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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Jan 04. 2023

11. 절대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던 그 시절

오톨이도 아기였을 때가 있었다.

  오톨이를 데리고 오던 무렵 나는 난이도 낮은 진료를 볼 수 있는 수준의 저 연차 수의사였다.

사실 나는 명색은 수의사이지만 어릴 때 잠깐 강아지를 키워본 외에 여러 여건 상, 여태껏 반려동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다! 난 내 밥벌이를 하고 있고, 아프면 직접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끝까지 책임져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 드디어 반려동물을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에 소원을 말하라면 항상 "강아지 키우고 싶어요."라고 했던 나. 꿈은 이루어진다!


  처음엔 강아지를 데려올까 했다. 다니던 병원에서 버려져있던 유기견에게 엄청 정을 주다가 결국 데려오지 못하게 된 상처를 안고 있었던 나는 (브런치북 '평범한 수의사의 특별한 이야기'의 11화 '버려진 너를 사랑한다는 것'에 내용이 있어요.) 다른 유기견을 데려올지 아기 강아지를 가정분양 할지를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고양이를 데려오게 되었다. ;;;




  인천까지 가서 오톨이가 오톨이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 그 집엘 갔다.

오톨이 아빠는 엄청 크고 순한 고양이었고 그 집 어린 사람 아들이 꼬리를 잡아끌어도 화 한번 안내는 참을성을 보였다.

  엄마는 오톨이와 형제자매들을 알뜰살뜰히 챙기는 예쁜 고양이었다. 오톨이는 다른 형제들 무리랑 떨어져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무아지경으로 뛰어다니다가 엄마한테 목덜미를 붙잡혀 질질 끌려오는 모습을 보였고 한눈에 얘를 데려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톨이는 내가 준비해 간 케이지에 들어가 나를 따라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엄마아빠 형제들과 갑자기 떨어져 이제 평생 나랑만 살게 되었는데 오톨이로서는 어리둥절한 일이었을 테지.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다짐해 주었다.

  '오톨아, 가족들이랑 헤어져서 무섭고 슬프겠다. 미안해.

이제 내가 가족이 될 거야. 끝까지 같이 사는 가족이 될 거니까 우리 서로 잘 지내보자.'


오톨이랑 처음 만난 날




  집에 온 오톨이는 잠시 적응하는 시간을 갖더니 바로 천방지축 캣초딩으로 돌아왔다.

오톨이가 곰팡이성 피부병을 갖고 있던 게 발견돼서 오톨이랑 그게 옮은 나랑 둘 다 곰팡이로 좀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이마에까지 곰팡이가 생겨서 가려워서 꽤나 고생을 했다.) 어딜 한번 아픈 적 없이 잘 자라주었다.


  빨래 건조대에 올라가서 곡예를 보이기도 하고 (아니 거길 어떻게 올라간 거야!)

엄마 오톨이 여깄지롱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고 날아다니기도 하고 (저기까지 올라가다니.. 발에 끈끈이라도 달린 걸까...)

  장난감을 주면 축구를 하며 뛰어다니고 (옛날만화에서 쏜살같이 뛰는 캐릭터의 발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그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오톨이 발이 소용돌이처럼 보임)


곰팡이 때문에 귀는 시뻘겋지만 매우 신남

  내가 TV를 보면 그 안에 있는 움직이는 물체를 잡으려고 손을 뻗기도 하고... 세상 모든 물건과 모든 현상이 오톨이에게는 재미난 소재가 되었고, 그걸 바라보는 나는 덩달아 즐거워졌다.


아기오톨이 최애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




  오톨이는 절대 아플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수의사로서 갑자기 큰 병이 발견된 환자의 보호자에게 사실을 전하면

  "네? 얘는 이제껏 아픈 적이 없는 애예요."

  "얘가 아프다구요? 그럴 리가 없는데?" 현실 부정하는 마음의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나도 그랬다.

  '오톨이가 아프다구?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맨날 환자가 아프다는 천청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지만 우리 오톨이가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무시했다. 당연히 오톨이는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내 품에서 세계 최고령 고양이로서 삶을 마감하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톨이가 어린 나이에 일반적이지 않은 큰 병에 걸렸다는 걸 확인했고, 보통 이런 질환에 걸리면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 알고는 있지만,

  사실 난 지금도 믿는다.


  오톨이가 뇌종양 고양이 중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오래, 제일 행복하게 살다 갈 거라고...

  

절대 아플일은 없을 것 같던 아기오톨이
아파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예정인 큰오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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