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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곳에 초대된 귀한 손님

그리고, 계엄의 밤

by 날랩



아가의 시선과 사랑을 독차지하던 ‘타이니 모빌’(국민템이라는 모빌 장난감)보다 이제는 내가 우선순위가 되었음을 느낄 때, 참으로 행복했다.


아이의 모든 순간, 모든 시선 끝에 내가 있음을 느낄 때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 시선을 받아주고 응하였을 때 티 없이 맑은 순수함과 기쁨의 흥분을 담은 그 얼굴이 온 힘을 다해 ‘사랑’을 내뿜을 때,


이 얼마나 바라던 순간이었는가 하며 벅차다가도 문득 서늘한 불안감이 스친다.


‘이런 순도 100퍼센트의 사랑과 기대에 과연 부응할 수 있을까?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을까?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한 번 시작된 불안과 의심의 마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바쁘다.


맘으로는 이 맑은 눈의 천사에게 그 어떤 고통도 주고 싶지 않고 행복만 주고 싶다는 다짐으로 가득한데 가끔은 아가보다 더 어설픈 내가 넘치는 사랑에 과연 보답할 수 있을까.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는 이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고, 저 믿음 가득한 눈빛을 오래고 받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솔직하게 보답에 대한 걱정보다는 저 사랑을 계속해서 받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큰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내 시선과 미소 하나 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환하게 웃어 주는 아가의 눈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가도 이 눈빛이 언젠가는 사라질까 무서운 맘이 든다.


잠시 눈을 뗐다 돌아보면 오래고 나를 기다렸던 건지 돌아보는 순간부터 그저 환하게 웃어주니까. 한평생 이렇게 올곧고 투명한 사랑은 또 처음이어서.


아가는 눈치를 보지 않는다. 너무도 큰 사랑을 표현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울까 맘을 아껴두지 않고 그저 있는 힘껏 표현한다.


아직 감정을 갈무리하거나 감출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 찐하고 솔직하기만 한 감정이 그대로 나를 관통해서 나를 울려버린다. 벅차고 사랑스럽고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남편과 내가 초대해서,


영문도 모른 채 우리 둘을 믿고 이 낯선 땅에 찾아온 우리 아기.


어렵게 초대해선 누추한 곳의 주인이 되어 귀한 손님 앞에 아등바등하기만 한 우리.


심지어 귀한 분이 사랑을 표현하는데도 그것조차 불안해하는 바보 같은 우리.


차린 거 하나 없이 버벅대는 우리에게 늘 예쁜 미소를 지어주는 어여쁜 우리 아가가 있어 벌거벗은 기분으로 손님을 맞이한 우리는 춥지 않고 따뜻할 수 있다.


이렇게나 너그럽고 고마운 귀한 손님! 사랑으로, 모자란 우릴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잘 해내 볼게요.


그 투명하고 진득한 사랑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큰 사랑을, 우리도 표현할게요.


내가 그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의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그 사랑이 머무는 시간 동안 충분히 누릴 테니까.


감사히 흠뻑 즐길 테니까.


내일도, 앞으로도, 오래오래 잘 부탁드립니다.


(에필로그)


이 글을 쓰고 난 날 저녁, 마음을 더 단단히 해서 있는 힘껏 아가랑 재밌게 놀고 아가를 재웠다.


남편도 늦는 고요한 저녁이라 모처럼 티브이를 켰다.


보고 싶던 영화를 재생하려다가 sns에 올라온 말도 안 되는 속보 캡처를 보고 뉴스를 틀었다.


불안하고 어설프지만 잘해보겠다고 아가와 약속하고 다짐했는데,


내 다짐이 무색하게 아가를 초대한 세상이 말 그대로 누추해졌다.


살면서 느낀 절망감과 무력감은 아가가 생긴 뒤 그 분노에 더해 나를 겁쟁이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처참하게 느낀 분노와 절망, 무력감을 쏟아 내려다가 덜컥 겁이 나 sns계정을 재빨리 비공계 계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방금 전에 너무 예쁘게 웃어주던 아가를 올려놓았던 그 계정에서 혹여나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적어 내려 갔던 과거의 글들이 문제가 될까 봐.


설마 하면서도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충분히 나를 불안한 상상으로 이끌었다.


생각은 순식간에 번져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난 내 생각을 내 공간에 쏟아낸 것뿐인데 이미 그 사실이 나를 무섭게 했다.


학습과 경험에서 온 공포가 내 소중한 일상을 위협했다.


너의 속도를 따라 성장하겠노라고, 나도 쑥쑥 자라 너보다 앞서가는 어른이 되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순식간에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아침이 되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나를 반겼고, 나도 안도했다.


분노할 상황에 분노를 삼키고 웅크린 새벽을 보내다가 뉴스를 보고 글을 조심히 적어보는 아침을 맞았다.


감사하다. 그런데 감사해야 할까?


모든 것이 혼미하고 어지러운 그야말로 누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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