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산!
‘그래 이제 낳기만 하면 돼!’
모든 게 조심스럽기도, 또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해? 란 생각에 불쑥 억울하기도 했던 열 달이 다 지나고 이제 배를 드러내고 사진만 찍으면 되었다…. 네? 내일은 출산일이니까.
그렇다. 나는 남들 하는 건 또 다 해봐야 하는 성격이다.
‘아니 뭐 저런 걸 해’ 하다가도 안 하면 아쉽지 않나? 하고 결국엔 따라 하는 따라쟁이. 유행에 매우 민감한 팔랑 귀가 바로 나다.
다들 배를 드러낸 옷을 입고 커다란 배 위에 립스틱으로 D-1을 쓰고 아가를 기다리는 ‘신성한 행위’를 하기에 나도 그 ‘신성한 행위’에 동참했다.
이뿐만 아니라 ‘상술’이라고,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아기 전문 스튜디오의 성장 앨범’도 덜컥 등록했고 7개월 차엔 태교 여행도 다녀왔다.
그래, 이제 내일 진짜 ‘낳기만’ 하면 된다.
준비는 끝났다.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은은한 조명을 켜고 최대치로 커진 배에 d-1 우쭈(아기 태명)를 그려 넣고 12킬로가량 불어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최상의 각도를 찾는데 열중했다.
내가 바라는 ‘배만 볼록 튀어나온 예쁜 임산부’처럼 보이기 위해.
단 하루 차이로 내일부터는 진짜 엄마가 되니까. 아가가 세상에 오기 바로 전 날. 내가 나로서 찍는 마지막 사진일 거란 생각에.
이런 한가한 생각에 몰두할 정도로 나는 현실 감각(?)이 없었다.
아가가 찾아온 것은 축복이었고, 내일이면 너무 궁금했던 그 아가가 나에게 오니까.
마지막까지 ‘역아’였던 아가는 제왕절개 출산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짐을 싸서 수술 당일,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갔다.
“잘하고 와, 너무 걱정하지 말고”라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씩씩하게 답하고, 나보다 잠도 못 잔 남편한테도 “우리 우쭈 나오면 당황하지 말고 꼭 그 상황 찍어줘야 돼! 까먹고 안 찍지 말고!!”라고 태연하게 당부했다.(이러나저러나 사진에 진심이다)
이제 나는 어엿한 엄마가 되니까, 언제까지 엄마아빠의 철부지 딸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열 달 내내 내 몸이 불어나고 아파오는 걸 지켜보기만 함에 미안해했던 남편에게도 의연하고 싶었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배정받은 병실에서부터 수술실까지 이동하기 때문에 남편이랑 병실 층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헤어져야 했다.
누운 채로 덤덤히 인사를 하고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어떤 인사를 나누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그 시점부터 긴장이 시작됐다. 오롯이 혼자, 아가를 맞이해야 하는 그 순간.
쿨한 척은 끝났다.
누워서 변해가는 천장의 풍경을 보아하니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았던 병원 장면들이 생각나고, 사무적으로 내 이름을 묻고 수술실로 옮겨가는 간호사들의 목소리와 차가워진 공기, 닫히는 문, 어수선한 분위기. 모든 게 불안하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 수술방에 들어가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척추에 마취 주사를 맞았다.
아가의 첫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하반신 마비를 선택했다. 대부분의 제왕절개 수술 산모들은 이런 선택을 한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선택한 병원은 자연주의 분만을 지향하는 곳이라 마취의 순간부터 ‘둘라’라고 불리는 의료인이 나를 진정시켜 주시는 역할을 해주셨다. 내 손을 수술 내내 꼭 잡아주셨다.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에 친정엄마도, 남편도 없지만 따뜻한 그 손길이 수술실에서 공포에 휩싸여 겁을 잔뜩 먹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15분 정도 뒤 아기는 내 품에 안겼다. 태지가 덕지덕지 붙고 양수에 팅팅 뿔은 채로.
빼액 빼액 울면서 내 품에 안겼다.
“안녕 우쭈야, 엄마야…”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마취에 취해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안아본 건지도 꿈결 같아서 수술이 끝나고 선생님께 “저 애기 안아본 거 맞죠?”라고 물을 정도로 몽롱했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벅차고 드라마틱하지 않은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마취약에 취해 희미하게 끝이 났다.
단 하루 만에 나는 세상에 처음 온 지구인에게 내 입으로 나를 ‘엄마’라고 소개했다.
‘내가 네 엄마야, 많이 두렵지? 낯설지? 이제부터 내가 널 지켜줄게.’
두렵고 낯선 것은 사실 나였는데, 이제 마음의 소리 대신 상대를 안심시키는 소리를 골라 뱉을 줄 아는 진짜 어른,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