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놀라며 생각한다.
아이는 매일매일 쑥쑥 자란다. 또다시 강조하지만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쑥쑥.
으엄므아 으엄므아 라고 뭉개 부르는 발음에도
“엄마?”라고 미화해서 들으며 과한 감동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어엄마!! 엄마아빠!”
48비트짜리 빠른 템포와 무한 반복 리믹스로 엄마와 아빠를 공평히 나눠 부를 줄도 안다.
말은 못 하지만 본인도 답답한지 질문 폭격 속에 본인의 요구사항이 들어 있으면 꽤 알기 쉽게
“응”이라고 대답도 한다.
이게 가능하다니. 내 딸은 천재인가?
자꾸 이런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이 엄청난 속도를 매일 보면서 놀라는 게 내 일이라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며 또 카메라에 담아내고, 혹은 노트나 휴대폰에 메모하면서 이 순간들을 담아두고 기록하는 것이 내 일이라서.
이 모든 순간이 참 놀랍고, 신기하고, 경이롭다.
아기는 대체적으로 유순한 편이다. 늘상 웃고 꺄르르대면서 혼자 조용히 놀 때도 있는 착하고 고마운 딸이다.
내가 계속 결정해야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맞지만 아이가 원인이 되어 정신적으로 힘든 적은 솔직히 많이 없다.
내가 못난 것 같아서, 내가 결정할 것이 너무 많아서, 공부할 게 산더미라서 겪는 감정의 파도에 비하면 아이는 잔잔한 바다에 예쁜 윤슬을 그려내는 햇살 같은 존재이다.
꼬물대며 내 얼굴을 만지는 손,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웃는 미소, 폭 안기는 몸짓. 이런 것들로 내 맘 속 파도를 가만히 다독여준다.
그러니까 결론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거다.
아이는 잘 성장하고 아니 무려 미친 듯이 성장하고 심지어는 내 휘몰아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기까지 한다.
반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암튼 많이 다르다.
아이가 있는 곳곳마다의 위생을 신경 쓰고 꼼꼼히 청결을 유지하는, 그리고 늘 예쁜 집을 유지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아이가 없이 두 명만 사는 집 살림도 깔끔하고 예쁘게 돌보지 못했는데.. 아이 육아와 이유식 만들기까지…
그 모든 걸 잘하려 하는 것은 욕심임을 인정하고 좌절을 내려놓았다.
주중에 와서 내 육아를 도와주는 친정 엄마는 육아보다 내 살림을 더 돕고 계시는 편일 정도다.
잠시 잊고 살았던 엄마의 잔소리를 오랜만에 다시 매일 듣고 있다.
대충 죽을 맛인데, 화내고 싸울 배짱도 없고 염치가 있지…. 차마… 뭐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40년 가까이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하는 엄마도, 5년 정도 나와 살면서 불만을 토로한 남편도 고치지 못한 내 정리, 정돈력을 발전시킨 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 양심껏 정정한다. 아직 발전시킨 것은 아니고 진짜 이제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닫게 한 자!! 그것은 바로 내 딸.
이건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모성애에서 아이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자~ 하는 그런 다짐과는 별개다.
그것도 이미 200일 무렵쯤 내 길이 아님을 알고 포기했다.
치워도 원점 치워도 원점이기 때문에 육아가 끝난 뒤 밤에 대충이라도 치우는 걸로 타협했다.
가장 큰 계기는 며칠 전이었다. 전 날 밤에 아기 의자에서 딸기를 신나게 먹고 사방에 다 흘려 혼이 나간 채로 딸을 재우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분명 다 치운 줄 알았지만 의자 발 받침대에 남은 딸기 조각을 보긴 봤다.
그런데, 나는 늘 하던 대로.. “내일 치우자” 생각하고 흐린 눈을 장착했다.
아침부터 분주히 또 그날의 이유식 준비를 하던 중 아이가 아기 의자 쪽에 오똑하게 서있었다.
“우와 우리 딸 이제 완전 잘 서네?! 오구 대단해라~”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날 보며 씨익 웃고 있는 아기가 뭔갈 오물거린다.
하….딸기….
어젯밤부터 이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썼을 메마른 딸기.
‘신선한 딸기‘를 사서 뽀득뽀득 닦아서 주면 무얼 하나…
아기는 이런 식으로 자꾸만 나의 성장을 재촉한다.
언제까지 나를 이런 환경에 방치할 거냐고.
곧 마흔인데, 당신도 엄만데 이젠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냐고.
그동안 당신이 흐린 눈으로 방치했던 구석구석 모두에 난 이제 손이 닿는다고.
자꾸 이런 식이면 먼지를 슈가 파우더 삼아 다 먹어 치워버리겠다고.
정말 무시무시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직접적인 잔소리와 질타보다 훨씬 강력한 경고!!
그 길로 나는 눈에 보이는 건 미루지 않고 빨리 치우려고 노력하고, 손에는 늘 무선 청소기를 가지고 있고
빨리 못 치웠을 때엔 아이보다 빨리 다가가 눈앞에서 뺏기라도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우리 엄마도 놀라고 계실 만큼.
아이가 매일매일 나를 키우고 있다는 걸 느낀다.
먼지 그만 먹자 딸아. 굳은 밥풀도 그만 주워 먹자. 엄마가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