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와 보내는 밤
승무원으로 생활하면서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잠 안 자고 버티는 건 꽤 익숙한 일이었다.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하고, 시차 적응 실패로 잠을 못 잔 채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왔으니까.
젊어서 기운이 팔팔할 때에는 단 이틀뿐인 휴일이 아쉬워 워싱턴에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도착 날부터 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 그 자체이다.)
30대가 지나고 점점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잠이 부족한 날에는 일에 집중이 잘 안 되었고, 신경도 예민해졌다. 특히 동남아 비행은 현지에서 밤늦게 출발해 한국에 이른 아침이나 새벽에 도착하는 스케줄이 대부분인데, 전에는 도착해서 서너 시간 자면 늦은 아침에(10시에서 11시) 깨어나 새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도착날을 충분히 일상처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자 도착한 날엔 전 날 밤을 꼬박 새운 여파로 하루 종일 좀비처럼 지내게 됐다. 회복하는 시간도 업무의 연장인 것처럼. 이제 도착날은 휴일 같은 날, 약속을 잡아도 되는 날이 아니게 돼버렸다.
자 그리고 이제, 삼십 대 후반인 나는 아기와 함께 조리원을 퇴소해 집으로 왔다.
요령 없이 결의만 가득한 채로.
초보라고 첫날이라고 봐주는 거 없이 밤은 찾아왔다.
남편과 나는 아기가 깨어 울면 같이 일어났다. 서로가 전혀 도움 되지 않지만 ‘함께’라는데 의의를 두고 결연히 ‘밤 수유’ ‘새벽 수유’에 동참했다.
아가는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에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것이 ‘길게는’이 맞다) 한 번씩 깼고 우리는 그때마다 함께 일어나 분유를 타고 아기를 달래고, 트림을 시켰다.
신생아인 아이는 소화력이 부족해서 꼭 트림을 시켜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배앓이를 해서 내내 울었다. 트림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도 이번에 알았다.
나흘쯤 지나자 남편은 나가떨어지기 직전이었다. 꼴. 랑. 일주일인 출산휴가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하리라는 의지를 내비쳤던 남편은 이런 수면 부족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새벽만 못 자는 게 아니라 하루 24시간이 2~3시간의 간격으로 아기 밥을 주는 것에 맞추어 지나간다.
끝이 없는 사이클이다. 아이는 두세 시간을 자지만, 우리는 그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 계속 트림을 시키거나 밥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기 때문에 도무지 쉴 틈이 안보였다.
결국 밤 수유는 다음 주면 출근해야 할 남편을 대신해 내가 도맡기로 했다.
남편을 배려하는 맘도 있었지만, 내가 더 잘하고 잘 맞는듯한 우월한 기분도 들었다.
‘동남아 비행하는 느낌이네 뭐’라면서 ‘밤샘 경력직 어디 안 가네’라는 맘으로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이 동남아 비행은… 휴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착날에 좀비일지라도 누워있을 수 있고, 그다음 날엔 회복해서 약속도 나가고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던 비행과 달리, 세 시간에 한 번씩 출근과 퇴근이 무한 반복되고 아침이 와도 점심이 와도 저녁이 와도 끝이 안 난다.
절망적인 것은 이 무한 사이클이 100일의 기적이 와서 끝날지 아니면, 계속 반복될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비행은 도착 시간을 계산하면서 버텨냈는데 이젠 도착 시간? 알 수 없다. 휴일은 … 진정한 휴일은 짧게 잡아도 20년 뒤일 수도 더 길 수도 있다.
잠이 점점 부족해지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리듬으로 매일을 보내다 보니 이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나, 이제 정말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온 거구나.
그제야, 동기 언니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니까 아이돌 좋아하는 네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보자면, 니 최애가 오늘 너 비행기에 탄 거야. 니 담당 존에!(매번 일을 할 때마다 주어지는 담당 업무 구역) 너무 행복하잖아? 근데!!
그 손님이, 안 내려!! 딱 그거야… 너무 좋은데 너무 힘들어… 그거야!”
그렇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손님을 태우고, 끝도 없이 날아가는 중이다.
언제 도착할지 알 수도 없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육아행 비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