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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바리 예비 엄빠 베이비 페어를 가다

제… 제가요…..?????

by 날랩

바라고 바라던 임신이 되고, 한동안은 내 몸 보전에 온 힘을 다했다.


임신 6주 차에 하혈을 하고 큰 병원에 3일을 입원했기 때문이다.


난임병원에 다니면서 가진 아이를 제대로 실감도 하기 전에, 난황만 겨우 본 상태였는데


피가 울컥 쏟아지고 전날에 초음파로 본 찌그러진듯한 내 아기집 모양이랑 똑 닮은 핏덩어리를 보고 나니 의식할 새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아기집이 쏟아져 나온 줄 알았다.)


일요일의 응급실은 정신이 없었고, 오랜 검사들이 끝나고 아가의 심장소리도 처음으로 들었다.


응급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을 남편은 한창을 기도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으로 부모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화장실 가는 거 제외하고는 계속 누워만 계세요.”


라는 간호사님의 말에 병원에서 3일을 꼬박 누워만 있었다.


별일 없이 잘 퇴원하긴 했지만 그 후로도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눕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래 내 몸 잘 보전하고, 아기 잘 지키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생각하면서 몇 달을 누우며 자며 보내기를 몇 달.


내가 아가를 가졌나 보다를 실감할 일은 그 이후로 잘 찾아오지 않았다.


4주에 한 번 가는 정기검진이 아니고서야 얘가 잘 있는 건지, 내가 임산부가 맞는 건지 잘 실감이 안 났다.


궁금해서 고민하다 오랜만에 연락을 주셨을 시어머니가 “우쭈(우리 아가 태명) 잘 있지?”라고 물으셨는데 “아무 느낌이 안 나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너무 솔직히 대답해서 덜컥 어머니를 걱정시켰을 정도다.


실감도 하고 공부도 할 겸 1월에 코엑스에서 크게 개최하는 베이비 페어를 신청해서 갔다.


남편은 평일 연차까지 내서 집에서 먼 코엑스까지 함께 큰맘 먹고 나섰다.


규모도 어마어마했고, 부스마다 몰려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호객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저건 뭔지, 궁금하긴 해도 뭘 물어야 할지, 괜히 갔다가 덜컥 호구 잡혀 불필요한 물건을 사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좀 덜 북적이는 곳에 용기를 내서 발을 들였다.


샤워기, 세면대에 연결하는 호스 같은 건데 물이 나오는 방향을 위로 솟게끔 조절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이가 배변을 한 뒤에 손으로 안고 밑으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받아서 들어서 아이를 닦아주려면 손목에 무리도 가고 너무 힘들다며 그런 상황에 아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했다.


“어머니! 아버님이 회사 가시면 낮에 어머니 혼자서 아이 씻기셔야 하잖아요. 그럴 때 보통 나오는 수도 방향으로 이렇게 잡고 씻기시면 출산 후에 안 그래도 손목도 약해졌는데 정말 부담 많이 되시거든요. 자 이렇게 조절하면……”


그분의 확고하고 확신에 찬 설명과 눈빛, 내 옆의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나. 만. 을. 뚫어져라 보며 열심히 홍보하는 그분의 눈빛에 압도되어서일까, “어머니”라는 호칭 때문일까.


아니, 사실 나는 그런 당연하고 디테일한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인지는 했지만 전혀- 실감하지 못한 상황이었던 거다.


아이를 품고 낳는 것도 아직 맘의 준비가 안 됐는데 그 후에 펼쳐질 셀 수 없이 많은 격무에 대해 제대로 상상하지 않고 있던 거다.


“제……제가요…?” 상태가 되어버려서 순간 멍-해졌다.


맞다. 나는 엄마가 되는 거다. 아이를 품고, 낳는 것도 물론 상상하기 힘들 만큼 어렵고 고된 일일 테지만 이제 앞으로 반년 후에는 정말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책임지고 내가 죽기 전까지 길러내야 하는 것이라는 걸 제대로 체감했다.


이 아이는 이제 반년 후에 나에게로 와 내가 눈감는 날까지 함께할 아이였다.


‘임신’을 성공했다고 다 끝난 게 아니란 건,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걸음마다 보이는 관심 가져본 적 없고 나와 상관없던 수많은 물건들 틈에서 나는 점점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이불도 뭐 그냥 이불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되고, 환경 호르몬부터 아기가 구토를 했을 때 빨래가 힘드니 방수여야 하고 막 태어난 아이는 태열이 있어서 열흡수를 시켜줘야 하며….


아이는 아직 초점이 안 잡혀서 엄마가 시야를 가려줘야 하고, 목을 못 가눠서 어쩌고저쩌고…


임신이 잘 안 될 때에는 배가 나온 임산부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가진 건지 신기하기만 했는데,


아이를 갖고 나니까 눈앞에 뛰놀고 유모차 안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도대체 태열이며, 환경호르몬과 위험물질을 뚫고 저렇게 건강히 멀쩡히 사람답게 지내고 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세상엔 진짜 당연한 게 하나도 없고, 새삼 나는 도대체 무슨 수로 이렇게 오래 무탈히 잘 살아왔지? 언제 이렇게 커서 결혼까지 해서 뱃속에 애도 품고 있나 싶은 것이 나 자신이 다 기특할 지경이었고, 부모님이 달리 보였다.


뭐만 했다 하면 “엄마가 맘이 편해야” “엄마가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라고 귀에 피가 나게 듣고 있어서, 엄청난 현실 자각 후 잠시 그냥 맘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 내가 어찌어찌 이렇게 사람구실 하고 살아와진 것처럼,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지금은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그냥…. 밥 먹으러 가자.


‘어머니’ ‘아버님’은 동태눈을 하고 온몸에 기가 쫙 빨려 페어 장소를 나왔다.


도대체 얼마만의 강남이며 코엑스냐고 신이 났던 철부지들은 그렇게 다시 한번 부모 됨을 실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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