달래겠지만 나는 미안해진다.


어쩜 나는 참 나쁜 마누라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  또한 새벽생각 한 자락이 고맙다.

그리고 좀 더 나의 소중한 일상을 누리며 감사하며 나누고 향유해야겠다.
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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