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라는 것의 의미
조리원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남들 말처럼 ‘조리원 천국’ ‘조캉스’를 너무 기대한 탓인지 나는 그냥 쏘쏘였다.
병원의 딱딱한 침대에서 5일을 크게 고생하고 와서인지 잠자리가 편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선택한 조리원은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우선 먼지, 공기에 좀 민감한 편인데 객실 공기가 좋지 않았다.
객실은 좁은 편이었고, 방음이 잘 안 되었다.
더더군다나…. 삼시세끼 밥 먹는 시간에 꼭대기 층에 마련된 식당에 가서 다 같이 식사를 해야 했다.
극도로 낯을 가리고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흘려듣기엔 너무 유용한 둘째 맘들의 정보나, 나와 같은 초산모들의 공감 토크가 도저히 끝까지 낯만 가릴 수 없게 했다. 우리 아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나 둘 말을 얹고 궁금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조리원에서 지나다니며 눈인사도 할 정도가 됐다.
싫어하는 일을 굳이 애써 노력해 보는 것, 어쩌면 이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괴롭지만 유익한 식사 시간이 끝나면 하루에 두 번 있는 ‘모자동실’ 시간이 찾아온다.
신생아실을 소독해야 하는 낮, 저녁의 시간 동안 객실로 아가를 데려와 함께하는 그 시간.
호수를 말하고 “우쭈요”라고 말을 하면 신생아실 선생님께서 새로 기저귀를 갈고 꼼꼼히 속싸개를 싸서 아이를 전해주신다. 언제 밥을 먹었고 얼마를 먹었으며 특이사항이 있었는지, 몸무게는 몇 그램 정도 늘었는지 등을 브리핑하신 뒤, 무슨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999 “번을 눌러 호출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눈도 못 뜨고 하얀 속싸개에 꽁꽁 싸여 쪼꼬미난 얼굴만 빼꼼 내놓은 ‘우쭈’를 유모차 비슷한 아기 바구니에 담아 객실로 올라간다.
우리 방은 신생아보다 한 층 위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그 작은 틈새에 바퀴가 끼여 낑낑거리거나 그 틈새에 걸려 조금이라도 덜컹거리면 아가가 부서질까 벌써 난리법석이었다.
잔뜩 쫄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은 우리뿐 아니었다.
남편은 회색, 아내는 자주색. 촌스럽기 그지없는 똑같은 조리원 옷을 입은 커플들이 각자 서로 탓을 하거나 아기에게 빌며 이동 중이었다.
“아니 오빠! 햇빛 들어오잖아, 위에 좀 가리라고! 아니 이쪽”
“여보, 턱 조심! 00야 놀랐지? 응.. 미안 미안…”
다들 남편한텐 화내고, 아가한텐 사과하기 바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우리의 경우엔 상황이 좀 다르다. 주로 덤벙대는 것이 나라서 남편이 나에게 주의를 주는 쪽이고 나는 혼나고 더 잔뜩 쫄아서 긴장해 있는 쪽이다.
첫 이틀 삼일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숨만 쉬는 아가를 숨만 쉬며 바라봤다.
건드리지도, 말을 걸지도 못하고 그렇게…. 바라보았다. 영원히.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사진 찍기, 감탄하기 뿐.
뜬 눈을 보고 싶다가도 깨면 어쩌나 두려운 그 마음 그대로.
셋만 있는 좁은 방에서 바구니 안에 아가를 허리 숙여 바라보며 둘이서 그저 감탄하며 수다 떨기 바빴다.
하지만 아가는 숨 쉬는 인형이 아니다. 울기도 한다.
이제 비상이다.
“여보가 안아볼래?”
마치 선심 쓴다는 투로 서로에게 미루기 시작한다. 아가는 점점 빨개진다.
곧 큰일이 날 것만 같고 당장 아가를 안아야 할 것 같다가도 안아서 더 큰일이 날 것만 같아 달래는 것에 겁이 나고 자신이 없다.
“오빠 999!! 전화기 들고 999!”
이 방에선 119보다 999가 최고였다.
인자한 선생님이 “오구 우리 우쭈~뭐가 불편해서 울었어?” 하고 다가오시니 거짓말처럼 아가가 울음을 그친다.
내가 안았을 땐 안 그래도 뜨끈한 몸이 더 활활 불탈 듯이 데워지며 울었는데…
내가 엄만데…..(달래지도 제대로 안지도 못하면서 엄마 생색은 엄청 내고 싶다)
서운하면서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아가를 얼르고 진정시키시는 모습에 감사함과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래도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꽤 의연한 척할 수 있게 되었다.
“오야~ 우리 딸~ 우리 아가~~”
라고 시간을 벌며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손이 허공에서 움찔거릴 뿐이다.
오야~로 시간을 번 뒤 유튜브로 여러 번 학습한 고개를 잘 받치고 들어 안기를 시작해 본다.
목을 못 가누는 우리 아기의 위태로운 목이 꺾일라 손톱부터 미세하게 침착하게 집어넣어 보는데…
땀만 날 뿐 잘 되지 않는다.
조리원에서의 생활이 답답해지고 바깥공기가 그리워질 때마다 과연 내가 이 하루 세 시간이 스물네 시간이 되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휴대폰을 뒤집고 눈을 감거나 아니면 눈을 부릅뜨고 보고 싶던 예능이나 쇼츠를 열심히 보았다.
‘그래 진짜 …. 잠도 못 잔다던데… 에이 근데 설마 잠을 못 잘까?’
‘다른 애들은 모자동실 시간에는 조용히 있기만 했다는데, 우리 우쭈는 너무 자주 울던데 집 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퇴소날이 다가왔다.
매일 하루 두 번 방문했던 신생아실 앞에, 더 이상 똑같은 옷이 아닌 사복을 입은 부부들이 긴장된 얼굴로 대기 중이다.
마지막으로 전달받을 사항을 전해 듣고, 가서 잘 키우라는 격려를 받으며 아가를 안아 들었다.
발을 돌리려는데 선생님이 안에 계신 많은 선생님들을 향해
“선생님들~ 우쭈 간대요~”
라고 하시자 모두들 바쁜 와중에 밖을 내다보시며
“우쭈 잘 가!!!”
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조수석이 아닌 뒷자리에 아가와 함께 타고 집으로 왔다.
“우쭈야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아가는 역시나 반전 없이 바뀐 환경에 불안해했고, 자주 울었고, 우리는 여전히 헤맸다.
나라도 불편하고 화가 날 것만 같다. 다정하고 숙련된 선생님들이 전문적으로 케어해 주던 2주간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엄마 아빠’라는 것들이 귀한 나를 이따위로 어설프게 대하다니!!!
밥도 제 때 안 주고, 트림도 잘 못 시키고, 잠도 못 재우고, 하는 것 없이 벌벌 떨고 ‘오야 오야’ ‘오구오구’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만 하고 앉았다니!!!!
조리원이 그리운 건, 나뿐이 아니겠지?
아가야 같이 돌아갈래….?? 천국 같던 그곳으로??
집에 오고야 ‘조리원 천국’의 의미를 알았다.
그건 화려하고 호캉스 같고 풀서비스가 있어서 천국이라는 게 아니었다.
밥이 맛있고 마사지를 받을 수 있어서 천국인 게 아니었다.
그냥, 그냥, 아이도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어서.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앞으로의 낯선 매일이 조금은 지옥 같기도 해서, ‘천국’이라 불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