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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Dec 20. 2022

10. 뿌옇게 바랜 하루

결국, 뇌종양이 진단되다.

  그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안갯속을 걸었던 기분.


  비가 왔던 것 같고, 서울시 동작구에서 일산까지 운전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오톨이를 넣은 케이지를 메고, 비를 맞으며 2개의 병원을 오갔다. 비에 젖은 동물병원이 음울한 분위기를 냈다.


  MRI 촬영을 위해 일산에 있는 병원으로 갔는데, 거기엔 안면이 있는 후배가 일을 하고 있어서 좀 더 맘 편히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촬영 과정에 내가 직접 참여할 수도 있었고.


  마취제를 투약하고, 기도삽관을 하고, MRI 기계에 눕혀지는 오톨이를 보며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스몰토크를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 시절 같이 알고 지내던 다른 사람들의 안부 정도였던가?


  MRI 촬영은, 촬영하면서 영상이 실시간으로 나온다. 나는 MRI 영상을 볼 줄 아는 수의사였기에 촬영대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서 나오는 영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있는 것 같다... 종양 같은 게 있네...'

  휙휙 지나가는 영상에서 정상이 아닌 구조물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 와중에도 잘못 본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길.. 제발 아니길...


  촬영이 끝나고, 후배와 같이 영상을 돌려 봤는데, 정말 있었다. 오톨이 뇌의 뇌하수체 부분에 종양이 보였다. 조영제를 투여하자 하얗고 뚜렷하게 드러난 종양. 너 거기에 언제부터 숨어있었니.

고양이 뇌하수체 종양 MRI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케이스이고, 이 후배에게나 나에게나 의미 있는 공부 영상이 될 터였다.


조영제 주입 시 뚜렷하게 드러나는 종양




  마취에서 어느 정도 깨어나는 오톨이를 케이지에 넣고 병원비 결제를 하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왔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멍했다.

  비가 와서 안개가 잔뜩 꼈고, 온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날씨까지 아주 찰떡이구나.


  이로써 오톨이는 뇌종양으로 인한 Acromegaly가 거의 확진되었고, (완벽한 확진까지는 아니다. 이건 너무 깊은 이야기라 구구절절 쓰진 않겠다.) 더욱 본격적인 환자 모드에 들어갔다. 이제껏 당뇨로 고생하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켜보기 힘들었는데, 이제 뇌종양이라니. 엄청난 무게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10살 이상의 노령묘에서 보통 발병한다는 이 질환이 왜 6살밖에 안된 우리 오톨이에게 왔을까.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을 그렇게나 봐왔는데 (4살짜리 종양 환자가 강아지별로 가는 걸 본 적도 있잖아...) 오톨이가 아픈 것은 정말 끝까지 믿고 싶지 않았고 큰 충격이었다.


  오톨아 그동안 혹시 두통 같은 게 있었던 거야? 혹시 그래? 엄마가 몰랐어... 정말 미안해...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이제 정신 차려야지!

멍하고 뿌옇게 지나간 시간은 오늘 하루로 끝내야지!

나는 수의사 엄마야.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낼 거야. 최대한 오래, 안 아프게 지내게 해 줄 거야.

결의를 다지며 눈물을 닦았다.


종양을 진단받을 무렵 우리 오톨이 7살 생일이 지나갔다. 많이 힘들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란다고 내가 대신 소원을 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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