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Jan 26. 2023

12. 수의사 엄마가 공부를 더 합니다

오톨이 삶의 질과 양. 두 마리 토끼를 노리다.

  오톨이의 병명은 Acromegaly.. 뇌하수체 종양으로 인한 말단 비대증. 하아.......

교과서에 한 줄로 봤던, 시험에도 안 나오는 비주류의 그 질환을 다시 깊게 공부해야 할 터였다.

난 수의사 엄마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국내 사이트에는 상세한 자료가 나와있는 곳이 없었다.

논문도 대규모로 제대로 된 논문이 거의 없고 (흔한 질환이 아니고 케이스 수가 적다 보니 그럴 수밖에)

찾다 찾다 외국 캣맘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트에까지 들어가 보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모은 자료 중 그나마 믿을 수 있고 검증된 사실만 추리자면,

1. 혈당 조절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안 되고, 혈당 조절에 실패하여 죽는 경우가 많다.

2. 심장, 신장 등의 장기가 성장호르몬의 영향으로 계속 자라게 되어 결국 심부전이나 신부전이 와서 그것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3. 뼈 구조에 맞지 않게 조직이 자라나면서 콧구멍이 좁아지기도 하여, 숨소리가 거칠어지거나 코 고는 소리를 내게 되는 경우도 있음.

4. 턱뼈가 자라나서 두꺼워지면서 외관이 변하기도 하고, 발 같은 말단 부분이 비대해지는 경우가 있음.

5. 병적인 배고픔을 호소하게 되어, 성격이 달라진 듯이 느껴지기도 하며 소변을 엉뚱한 장소에 누는 등의 이상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다섯 가지 중에 끔찍하지 않은 사실은 없다.

오톨이는 이미 1번, 3번, 5번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고, 4번에도 어느 정도 부합되어 있고, 

2번의 상황이 올까 봐 늘 마음 졸이며 증상이 발생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다.

왕큰 오톨이의 발. 발이 큰 이유를 생각하면 슬프지만 어쨌든 왕귀엽다.


  이 질환의 근본적 치료는 결국 종양의 제거이다. (근본적이라 해봤자 완치의 개념은 아님)

당장 종양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방사선치료법이나 수술적 제거를 하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주변 수의사들과 같이 고민도 많이 했다.


  결국 이 질환은 너무 흔하지 않은 질환이고, 대학병원급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한다 해도, 성공하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사망할 가능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해외 논문에서도 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아이의 뇌조직으로 조직검사를 진행하여 확진한 케이스들이 눈에 띄었고, 오톨이의 작은 코로 금속작대기를 집어넣어 뇌에 접근한 뒤 종양을 긁어낸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너무 무서워서 숨을 못 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수의사 맞니?)


  방사선 치료 또한, 마취를 너무 자주 해야 하고, 병원 생활을 너무 오래 해야 하는 데다가 치료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고양이 뇌하수체 종양을 우리나라에서 방사선 치료로 성공한 케이스가 한건이라도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에 오톨이가 시범케이스에 걸려들어 너무 고생할 것 같았다. (이건 순전히 내 예상이다. 사실과 다를 수 있음.)


  실제로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는 병원에서 일을 했던 후배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나는 결국 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러 논문을 뒤졌지만, 치료 케이스가 많지 않아 믿을만한 통계도출이 된 자료가 없었을 뿐 아니라, 치료 후 예후가 그렇게 썩 좋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양이 줄어드는 치료 초반에는 당이 떨어지는 듯하다가 종양이 다시 자라날 시, 더 예측할 수 없이 요동칠 수 있다는 의견도 보였다.


  나는 결국, 종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종양으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최대한 해결해 주며 오톨이의 삶의 질이 유지되는 선에서 내가 노동력을 쏟아 넣어 관리해 주기로 결정했다.

오톨이는 엄마한테 안겨있을땐 표정이 무아지경... 세상편한 표정...


  나는 오톨이가 너무 아픈 처치나 너무 고생스러운 치료과정을 겪지 않길 바랐다.

만약 고생스러운 치료들로 치될 거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했겠지만, 그런 질환이 아니었다.

수술이나 치료 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질과, 양이 모두 좋지 않았다.


  왜 잘만 하면 최선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았냐고 질책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엄마로서, 선택했다.

수술대에서 피 흘리며 죽거나, 항암으로 온갖 부작용을 겪고 고생하면서 비척비척 말라가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고, 오톨이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곁에 온전히 잘 있을 수 있는 만큼 있도록 해주다가, 너무 괴로워지는 순간이 오면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오톨아, 엄마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오톨이 생각은 혹시 다를까 봐 걱정도 되지만, 우리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오톨이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하지 않고 엄마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엄마가 노력할게.
많이 많이 사랑해.

오톨이가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면 엄만 최선을 다할거야.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11. 절대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던 그 시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