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수술 썰
제왕절개 수술이 끝나고 나는 생각했다.
‘아 생각보다 아가를 너무 쉽게 낳았는데?’
평소에 막연히 상상했던 산고와 인내, 희생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듯한 느낌에 ‘뻘쭘’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냥 잠시 수술실에 다녀왔더니 아가는 나왔고, 그 순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았고, 내가 정말 수고를 한 건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
이 모든 감정은 출산이 그리고 큰 수술이 처음인 내가 한 대단히 오만한 착각이었다.
마취가 풀리자 엄청난 고통이 다가왔다. ‘어서 와, 출산은 처음이지?’ 느낌으로 강렬하고 세게!
고개도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눈만 말똥 말똥 뜬 채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말 그대로 ‘배를 가르는 수술’이었고 꽤 큰 부위를 째고 ‘새 생명’을 꺼낸 큰 수술이었다.
아픈 게 어쩌면 당연했는데 마취에 취해 잠시 낙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프다고 울고 있을 순 없다. 다음날 오전 면회까지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오늘 태어난 내 아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마취가 풀림과 동시에 발가락을 꼼질 꼼질 움직이고 무릎을 들어 올리며 걸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고개를 들어서도 안 되는 상태에서 그렇게 혼자 조용히 그리고 처절히 애썼다.
일어나기 위해, 걷기 위해.
모션 베드를 리모컨으로 ‘1초씩’ 들어 올렸다. 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내 의지로 버튼을 누르고 누른 만큼 고통이 찾아오다 보니 ‘셀프 고문’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해야 했다.
누운 자세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데에만 한창이 걸렸고 내 몸을 어떻게 움직였었는지 잊은 느낌이었다.
갓 태어난 기린이 된 것처럼, 나도 어제 세상에 처음 온 것처럼.. 일어나는 것도 발을 땅에 대는 것도 모든 게 너무 어려웠다.
내 의지로 화장실을 갈 수도,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나니, 나를 부축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는 남편이 너무 부러웠다.
저렇게 가뿐히 일어나다니, 3초 만에 누웠다가 일어설 수가 있다니.
나는 언제쯤 일어나고 걷는 게 고통스럽지 않게 될까.
한 층 위에 있는 신생아 실까지 걷는 연습을 오전 내내 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쭈를 만나는 시간.
“우쭈 면회요.”
태명과 병실을 듣고선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데려오기까지 그 짧은 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우쭈 왔어요.”
하얀 속싸개에 돌돌 말려서 정말 딱 내 주먹만 한 얼굴만 뾱-하고 나와있는 우쭈가 유리창 앞으로 왔다.
어쩜 저렇게 작은 얼굴에 눈코입귀가 다 있을까.
배에서 갓 나왔을 때보다 깨끗이 씻고 밥도 먹었는지 더 예뻐져있었다.
맨 정신으로 대면한 우리 아가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가슴이 뜨겁게 아름다웠다.
5분 남짓한 면회 시간, 눈을 감고 미세하게 꼼지락 거리는 작은 생명을 누구보다 집중해서 바라봤다.
작은 몸짓에 경탄하고 또 벅차올라 어쩔 줄 모르며 끙끙 앓았다.
“우쭈야-”
배 안에 있을 땐 쑥스러워 많이 불러주지 못한 그 태명이 눈앞에 실물로 보이니 자연스럽고 편하게 나왔다.
병원에서 이식하기 전에(나는 시험관 수술로 아이를 가졌다.) 보여준 배아 사진이 생생한데, 그 콩알이 언제 저렇게 커서 입을 오물거리고 눈을 떠보겠다고 움찔거릴까.
저 조그마한 아가를 앞으로 내가 키워야 하다니.
그 사실이 감격스럽다가도 저 유리문 안의 모습을 이렇게 구경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진짜 낳기만 하면 돼’는 줄 알았는데,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였다.
내가 세상에 초대한 이 귀한 손님을, 아직 집으로 모실 준비가………………
안 된 것만 같은 그런 불편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이토록 아픈 몸도, 상상 이상의 벅찬 감동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편한 기분도
정말이지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