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장 메이트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는 아이

by 날랩

아기는 매일매일 쑥쑥 자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콩나물처럼 자란다.

음… 아니다, 엄마의 ’ 사랑의 눈 필터‘로 보자면 콩나물이 아니라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자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성실히, 아주 사소한 것에도 경탄하며 메모해 두던 ‘처음 발견한 것‘들도 이제는 적을 수가 없다. 적기는커녕 카메라에 포착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어제는 누워있던 아이가 오늘은 뒤집고, 안 짓던 표정을 짓거나 섬세한 손동작으로 물건을 움켜쥐는 식이다.


10미리리터씩, 20미리리터씩 분유량을 늘이고 수유텀에 집착하며 공부하던 때를 지나 어느새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간식을 먹이고 있는 매일을 보내며

’ 선생님.. 시험공부를 범위보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범위가 바뀌어요? 왜 늘어나요?! 언제까지 계속 공부해야 하죠? 네? 선 생 님?!!‘

수험생의 당황스러운 마음상태가 되어버린다.


허겁지겁 찾아보고 뒤져보고 키워내면, 적응할 시간 없이 바로 ’응, 다음 단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말에 떨어졌다가 만난 친정 엄마에게는 보고할 거리가 수두룩이다.


“아니 내가 하이파이브! 하니까 진짜 손을 들었다니까?”

“내가 맘마 줄게 맘마! 하니까 울면서 수유의자로 기어갔어.. 진짜야

우연이겠지? 아닌가? 천잰가?”


고작 이틀 안에 쌓인 성장의 증거, 내가 카메라로 담지 못한 안타까운 찰나를 쏟아내자니 ’ 약쟁이‘가 된 것 같고 ’ 극성엄마‘가 된 것 같지만 정말 아이는 그만큼 놀라운 속도로 변해간다.


자칭 ’ 성장 덕후‘ ’ 프로성장러‘인 나로서는 하얀 도화지에서 무한히 뻗어가며 매일을 새롭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내가 늘 바라왔던 매일 눈에 띄게 성장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니 나 역시도 성장해야겠다는 욕심이 샘솟는다.

그렇지만 의욕과는 달리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내 시간은 현저히 줄어든다.


성장에 맞게 줄어드는 낮잠 시간도 성장의 결과로 느껴지기보단 ’아 이제 난 책 볼 시간도, 조용히 커피 마시거나 낮잠 잘 시간도 없겠네 ‘라는 맘이 들었다.

겨우겨우 재운 아가가 20분 만에 깨어서는 마치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난 양 에너지를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기특하기보단 낭패감이 들고 맘이 모나 졌다.


시험범위도 늘고, 달리기로 한 운동장의 바퀴 수도 늘어나는 기분이랄까?

할 일은 많아지고 체력은 달리니까 성장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찾아왔다.


에라 모르겠다. 아이를 앉혀두고 ’ 잔다!‘고 신나게 폈다 덮어둔 책을 그냥 마저 읽었다.

좋은 문장엔 밑줄도 그었다.

그러자 아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생기는 긴 줄이 신기한가 보다.

반짝하고 눈을 빛내는 그 순수하고도 투명한 눈빛에 제법 으쓱해졌다.


“엄마 봐라. 글씨도 잘 쓰지? 봐봐. 아무것도 없었는데 엄마가 이렇게 이렇게… 자 짠! 새로 글씨가 생겼지?”


신기해하는 아이덕에 책의 문장을 필사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육아 중 딴짓’인데 아이가 나를 존경스러운(아님) 눈빛으로 보니 뭔가 대단한 능력자가 된 것만 같다.


그리고 순간 너무 행복했다. 아기가 내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신기해주니까 인정받고 존중받은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깨달았다. 사실 아이는 한 번도 방해한 적이 없었다는 걸.

내가 ‘방해’라고 생각했을 뿐이라는 걸.

희생하고 있다는 오만한 맘을 버리고 ‘엄마 멋지지? 잘하지?’하고 으스대는 시간을 늘려가면 된다는 걸.


아이에겐 모든 게 새로운 자극이고, 그 자극을 촉매제 삼아 더 쑥쑥 자랄 테니까.

아이의 성장을 지켜만 보기보단 함께 성장하며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는 것으로 육아의 재미를 찾아야겠다.

37년이라는 꽤 큰 선행학습 격차로 지금은 허세 가득한 잘난 체를 해대지만 지금의 속도라면 곧 따라 잡힐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걸음씩은 앞서서 지금의 그 존경 가득한(아님) 반짝이는 눈을 오래고 보고 싶다.


같이 크는 성장메이트로.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쑥쑥 자라는 콩나무로.

아이와 함께 자라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