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같나요 전 진심입니다만
남편을 사랑한다.
음 사랑한다. 정말이다. 진심이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이후로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겪고 있는 변화는 정말이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하고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해서, 내가 가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어렵다.
그래도 단어로 굳이 나타내자면 사랑스러움보다는 얄미움이 커졌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 않다. 그도 나를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관계’가 변한 것 같다고 표현해 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얄미워하는 관계’ 그게 가장 적절한 말 같다.
우선 누가 누가 잘했나를 재고 따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서로 배려하거나 사랑으로 행하던 일들이 이제는 ‘나 이거 했는데 넌 이거 왜 안 해?’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를 위해 이만큼을 했는데 대체 너는 한 것이 뭐냐고 하는 맘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임신과 출산을 해낸 대단하신 분이다.
하루 종일 내가 겪는 불편함과 고통을 토로해도 그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마무시한 일을 내가 해냈다.
이미 내 쪽으로 추가 엄청 기울어져있기 때문에 나는 그 ‘균형’을 맞추고자 남편에게 임무를 최대한 많이 부여했다.
그리고 실제로 남편에게 시킬 수밖에 없게 몸도 많이 쇠약해졌다.(이것도 그가 얄미운 포인트다)
목욕, 재우기, 똥 치우기, 몸으로 놀아주기 등은 내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이다.
하지만 육아란 그렇게 딱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빨리 아이를 재우고 우리가 쉬려면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아기 옷 빨래, 설거지, 장난감 정리, 빨래 개기 등등의 일을 해놓아야 한다.
하면서 화가 난다. 화날 일이 아닌데 화가 난다.
‘퇴근하고 한 시간만 하면서 … 아니 왜 나는 남편이 와도 이런 일을 다 하고 있어야 돼.. 난 언제 쉬어 도대체’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왔는데, 남편이 주중에 쌓인 피로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평소라면 얼른 자게 두고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텐데..
남편 입에서 나오는 ‘아 피곤해’라는 말이 무섭고, 심하게는 짜증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이 힘들지? 조금 쉬어”라고 말하고 잠시 내가 아이를 보면 된다.
그리고 그게 맞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그 말이 잘 안 나온다. 보란 듯이 “그렇지? 나도 진짜 왜 이렇게 피곤하냐.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아.”
라는 말로 뻔히 보이는 남편의 피곤한 기색을 외면하고만 싶어진다.
남편의 별 거 아닌 행동, 말투가 온 신경을 건드릴 때도 많다.
굳이 딴지 걸 일이 아닌데도 엄격한 관리자가 되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꼬투리 잡게 된다.
아이를 아가의자에 앉히고 함께하는 식사 시간.
남편이 휴대폰을 보기만 하면 바로 감시자가 출동한다.
“누구야? 뭐 봐? 급한 일이야?”
말투에 이미 엄청난 노기가 서렸다.
대충 눈치챈 남편이 휴대폰을 덮어둔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어이 엄마 - 아가가 엄마 핸드폰만 보는데요??”
(나름 눈치 봐서 매우 순하게 위트를 곁들인다는 투다)
“아 나도 좀 쉴게요. 누가 들으면 거 아빠는 단. 한. 번. 도 애기 앞에서 핸드폰 안 보는 줄 알겠네.”
하….. 얄미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얄밉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다.
남편이 얄미운 것처럼, 내가 보는 나도 객관적으로 좀 얄밉다.
자칭 성장덕후라는 나의 정체성에 꽤 큰 데미지가 생기는 중이다.
인격 퇴행. 인성 퇴화.
내가 절대무기인 ‘출산’과 ‘임신’을 예로 들며 맞받아치면 남편은 정말 안타깝다는 투로 (이거야 말로 지이이이인짜 얄밉다)
“아니 나도 내가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으면 내가 대신하고 싶지.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
라고 반격한다.
듣다 듣다 못한 내가
“진짜.. 남자도 애 갖게 해야 되고 꼭 꼬추로 낳게 해야 돼. 오줌 나오는 그 작디작은 구멍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낳아야 돼…..”
진심이었다. 안다, 내가 한 말이지만 너무 기괴하고 잔인하다는 걸.
임출육이란 사람을 더 큰 나로 한 뼘 성장하게도 하지만, 이토록 인성의 밑바닥을 보게도 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 진심이었는데.. 남편은 재밌다고 웃는다.
그게 내가 내 남편이 얄미운 이유다.
재밌으십니까? 전 진심입니다만…
육아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내 굳은 결심과 반대 방향으로 남편과 함께하는 내 인성은 반대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늘도 다사다난하기 그지없는 얄미운 두 부부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