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엄마의 공포
나는 항공사 객실 승무원이다.
승무원은 비행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임기응변에도 능해야 한다.
갇힌 공간, 날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의사도 구급대원도 없기 때문이다.
화재, 비상착륙, 환자 발생 등을 늘 염두하고 대비하여야 하며 승객의 안전을 늘 최우선으로 한다.
흔히들 알고 있는 ‘서비스’는 ‘주’가 아니라 ‘부’이다.
단지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 일상적인 서비스를 하는 모습이 더 주요 업무로 비치어질 뿐이다.
때문에 승무원은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날에 교육원으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안전 교육을 받고 매년 안전 자격을 갱신한다.
나 역시 입사 후 14년 동안 매년 꼬박 그 교육을 받아왔다.
안전 교육에서는 화재, 비상상황에 대한 모의 상황 연습, 응급처치 등을 교육받는다.
일 년에 한 번씩 체육복을 입고 참여하며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것이 참 괴롭고 지루했다.
특히나, 점심을 먹고 난 후의 수업은 더 그렇다. 졸음이 쏟아지고 눈꺼풀이 내려온다.
매 번 점심시간 후에 진행되는 수업이 ‘응급처치’ 수업이다.
이 시간엔 두 명씩 짝을 이루어 cpr 교육과 테스트를 한다. 성인 cpr과 영아 cpr, 하임리히법에 대해서 배우고 실습한다.
매 년 해왔지만 한 번도 실제 상황에선 마주하지 못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기계적으로 실습 테스트를 보았고 설명도 잘 집중하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실전에서 이걸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도 내 딸에게.
아이는 먹성이 좋은 편이다. 분유를 먹을 때도 젖꼭지에서 공기소리가 나면 이제 분유가 없다는 걸 알아채고 으앙- 하고 울고, 이유식을 줄 때도 입에 넣자마자 다시 입을 벌리며 재촉한다.
이유식을 시작한 후로 아가새처럼 입을 최대한 크게 아- 벌리고 음냐음냐 내가 만든 밥을 먹는 아가를 보면 그게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간식으로 준 쌀과자를 야무지게 베어 물고 오물오물거릴 때도.
새로운 음식을 처음 접한 낯설고도 신난 그 표정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조금만 보채도 새로운 음식을 줘보고, 잘 먹는다고 더 주며 ‘우리 아가는 진짜 잘 먹고, 너무 이쁘다’며 신이 나서 밥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귤을 먹였는데 귤을 한 입에 그냥 바로 삼켰는지 켁켁 거리기 시작했다. 함께 있던 친정엄마가 바로 아가를 들어 올려 하임리히법을 실시했다. 한참을 두드리니 귤 조각이 톡- 하고 빠져나왔다.
엄마는 너무 놀라셔서 한창을 멍했다. 옆에서 본 나도 놀랐지만, 엄마가 함께여서였는지 ‘다음부턴 꼭 조심해야지’ ‘진짜 잘게 잘라서 줘야겠다’라는 다짐으로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쌀과자와 치즈큐브를 먹던 아가가 표정이 훅 일그러졌다.
나는 휴대폰을 급히 찾았다.
“왜에.. 치즈가 맛이 이상해? “
치즈에 콤콤한 맛 때문에 표정이 일그러졌다고 생각하고 귀여운 모습을 포착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이는 점점 창백해지더니 금세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너무 놀라 아가를 안아 올려 하임리히법을 실시했다.
실습용 아기 인형보다 무겁고 눈앞에서 파래지는 아가를 한 팔에 들고 등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하던 게 맞나, 왜 안 나오지.
아무리 두드려도 목에 걸린 건 안 나오고 아가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내 팔에 매달려 괴로워했다.
해선 안된다고 했던 것도 당황하니 기억이 안 나 목에 손을 집어넣기도 했다.
배운 건 무용지물, 실습도 무용지물이었다. 그 순간의 찰나에 119도 안 떠오르고 시간이 너무도 천천히 흘렀다.
입에선 침만 흘러나왔고, 아가는 어느 순간부터 울음이 터져 울었다.
아마도 녹아 없어진 건지 왜 그런지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다행이었다.
돌아 안아 아가를 품에 두고 얼굴을 만져보고 차게 식은 얼굴에 혈색이 돌 때까지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서현아! 안 돼! 안 돼!”를 무아지경으로 외쳤던 거 같다.
안 돼 숨 쉬어 제발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를 보았는지 아가가 씨익 웃는다.
그제야 진짜 안도가 찾아오면서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둘만 있는 그 순간 내가 정말 큰 일을 낼 수도 있었다는 것이 감각되면서 손이 떨리고 너무 무서웠다.
“안 돼… 진짜…응? 서현아 진짜 안 돼 알겠지?”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계속 말했다. 안된다고.
뭐가 안된다는 거였을까..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그걸 말로 구체화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안 됐었다. 그게 무엇이든. 절대. 절대.
글을 쓰는 순간에도 부끄럽다.
전 날에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안일했던 나 자신과 늘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히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만과, 어떤 상황에도 난 잘 대처할 것이라고 그냥 엄마니까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던 이유 모를 자신감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서도, 그날 밤의 일을 통해서도 (그날 밤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확실히 느꼈다.
14년 동안 매년 수업에 참여하면서 지루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이 당연하다 느끼고 무뎌졌던 것임을 깨닫고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찾아오는 게 비상상황이고 응급상황인데 어제 그리고 오늘 벌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넋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14년을 일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을 엄마가 된 지 6개월 만에 깨달았다.
빨리 깨달았으니, 제발 기억하고 늘 주의하기를.
부주의하고 덜렁대는 내가 내 자신에게 제발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