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템이 왜 이렇게 많죠?????
나는 요즘 말하는 전형적인 [P형 인간]으로, 가격 비교, 합리적인 소비, 구체적인 계획이 안 어울리는 타입의 사람이다.
맛집을 찾아 구글맵에 별표 표시를 해두었대도, 가게 앞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5초 만에 깔끔히 포기가 가능하고, 차선책으로 찾은 곳에 가서도 웬만하면 만족도가 높은 긍정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나, 육아를 앞둔 입장에서는 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조금 불안하다.
내가 만족하면 됐지, 가 아니라 아이가 쓸 건데 혹여나 이상한 걸 잘못 사서 아이한테 피해를 주기라도 할까 조심스럽다.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는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맘카페를 기웃거리며 어떤 게 좋은 건지 살펴보게 되었다. 이런 건 정말이지 딱 질색인 나지만, 이제는 엄마가 되어야 하니까.
어느새 알고리즘에 휩쓸려 육아템을 멍하니 보는 날이 많아졌다.
스크롤을 내린 만큼 차오르는 우울감과 답답함을 벗어날 길이 없다.
결혼할 때는 [예비부부] [결혼]이라는 키워드가 추가만 되면 가격이 두 배, 세 배로 뛰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육아]의 영역은 더 하다.
결혼 프리미엄에 이은 육아 프리미엄의 시작.
“인생에 딱 한 번뿐이니까~”라는 말로 “추가, 옵션”의 말을 붙여가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격들에 이어 이번에도 시작이다.
“인생 딱 한 번”이라는 마법의 문장이 “우리 아이”라는 슈퍼 프리패스로 뒤바뀌었을 뿐.
이미, 결혼을 하면서 한 번 된통 당해보고 줄이고 줄였음에도 찝찝했던 맘을 겪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꼭 필요한 것만 사야지 하는 다짐으로 맘을 다잡았건만, 모든 물건에는 [국민템]이라는 글자가 당연하게 붙어있었다.
‘아니, 저기 죄송한데 저도 국민인데요… 국민 맞는데요. 이걸… 다 어떻게 사요…’
하도 강조를 하다 보니, 국민이라면 무릇 다 가져야 하는 것 같은 국민템 목록을 대충만 어림잡아도 새어나갈 돈이 어마어마하다.
하나둘 그놈의 국민템을 눈으로 익혀두고 나니까, 알고리즘이 불러오는 아이 키우는 집에는 그들이 국민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 똑같은 모빌, 초점 책, 바운서, 젖병 소독기, 기저귀 갈이대가 있었다.
마치 ‘국민템 모델하우스’처럼.
‘아 이 정도면 정말 사야 하는 건가. 나도 국민인데…’
다 챙겨주고 싶은 맘과 합리적으로 준비하고 싶은 맘이 부딪혀 영 맘이 시끌시끌하다.
그전처럼 일을 하면서 돈이라도 벌고 있으면 ‘그래 아가한테 주는 건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 되는데, 임신 준비 기간부터 이어진 병 휴직과 산전 휴직으로 외벌이 중인 남편이랑 야금야금 모아둔 돈을 써가며 지내고 있는데, 국민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100개가 넘는 (심지어 개별적으로 다 비싼) 국민템을 다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국민의 위치도 위태위태한데, 또 하나의 마법의 단어 ‘엄마’ ‘엄마라면’ ‘엄마가 준비하는’이라는 단어가 심지 약하고 낯선 ‘예비 엄마’의 맘을 괴롭힌다.
국민 엄마는 못 돼도 한정된 돈을 꼭 필요한 데에, 그것도 이왕이면 좋은 물건에 쓰고 싶은 맘에 영 산란한 맘이다.
꼼꼼하지도 야무지지도 못하면서. 불안한 맘만 가득인 엉망인 상태.
모든 게 처음이라 어렵고 낯선 매일이 오늘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