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암에 걸리고, 30년이 지났다.

03. 우리 집에는 세면대가 없어서 몰랐어 – 부러운 게 많았던 유년기

by 나리



예전, 부모님 세대에는 못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 내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내가 제일 가난했다.

가끔 외가댁 친척들을 만나면,
3살 많은 친척 오빠가 꼭 꺼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그 오빠 집 세면대 위에 올라가서 몸을 씻었다는 이야기.

그 오빠는 그 장면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내가 있는 자리에선 꼭 그 얘기를 하곤 한다.
나는 항상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로는 여러 감정이 스쳐간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에서 살게 된 건
내가 17살이 되어서야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5~6살쯤이었던 내가
세면대에서 아기였던 친척 동생이 씻겨지는 모습을 보고
‘아, 거기서 씻어도 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괜히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아니면 친척 오빠가 미안해할까 봐
한 번도 그 진실을 말해본 적은 없다.



어릴 땐 참 부러운 게 많았던 아이였다.
특히 위에 말한 친척 오빠네 집은
큰 2층 집이었고,
다른 친척분 중에는 춘천에서 큰 가게를 하시던 분도 계셨다.

그런 집에 갈 때면
조금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냥 부러운 마음이 더 컸다.

초등학교 땐 괜히 우리 집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친척들의 큰 집에 친구들을 데려가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딱 스무 살이 되고서야
엄마가 말해주셨다.

“혹이 있어서 수술한 거야.
그래서 매번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 거고"


너무 걱정할까 봐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했다고.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만 빼고 모두가 내가 암환자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친척들, 친구들, 선생님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조심스럽게 대했고,
잘해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가난했지만,
상처 없이 행복하게 지낸 유년 시절.


그 시절엔 몰랐다.
내가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나는 부러운 게 많던 작은 아이였지만,
주변의 배려와 사랑 덕분에
다정한 기억만을 품고 자랐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입주 전 줄눈시공을 마쳤던 모습이다. 세면대도 욕조도 있는 내가 꿈꾸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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