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보는데 솥뚜껑에 김치 부침개를 부쳐 먹는 장면이 나왔다. 정말 맛있어 보여 해먹기로 결정. 신김치는 집에 있어 부침가루만 마트에서 구입했다. 오뚜기 부침가루를 사 와 반죽을 하려고 봉투를 뜯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려는데 유통기한 칸에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글귀가 하트와 함께 적혀 있다.
'나 아직 오늘 수고 안 끝났는데. 지금도 김치부침개 하려고 수고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흔한 말이 되었긴 해도 이 말이 이렇게 전혀 안 와닿을 수 있나 스스로 조금 놀랐다. 하지만 곧 내가 저 말을 들을 만큼 수고하고 있는 요즘이 아니라 그렇구나 깨달았다. 그런 지금의 내가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 글귀에 반발 같은 걸 하려고 한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매일이 수고였다. 퇴근시간 없는 일만 했다. 월간지를 만드는 일도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날은 한 달에 일주일이나 될까. 야근이 일상이고 마감이 가까워지면 철야도 하고, 정말 막바지에는 밤샘도 했다. 내가 밤에 잠을 안 자고 무언갈 할 수 있다는 걸 일을 하면서 알았다. 공부할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빵을 만드는 일도 퇴근시간이 없다. 그날그날 만들어야 하는 양이 다르고 그만큼을 다 만들어야 퇴근을 할 수 있다. 또 주방은 한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맡은 일을 다 했다고 해서 먼저 퇴근할 수도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일이 먼저 끝나면 다른 파트를 도와주고 함께 청소를 하며 함께 그날 일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내 일이 조금 남았는데 다른 파트 일이 끝나고 마무리할 기미가 보이면 빨리 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호흡이 두 배로 가빠지며 심장이 밖으로 나올 듯 빨리 뛰기 시작한다. 정 힘들겠다 싶으면 대충 정리해놓고 퇴근 조회를 한 후 남아서 여유롭게 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바쁠 때를 제외하고 보통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일을 하니 동료들의 퇴근을 늦추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야근이 익숙하고 바쁜 게 마음이 편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해가 떠 있을 때 퇴근을 하게 되면 어색했다. 일을 다 안 한 것 같아 불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 그리고 숨이 가빠질 만큼 바쁘게 일하는 것에 짜릿함마저 느끼게 됐다. 그 후에 숨을 길게 내 쉴 때의 여유가 좋았다고 할까. 바쁘고 힘들게 일하고 나야 쉬는 게 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활에 중독됐던 것 같다.
남편과 가게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바빴다. 조그만 가게여서 둘이 모든 걸 다 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계속 해오다 가게를 정리하고 쉬게 되니 편하지 않았다. 남편이 가게를 하면서 많이 안 좋아졌던 다리를 수술하며 쉬게 되었지만 마음이 편했던 시간은 얼마 안 된다. 남편은 "그동안 쉬지 않고 계속 힘들게 일했으니 지금은 편하게 있자."라고 하지만, 수술을 앞두고나 수술 직후, 정말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를 빼고는 마음 한쪽에 걱정과 불안이 늘 어느 정도 씩 자리하고 있다. 돈을 벌고 있지 않고 바쁘지 않아서가 이유 같다. 그래서 늘 읽을 책을 쌓아놓고, 몸을 움직이려고 애쓴다.
이러려고 부침개를 해려던 건 아닌데 오뚜기 때문에 돌연 자아성찰을 했다. 어쨌든 지금은 부침개를 하고, 먹고, 치우고, 집 청소를 하고, 내키면 밤 산책을 하는 수고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