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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Apr 23. 2023

15. 오톨이의 슬기로운 병원 생활

엄마가 분리불안이 생김

  나는 병원에서 10시간 근무를 한다.

  오톨이도 덩달아 병원에서 10시간을 보내야 한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매일 삶의 터전을 바꾸며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일 것이다.

그것도 있어야 하는 곳이 동물병원이니... 다른 고양이 냄새도 나고 개냄새도 나고 개가 짖는 소리도 들어야 하고 아파서 비명 지르는 다른 아이들의 소리도 들어야 하고 여러 수의사, 간호사, 보호자들이 하루종일 드나드는 곳이라 얼마나 힘들까.


  처음 오톨이를 병원에 데려온 날, 나는 마음이 매우 안 좋았다.

  몇 마리의 개가 입원했었을지 모를 낯선 냄새 가득한 입원장에 오톨이가 매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환경을 바꾸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안했고, 낮 주사 시간 한 타임 때문에 거의 11시간을 집 밖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엄마 냄새랑 동생 냄새만 나는 따뜻하고 포근한 집에서 하루종일 쉴 수 있는 노곤노곤한 삶은 이제 오톨이에게 없다.

매일 엄마랑 출근해야 하고, 좁은 입원장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 네가 살 수 있어. 제발 빨리 적응해 줘.'


오토리가 처음 머물렀던 병원 입원장




  오톨이의 적응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입원 장 안에 내 냄새가 나는 담요를 깔아주고, 전기장판도 틀어주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주어서인지, 안 떨어지는 당 때문에 장기간 입원을 여러 번 반복했던 입원짬이 좀 되는 고양이라서인지,

병원 생활 한지 몇 주 되지 않아 오톨이는 입원장 안에서 배를 하늘로 드러내고 대자로 뻗어 자는 기염을 토했다. 입원장 앞을 지나다니던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놀라워하며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곤 했다...ㅡㅡ;;

'오톨아... 오톨이가 고양이라는 건 잊지 않은 거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뇌종양으로 인해 병적으로 심해진 식탐 증상 때문에, 배가 고프다는 생각 외에는 오톨이를 자극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개가 왔다 갔다 해도, 고농도의 인슐린 주사와 요동치는 혈당에 지친 오톨이는 세상모르고 드르렁드르렁 잠을 자기도 했고, 낯선 사람이라도, 손에 맛있는 간식만 들고 있으면 영혼을 팔고 따라갈 기세였다. (물론 다 얻어먹고 난 이후에도 찝쩍대면 바로 냥냥펀치를 때린다.)


밥 주세요 밥이요
나도 모르게 입 벌리고 꿀잠




  나는 일을 하다가 오톨이 주사 시간이 되면 가서 혈당 재고, 밥 주고 인슐린을 주는 루틴이 생겼고, 일하다가 한 번씩 오톨이 입원장을 들여다보며 오톨이가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었다.

  병원 식구들도 모두 오톨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여주었고 오톨이가 아무에게나 살갑게 굴지 않는 성격임에도 냥덕후 선생님들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오톨이가 어쩌다가 화 안 내고 쓰다듬는걸 한번 허락만 해줘도 "꺄아~~ 오톨이가 화 안 냈어~~" 하며 좋아하는 냥덕후 쌤들... ;;; 심지어 오톨이한테 펀치를 맞고도 오톨이는 때릴 때 발톱을 안 세운다며 귀엽다고 맨날 맞으러 가는 쌤도 있었다... 정상은 아닌.. 듯..? ㅋㅋ)


냥덕후 쌤이 선물해 준 오톨이 숨숨집
카샤카샤는 못 참지


  밥시간이 다가오면 빨리 달라고 조르느라 냥냥댄스를 추고, 밥만 보면 신이 나는 오톨이의 과거와 다른 낯선 모습이 나에게는 약간의 측은함을 불러일으키지만 병원 식구들 눈에는 밥을 와구와구 맛있게 먹는 귀여운 고양이로 보이겠지. ㅎㅎㅎ (동물병원 근무자들은 아픈 동물들에게 한 입만 먹어달라고 구걸하며 강제급여 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서 밥 잘 먹는 아이들을 제일 예뻐하게 되는 병에 걸림)


밥 주기 전엔 직립보행도 가능
얼굴 크기가 그릇 크기랑 같음


  그렇게 오톨이는 나와 출퇴근도 같이하고, 내가 맘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러다 보니 오톨이가 아니라 내가 분리불안이 생겨서 어쩌다가 오톨이랑 떨어져 있는 날이 생기면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나고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다. ㅎㅎㅎ

  이게 바로 강아지들이 외출한 보호자를 기다리며 느끼는 감정일까... ;;;; 어쩌다 보니 분리불안 강아지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게 된 오톨이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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