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톨이가 아프기 시작하고 얼마 뒤, 나는 간만에 갖게 된 휴직 기간을 이용해서 본가에 잠시 내려갔다 오기로 했다.
대구.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는 내가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 가서 쉬고 오는 우리 집이다. 오톨이는 아기일 때부터 부모님을 간간히 보아왔고 그렇게 낯선 얼굴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오톨도톨이랑 내가 온다고 하자, 부모님은 박스를 이용해서 애들이 숨을 공간도 만들어주고 예전에 놓고 갔던 고양이 화장실도 꺼내서 세팅해두셨다.
고양이는 무섭다며 고양이 데리고 집에 올 거면 오지 말라고 했던 몇 년 전의 엄마는 어디 갔나??
(이렇게 얘기했더니 엄마 왈 "얘는 고양이가 아닌데? 너무 귀엽잖아." 논리 왕.)
할무니 모해요??
휴직 시간을 갖고 쉬는 시간은 정말 꿀같았다. 난생처음 아무런 할 일 없이, 계획 없이 지냈다. 생각해보면 나는 성인이 되고 단 한순간도 멍을 때리며 쉬어본 적이 없었다. 졸업식 전에 이미 제약 회사에 취직했었고 (심지어 수의사 국가고시 시험도 회사에서 연수를 받다가 중간에 나와서 치렀다.) 퇴사 후엔 바로 인턴, 석사학위, 다시 취업... 중간에 시간이 잠시라도 나면 빡센 자유여행을 계획해서 경험치를 채울지언정 나에게 무념무상의 쉬는 시간을 준 적이 없었다.
이 시기에 대구에서의 나는 자유로웠다.
집 근처 호수에서 산책하다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기도 하도, 마음이 동하면 주변에 산을 오르기도 하였고, 근처에 포항이나 울진 같은 바닷가 도시에 찾아가서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잊으면 안 된다!!
오톨이는 이제 당뇨 고양이이다. 하루에 두 번 주사를 절대 빼먹으면 안 되고, 밥도 정량만큼 제시간에 먹어야 한다. 어딜 놀러 나가더라도 반드시 주사 시간 전에는 돌아와야 하니, 오톨이의 주사 시간은 나의 일탈(?)을 방지하는 루틴이 되었달까?
대구에서의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게 시간이 갔다. 원래 한 4~5일 있다가 오려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2달을 넘게 있게 되었고, 크리스마스까지 보내고 오게 되어버렸다. 준비해 간 오톨이 인슐린이 떨어져서 동네 동물병원에서 구걸해서 받아오기도 했다. (진료 안 보고 인슐린만 달라하려면 구걸을 좀 해야 된다. 수의사라는 점을 이용해서 용법용량을 벗어나서 위험하게 사용하지 않을 거라 설득하고 어렵사리 얻어왔다. 수의사 면허증까지 보여줬다는 사실 ;;)
크리스마스 만찬을 탐내는 자
오톨이는 엄마 아빠랑 점점 친해졌다. 옆에서 기웃기웃거리면서 뭐하는지 구경도 하고 추르 한 봉지 안주나 갸웃거리며 졸라 보기도 하고... 그러나 끝까지 안기거나 무릎에 올라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도톨이는 심지어 아빠가 있는 반경 2m 근처로는 가지 않았다. (아빠만 유난히 무서워하는데.. 아무래도 몸집이 크고 목소리가 낮아서일까) 무섭긴 해도 아무래도 관찰은 해야 했던지 아빠가 잠드시면 잠든 방 문밖에서 스토커처럼 지켜보곤 했다 ;;
모딜리아니 그림 속 그녀보다 도도한 도톨
그렇게 곰살맞게 따르지 않는 오톨도톨이 인데도 엄마 아빠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시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행동과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조건 없이 예뻐해 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난 참 건강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오톨이가 살아있는 동안 이렇게 긴 기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삶을 나눌 시간은 다시 오기 어렵겠지. 나의 휴직 기간이 오톨도톨이에게도 의미 있는 추억의 기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제 할무니랑 오톨이는 절친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