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태교 여행!!

좋은 여행은 내가 정하기 나름

by 날랩



예상했다. 왜냐하면, ‘화전’ ‘미세먼지’ 이슈를 알고 난 뒤 매일 병적으로 ‘치앙마이 미세먼지’를 검색했으니까.

10년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챙긴 적 없던 샤워 필터도 챙기고, 면세점에서 마스크도 구매했다.

(핑크와 연두를 구입한 것은 그래도 기분을 내기 위한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매캐하고 공기가 답답한 느낌이 있었고, (바로 핑크 마스크 장착!)

도착한 호텔에서 필터를 갈아 끼우고 샤워를 하는데 2년 동안 멀쩡했던 우리 집 샤워기 필터가 급속도로 노래지는 걸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치앙마이에 와있고 나에게 이 여행을 대체할 다음 여행이란 건 더 이상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전부터 꼭 한 번은 치앙마이를 ‘여행’으로 오고 싶다 생각하게 만든 숙소가 있었다.

‘호시하나 빌리지’라는 독채 숙소인데, sns를 통해서 알게 된 이곳의 풍경이 너무 맘에 들어서 언젠가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하늘이 쾌청하게 맑진 않아도 이 정도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더 이상 공기에 얽매여 내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숙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주었다.

널찍한 공간과 각각의 독채들 사이로 큰 나무들이 우거져있고, 태국의 자랑인 쨍하고 밝은 색의 꽃나무들이 진한 향을 피우며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받고 더 밝게 빛났다.

숙소에서 돌보는 듯한 고양이들은 다들 어찌나 살가운지 꼬리를 다리에 휘감고 비비기 바빴고,

울창한 숲과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새들이 움직이며 떨어진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을 멍하니 보다 보면 그동안 걱정한 시간들이 아쉬울 정도였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자면, 밤에 가득한 별을 하염없이 바라본 것과 요청한 마사지를 받는 동안 우리 마당을 청소해 주시는 직원들의 낙엽 쓰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샤악샤악’하며 마른 낙엽이 정리되는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거실에서 발 마사지를 받다가 꾸벅꾸벅 졸았던 그 순간, 목이 아파올 때까지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서로 손을 꼭 잡았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임신을 하고 내내 무엇에 쫓기듯 맘이 바빴다.

이 시간이 귀해서, 또 새로 바뀔 환경이 무섭고 겁이 나서.


하지만 당연히 바쁜 맘을 따라갈 만한 (원래도 없던) 체력은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죽- 늘어져서 보내다가도 휴대폰 속에 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어떤 게시물에서부터 내가 속이 상해갔는지 모른 채로 우울하고 부정적인 맘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여유’ ‘비움’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줄어든다 의식하지 않고 ‘밀도’에 집착하지 않고 보내고 나니 부정적인 것이 빠져나간 공간에 행복이 차올랐다.

마사지가 끝나자 , 한국에서는 그렇게 쓰기 싫던 글이 쓰고 싶어졌다.

뭐라도 남겨두고 싶은 맘에 가져온 다이어리를 폈다. 쫓기는 맘 때문이 아니라 정말 쓰고 싶어서.


[분명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곳에 있고 나는 모든 순간을 다 붙잡아두고 싶을 만큼 행복하니까.

우쭈(아가 태명)에게도 ‘좋은 선택’ ‘나를 위한 행복’을 만들어내는 근육을 키워주고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실패 같은 일, 잘못된 것 같은 일도 다 그다음 스텝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 순간에 가장 빛나고 예쁜 점을 먼저 발견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엄청난 능력을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느끼고 배운 것처럼, 우리 우쭈도 살면서 단점, 잘못된 점을 찾아내 걱정하고 확대해서 보기보다는 애써 무시할 줄도 알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굳이 내 맘을 후벼 파고, 눈앞으로 가져와 ‘이것 좀 봐봐. 지옥이야! 불행이야!’ 라며 들이밀어도 ‘아니 난 좋은 점을 잘 찾아내는 걸’ 하면서 강단 있고 의연하게 볼 줄 아는 멋진 여성으로 자라나면 좋겠다.

서른일곱이 된 예비 엄마도 작은 자극에, 외부의 시선과 말들에 쉬이 흔들리고, 겁준 사람도 없는데 미리 겁먹고 눈물을 보이기도 하면서 아직도 자라는 중이지만 우리 딸은 부디 좀 더 강하기를…

설령 나를 닮아 유약하고 잘 흔들리더라도 내가 앞으로 더 강해져서 우리 딸을 잘 보호해 주기를..

느리게 성장 중인 나를 돌아보며 아이가 천천히 강해지는 과정을 묵묵히, 인내심 있게 잘 기다려주는 참을성 있는 엄마이기를 바라본다]


집에서는 병원 가는 날 억지로 쥐어 짜내도 안 써지는 태교 일기가 맘을 비우고 생각의 공간이 생기니 거침없이 써졌다.


나도 잘 몰랐던 내가 바라는 육아의 방향을, 바람을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되다니…

태교 여행에 너무 부합되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런 엄청난 행복 뒤에 며칠 뒤부터는 진짜 ‘위험 수준’의 미세먼지가 우릴 괴롭혔지만, 이 날의 다짐과 기록 덕분에 우리는 예쁜 실내 공간을 찾아다니고 되도록 숙소에서 푹 쉬며 우리만의 태교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엄마의 모습으로 한 뼘 성장한 ‘태교 여행’이 맞았다. 다행이다.

‘맑은 공기 대신 강해진 엄마를 너에게 줄게. 조금 서툴렀더라도 이해해 줘. 사랑해, 내 아가. 얼른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