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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r 15. 2023

14. 출퇴근하는 고양이

a.k.a. 드라이빙을 즐기는 고양이

  하루에 3번 일정한 시간에 혈당체크, 인슐린 주사, 식이급여.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하루에 3번이면 8시간 간격이고, 일반적으로 직장인에게 이건 가능한 스케줄이 아니다. 아침 7시, 오후 3시 밤 11시. 칼같이 주사를 줘야 하는 오톨이는 어떻게 주사를 매시간 맞을 수 있었을까?!


  바로바로 엄마랑 같이 출퇴근!




  오톨이가 뇌종양 때문에 당이 관리되지 않아, 하루 3번 고농도 주사를 하고, 위험한 상황이 오지 않는지 자주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 원장님께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내가 먼저 오톨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녀도 되냐고 부탁드리기도 전에, 상황을 듣더니 바로 포인트를 캐치하시고는 당연히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편하게 관리하시라고 말씀해 주셨다.

  세상에... 나는 이 병원에 다니는 동안 원장님의 노예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이 이 글을 읽으실 일은 없겠지...?)

  일말의 난처함의 표현이나 생색의 느낌이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오너의 인품이다!라고 생각했다. (매우 주관적인 잣대임)


  그리하여 오톨이는 종양 진단 이래로 매일같이 나와 출퇴근을 하고 있다.

병원 입원장에 갇혀 지내는 하루는 상당히 지루하거나 갑갑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낮에는 거의 잠만 자는 고양이 특성(?)상, 엄청난 스트레스는 아닐 것 같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처치받을 수 있는 병원인 데다가 간호사 선생님들이 엄청 예뻐해 주니까 여기야말로 종양 고양이의 최적의 거처이다!




  병원은 차로 30분씩 출퇴근하는 거리인데 오톨이는 차를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 (처음에는)

가방 문을 열어주어도 머리를 안쪽으로 쿡 처박고 고개도 안 들고 무서워하던 오톨이가 점차 적응을 하더니, 나중에는 가방 안에서 까불다가 갑자기 끼어든 차를 피하느라 한 급정거에 조수석 앞쪽으로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 (그러게 엄마가 일어서진 말라고 했잖니. ㅉㅉ... 그 뒤론 가방에서 심하게 까불진 않는다. ;;;)

종양 고양이가 되었다고 해서 그 성격 어디 안 가는구나.


차타는게 너무 무섭던 애송이 시절


  요즘 오톨이는 내가 운전하면 가방 안에 얌전히 앉아서 무념무상으로 있다가 창밖으로 큰 트럭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구경도 하고, 비가 와서 와이퍼가 움직이면 그걸 유리알 같은 눈으로 열심히 따르면서 본다.

  드라이브를 완벽히 즐기는 고양이가 되었달까.

  가끔 급브레이크나 급출발을 하면 "냐아웅?!" 하며 나를 혼내기도 할 땐, 얘가 정말 뭘 알고 이러나 싶기도 하다.


이제 드라이빙을 쫌 즐길 줄 아는 냐옹이


  이제 대부분의 드라이빙 시간을 가방 안에 얌전히 품위 있게(?) 앉아있는데 스타벅스 DT에 들르는 날에는 직원들이 고양이가 앉아있다며 구경을 나오기도 한다. (차 안에 고양이가 가방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앉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 개는 있어도.)


  아직 적응 못한 건 자동세차장. 세상 무서워하면서도 눈으로는 차창을 때리는 자동세차기기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쳐다본다. 역시 궁금한 건 못 참지 우리 오톨.


  퇴근길에 음주운전 단속 경찰관을 만난 적이 있는데 혹시나 조수석에 고양이가 있다는 게 문제가 될까 봐 가방 뚜껑을 얼른 덮어 없는 척한 적도 있다.

  "쉿! 오톨이 조용히 있어야 해! 아저씨한테 호온나!"

  알아듣기라도 한 듯 오토리는 찍소리 없이 얌전히 있는다.

  지나가고 나서 가방 뚜껑을 열어주며

  "휴우~ 아저씨 갔어요~" 하면 고개를 쏘옥 내미는 오톨이. 오톨이는 엄마 마음을 읽는구나?!


아저씨 가써여??




  매일 오톨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아침저녁 30분씩의 운전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출퇴근을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우리 오톨이와 오롯이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란 의미가 부여되었달까.

멍.. 하게 앉아있다가 내가 "오톨이 무슨 생각해?" 하며 말 걸면 "꾸루룽??" 하며 반응하는 우리 오톨이의 모습을 나는 너무 사랑한다.

  

Feat. 드라이빙 애송이 도톨, 차타기 싫어서 코 빨개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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