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인생의 은인들 - 뒤늦게 노력했던 10대의 끝자락
가난하고 아픈 아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의 나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공부는 내 삶에서 아예 없는 영역이었다.
나는 그냥 자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에게 혼난 적도 없고,
누군가의 기대를 받아본 기억도 없다.
부모님은 늘 건강을 걱정하셨고,
수술 후 담당 교수님도
“공부는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셨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했다.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중학교까지 흘러갔다.
결국 춘천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게 있었다.
‘내가 바보가 아니었구나.
그냥 방법을 몰랐던 거였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두가 내가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랐기에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실업계 고등학교에는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이 많았고,
선생님들도 눈높이에 맞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시험에 나올 문제도 어느 정도 알려주셨는데,
그제야 감이 왔다.
‘아, 이런 게 중요해서 시험에 나오는 거구나.’
그때부터 공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언어영역 모의고사에서
예상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걸 본 담임 선생님이
“공부를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겠니?”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한마디가 내게는 큰 용기가 됐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하면
작게나마 보답이 온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 회사 생활에서도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지금도 피곤하고 힘들어도
일을 성실하게 하려는 이유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부부셨다.
두 분 모두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이다.
한 분은 평소 내 성실함을 자주 칭찬해 주시고,
작은 노력에도 “잘하고 있어”라며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그 말들이 지금도 내 안에 깊이 남아 있다.
또 한 분은 졸업을 앞두고
‘빚부터 갚자’며 캐디 일을 하려던 내게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문대를 직접 알아봐 주셨다.
그 덕분에 진학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내 성적이 괜찮다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때 받았던 백만 원이 넘는 장학금은
우리 집에선 정말 큰돈이었다.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셨고,
나도 정말 뿌듯했다.
가끔 왜 그 학교에 갔냐며,
공부는 왜 안 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춘천은 지역이 작다 보니
학교로 사람을 나누려는 분위기도 있어서
내가 어디 학교 출신이라고 말하면
괜히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기도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만약 다른 학교에 다녔다면
내 인생의 은인인 그 두 분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보답이 온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교명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과학고가 절대 아니고 실업계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