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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엔젤

캥거루 케어 시간

by 날랩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산부인과 병동에 5일을 입원해 있었다.

발을 딛고 일어서는 것, 몸을 뒤척이는 것, 걷는 것, 화장실을 가는 것, 그래 모든 움직임이 챌린지였다.

이 모든 것을 도와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열 달 내내 고생하고 출산과 출산 후 고통을 겪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라고 생각해서 억울하고 화가 났었는데

화가 나도 의지하고 기댈 곳은 남편뿐이었다.

게다가 수술 후에는 수술 후에 나오는 오로(분만 후 나타나는 질 분비물, 혈액, 자궁 내벽 점막 및 세포 등의 분비물)를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남편이 해줘야 했다.


이 또한 또 하나의 챌린지이며, 진. 정. 한. 가. 족. 이 되는 과정이었다.

이제 난 맘 편히 늙을 수 있다….. 남편이 경력직이 되었으니… 하… 하하… 하.



우리 부부가 이렇게 하루하루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동안, 새로운 가족도 우리와 하나 되기 위해 적응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의 경우는 ‘수유콜’을 받는 것인데 수유실에서 손바닥만 한 뜨끈뜨끈한 아가를 안고 젖병을 물리는데 그 짧은 순간 너무 조심스럽고 또 감동스러웠다. 대개는 여러 명이 함께여서 침묵 속에서 조용히 젖병을 물리고 눈으로만 아가랑 짧게 소통하고 돌아오곤 했다. (나는 낯가림도 심하고 수줍음도 많은 편이라, 차마 남들 앞에서 아가와 대화하진 못했다)


수유실에 들어올 수 없는 남편을 위해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고 싶지만 도저히… 한 손으로 아이를 두고 사진 찍는 법을 모르겠어서 눈에 온전히 담고 그 감동을 말로 전해야 했다.

‘대박 대박 너무 귀엽고 너무 예뻐’라는 유아적 언어로밖에는 설명이 안 됐다. 이 넘치는 감정을 담기엔 내 언어구사력이 너무 저급했다.


남편을 위한 이벤트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캥거루 케어’이다.

남편이 상의 탈의를 한 채 맨 몸의 아가를 가슴 위로 안아보는 것인데, 15분가량 체험할 수 있다.


간호사 선생님께 안겨온 작은 천사는 생후 4일 차 만에 우리 앞에서 속싸개를 벗었다.

출산 직후가 아니고서는 계속 속싸개에 감겨서 얼굴만 쏙 내민 모습만 보았는데, 기저귀만 입은 채 알몸이 된 아가를 보니 또 새롭고 경이로웠다. ‘손가락이 이렇게 작았구나… 팔이 이렇게나 얇았구나…’


캥거루 주머니 같은 것을 입은 남편의 품으로 아가가 쏙 들어갔다.

온전히 가족이 된 우리 셋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첫 순간, 15분.

아무도 없는 그 방에서 우린 셋이 되었다.


너무 작은 아가를 품에 둔 남편은, 예상외로 너무 능숙하게 끊임없이 아가에게 대고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느낀 감정, 앞으로의 계획, 뭘 함께 하고 싶은지..

수유실에서 사진 찍을 궁리만 했던 엄마에 비해 훨씬 ‘부모’답고 노련해 보였다.


나도 처음 본 한없이 다정하고 (오그라들고) 따뜻한 목소리의 남편은 전문 유튜버 혹은 디제이처럼 쉼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 나 너무 행복해.. 진짜 너무 감동적이야’라고 하면서 글썽거렸다.


오글거린다고 소름 돋은 팔을 쓸어내리던 나도 그때부터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오히려 우리의 감동을 방해하던 ‘ 당신은~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던 bgm이 포맨의 ‘마이엔젤’로 바뀐 것은.


[마이 엔젤 마이 엔젤 나에겐

내겐 저 하늘이 주신 큰 선물

내 맘에 잠든 예쁜 사랑

내겐 이 세상이 주신 큰 기쁨

잘 자요 예쁜 나의 사랑 굿나잇

넌 나의 천사가 맞다면 난 너의 날개가 될게

넌 나의 하늘이면 난 너의 별이 될게]


분명히 들었던 노래, 익숙했던 가사인데 왜 이렇게 감정이 휘몰아치는지..


“아 제발…. 윤민수 님 그 노래를 멈추어주세요..

그만하세요….”


울음바다가 되어 버린 그 공간에서 일부러 웃음을 짓기 위해 윤민수 님에게 부탁을 했다.


아 제발요… 그러다가 또 웃음이 터지고 웃다 보니 수술 부위가 너무 아파서 울 것 같고,

말 그대로 감정의 소용돌이, 대환장 파티가 열렸다.


“우쭈야 엄마가 울다가 웃다가 난리가 났어. 엄마 왜 저러니?”


이제 서로를 놀리는 게 아니라 딸을 포섭해서 편을 먹을 수 있는, 세 명이 되었다.


“아빠가 먼저 울었어!”


둘이 싸우다 문득 억울하면 일러바칠 딸이 생겼음이 실감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 품에서 잘만 자는 우리 아가.


천사가 분명한 우리 아가, 부족하기만 한 우리는 그날 아가의 날개가 될 다짐을 수없이 했다.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어설프게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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