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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굼벵이 Jan 31. 2023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데 안도했다.

뜻밖에 마음이 몽글해진 오늘

철학책을 읽고 있다. [물속의 철학자들] `일상에 흘러넘치는 철학에 대하여' 나가이 레이가 쓰고 김영현이 옮긴, 다다서재에서 펴낸 책이다.


책을 읽다 마음이 몽글해지는 구절을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과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고, 나는 바란다. 완전히 통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는 것,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타인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랐다.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해봤다. 나를 이해 못 해도 이해 못 하는 것에 절망한다면, 이해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다른 나라의 모르는 사람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를 몰라도 상관없다. 평생 만나서 얘기 나눌일도 없을 것 같지만, `이런 사람이 있구나'만으로 힘이 났다.


그런데 이어서는 더 아름다운 말이 나왔다. 그 구절을 읽고 나는 잠시, 그와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는 것,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아름다운 말. 동감한다.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정말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을까. 샤갈 그림 속 주인공이 내가 될 것 같다.


나를 정말 잘 이해하는 친구가 있었다. (`있었다'라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슬프다. 지금도 친구로 존재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연락이 뜸하다. 매우.) 그는 어떤 얘기를 해도 공감하고 이해해 주었다. 나아가 내 시선을 돌리고 시야를 넓혀 주었다. 새로운 창으로 상황을, 문제를 바라보게 해 줬다. 조언도 나에게 딱 맞게. 하지만 놀라운 건, 내가 간혹 1, 3, 6, 9로 말해도 1.1, 1.2, 1.3을 알아듣고 위안을 주었다는 거다. 그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있지만, 친구의 존재는 마음속 창문이었다. 난 가끔 혹은 종종 그 창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맞고 숨을 쉬었다.


그러던 친구가 멀어진 지금,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된 것 같다. 무언가 털어놓고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은 게 있다면 저자를 떠올릴 것이다. 멀리서, 이해 못 하는 것에 절망하며 같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을 말이다.


그리고, 하여, 나 또한 누군가에게, 당신을 이해한다고, 같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어보겠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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