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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Feb 22. 2023

13. 찾았다! 이 방법이야!

고혈당과의 싸움. 엄마가 만들어낸 Secret treatment.

 먼저, 혈당. 혈당을 잡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Acromegaly 환자에서 사망 원인 중, '혈당 관리가 되지 않아서'가 상위권에 있으므로.

  

  이미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별의별 약물을 교과서에서 허용하는 선에서는 최대치를 다 써봤기 때문에 더 이상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 약간 돌팔이 의사 같지만, 교과서에 없는 방법도 좀 섞어서 써봐야겠어!


  결국 나는 지속형 인슐린 (long-acting)과 속효성 인슐린 (short-acting)을 적절히 mix 하여, cocktail 요법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에 주사 2회로는 부족하여 3회로 늘렸다.


  이러한 인슐린 mixing 요법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논문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최소한 내가 찾아본 바로는 그렇다.) 사람에서는 혼합형 인슐린이 상품으로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수의계에선 아직 최소 내 경험 내에서는 보지 못했다.

  내가 여기저기 뒤지며 공부하다가 얻은 tip으로 급조하여 만들어낸 처치법.

(원래 이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애가 죽게 생겼는데 못할게 뭐람!)




  long acting 인슐린은 원래 너무 높은 농도로 주사하면 안 된다. 주사 후 뜬금없는 타이밍에 저혈당이 오면 너무 위험하고, 급사할 수도 있어서 저명한 전문의들도 일정 농도 이상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용감히 시도했다. 줄 수 있는 최고라고 생각하는 농도를 주고, 하루종일 관찰하기로 했다.

잠은 죽어서 자면 되잖아? ;;; 일단 오톨이 혈당이 안정기 들 때까지 나에게 잠은 사치다!


  우리는 둘 다 정말 힘들었다.

유심히 지켜보다가 오톨이한테서 조금만 이상한 기운이 돌면 혈당을 재서 확인해야 했다. 혈당이 높거나 낮거나 할 수 있으니까.

오톨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좀만 다르게 행동해도 엄마가 눈을 희번덕이며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발바닥을 찔러대니 (혈당은 발바닥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한 방울 낸 다음에 혈당계로 잰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몹시 피곤하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던 혈당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혈당이 너무 심하게 요동쳤다. 확 높아졌다가 갑자기 저혈당이 오기도 했다. 겉으론 괜찮아 보였는데 혈당기에 엄청나게 낮은 수치가 찍히면 등줄기에 소름이 훅 끼쳤다. '좀만 늦게 확인했어도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혈당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동일한 농도의 인슐린을 지속해서 주면 안 될 것 같고, 하루 3번 인슐린 농도를 모두 내가 조정하면서 주기로 했다. 한 번은 7칸, 한 번은 9칸, 한 번은 6칸... 이런 식으로 매번 혈당에 맞춰 농도를 조절하며 주사했다.


  얼마동안이나 이렇게 관리했을까. 이제 나에게도 감이 생겼다. 혈당이 이 정도 높으면 요만큼 인슐린을 주면 저혈당이 잘 안 오는구나... 요런 감이 조금씩 생기면서 오톨이 당도 슬금슬금 떨어져 갔다.

이상한 발걸음(plantigrade, 8화 참조)으로 걷던 모습도 원래 발걸음으로 거의 돌아오고 (아직도 조금 끌면서 걷긴 하지만...) 당뇨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던 변비 증상도 많이 좋아졌다.




  오톨아, 우리 한시름 놓은 거 같은데? 그래도 초고혈당이 반복되는 상태에서는 벗어났어!

우리가 해냈어! 다음 고비가 올 때까지 하루 3번 인슐린 칵테일요법과 인슐린 농도를 매번 달리 조절하는 방법으로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단, 혈당이 오르내리고 성장호르몬이 과분비되면서 오톨이의 병적인 식탐 증상은 여전히 아주 심각한 상태로, 우리 집은 오톨이가 주워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절대 밖에 꺼내두지 않고 절대 설거지를 미룰 수 없는 강제적으로 깨끗한(?) 집이 되었다. ;;;;


엄마가 요 안에 먹을걸 넣던데..


  하루 3번 발바닥에서 피 내서 혈당재고 고농도의 인슐린을 맞으며 사는 우리 오톨이의 삶은 고되다.

  하루 3번 밥 주고 주사하느라 외출을 7시간 이상은 할 수 없고, 강제적으로 규칙적으로 살아야 하는 엄마의 삶도 고되다.

  하지만 그러면 어때! 우리 오톨이가 이렇게 숨 쉬며 살아있잖아! 엄마를 여전히 꼭 안아주고 있잖아!

이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부디 더 나빠지는 시간이 너무 빨리 오지 않길 바랄 뿐...

  

오톨이 엄마랑 오래오래 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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