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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굼벵이 Jan 14. 2023

밥 짓는 데 정성을 들여야겠지

설익은 죽을 만든 오늘

밥이 또 이상하게 됐다. 이사하고 가스레인지에서 하이라이트로 바뀌어 그런 것 같다. 냄비로 밥을 하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에서 밥을 할 땐 언제나 잘됐다. 불조절을 한 번 하면 크게 신경 쓸게 없었다. 그런데 이사하고부터 밥이 이상하게 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했는데 위쪽은 설익고 아래쪽은 퍼졌다. 시간을 더 들여야 하나 해서 처음부터 약불로 은근하게 했더니 위쪽은 더 설익고 아래쪽은 죽이 됐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


편이 전기밥솥을 사는 게 어떨까 했지만 거부했다. 나는 냄비가 편해다. 전기밥솥은 주방에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설거지에 손이 더 많이 간다. 그리고. 이대로 냄비밥을 포기할  없다. 자존심 문제.


유튜브에서 냄비밥하는 법을 검색해 영상 몇 개를 봤다.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 그중에 내 상황과 가장 잘 맞는 걸 골랐다. 설명대로 따라 하고 걱정스럽게 밥을 먹어보니 우와, 잘됐다. 나는 평소 밥을 안치면 불조절만 하고 냄비 속 쌀을 건드리지 않는데, 새로 시도한 방법은 어느 정도 물이 졸아들 때까지 쌀을 가끔 섞어주는 거였다. 내가 한 밥이 위아래가 다른 게 문제라 그 방법을 골랐다. 잘 익은 밥을 남편에게 주며 의기양양 어때? 잘하지?


그렇게 밥을 다시 잘하고 있었는데 요 며칠 밥이 또 이상하게 되고 있다. 초심을 잃은 건가. 계속 잘 되니까 자만했나 싶기도. 남편이 다시 전기밥솥 얘기를 한다. 또다시 이상한 밥을 줘서(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미안하지만 역시 지금도 자존심 문제다. 두 번이나 이러니 전기밥솥 생각이 나도 들지만 한번 더 시도해 보겠어, 마음을 다잡는다. 이상하게 된 밥은 나중에 내가 먹으려고 잘 정리해 냉동실에 넣고 다시 쌀을 씻는다. 그리고 또다시 영상을 찾아 공부. 아. 전에는 편하게 했는데 점점 밥 짓는데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남편과 내가 먹을 밥을 짓는 일이야말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편하고 쉽게 밥을 해 아낀 시간과 힘으로 무엇을 하려던 걸까. 그게 밥을 짓는 일보다 소중한 일이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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