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딸의 울음을 멈춰라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이럴 땐?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동요를 부를 때도 대중가요를 흥얼거렸던 내가.
덕질만 해온 내가!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공연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장르다.
만화영화도 좋아하지 않아서 친구들이 부르는 만화주제가도 잘 몰랐고,
그저 아이돌 음악만 주야장천 들었던 나다.
때문에 기억나는 동요 레퍼토리가 몇 없다.
“잘 자라~ 내 아기~ 내에 귀히여어우운 아기. 으으음음…라라라~”
한 문장을 못 넘기고 허밍이 시작된다.
내 귀여운 아기가 잘 자기를 바라는 간절함만 무한반복될 뿐 뒷가사를 모르겠다.
가사를 찾아볼 여유도 없다.
좀 더 길게 부를 수 있는 거 없나?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그 담에가 뭐지?”
남편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구리구리구리구리 가위바위보 아니야?”
음…뭐 … 맞겠지.
우는 애랑 가위바위보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 내 남편은?
“산~중 호걸이라 하는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와우… 나보다 더한 사람 등장이오.
선곡 센스 무엇이며, 재운다고 질질 늘여 부르는 미디엄템포의 산중호걸이라니.
“여후우는~ 봐이올린~지이가~지가~지가 지가~ “
못 들어주겠다.
태교를 할 때도 산모의 기분이 최우선이라고 하길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만 주구장창 들었던 나이기에. 도대체가 뭘 불러줘야 할지. 어떤 노래를 좋아할지 알 수 없었다.
아이유의 밤편지를 목을 가다듬고 불러보았다.
나는 타고난 저음에, 고음불가라 노래방엘 가도 마이크를 잡는 법이 없는데,
내 딸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한 곡 뽑아야 했다.
“이 밤~ 그날에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오… 서정적이야…
좀 괜찮은데…?
하지만 그 뒷가사는 역시 기억나질 않는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를 반복하다가 ‘좋은 꿈이길 바라요’가 떠오르면 그 부분을 반복했다.
‘그래, 우리 딸이 살아갈 미래에 완창은 트렌드가 아니지, 숏폼이 대세라고.
요즘 누가 완곡 듣나? 챌린지 구간만 반복 재생하지…’
나는 합리화와 자기변호에 매우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다.
결국 그렇게 내 편할 대로 아가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요새는 아가가 커서 울음을 달래는 용도가 아니라 아이를 웃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율동을 곁들인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이가 웃어주는 그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서.
아기는 입을 크게 벌리며 표정을 쓰면 신나 한다.
손도 팔도 쭉쭉 뻗으면 내가 마치 ‘제니’(아님) 나 ‘장원영’(그럴리 없음) ‘ 카리나’(절대 네버) 가 된 듯이 황홀해한다.
고음도 안 올라가고 완창은 해본 적 없으며 가사도 영 엉터리인 구간 반복 숏폼이지만
아가는 나를 연예인으로 만들어준다.
안방 1열 1인 관객의 반응이 어찌나 열광적인지 가끔은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 반응을 오롯이 받다 보면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그래서일까, 가진 레퍼토리라곤 미디엄템포 산중호걸이 전부였던 남편은 퇴근 후 루틴처럼 아이 앞에 서서 공연을 한다.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락발라드(야다, 더 크로스)나 근본 없는 지킬 앤 하이드 넘버 같은 것들로 꾸려진 그 공연은 둘 만의 콘서트 그 자체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괴로운 광경이지만,
관객의 만족도는 최상이고 공연자도 힐링되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 줄게요. 언제나 처음 같은 마음으로]
싸이의 연예인 가사처럼. 아기가 우릴 연예인으로 만들어주었으니 평생을 지금처럼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우리 아가가 나처럼 여섯 살부터 아이돌을 좋아한다 해도, 더 이상 우리 부부의 오합지졸 공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엄마랑 아빠는 지금 같은 맘으로 널 평생 웃게 해주고 싶다는 걸 알아주길.
시시해는 해도 우스워는 말아주길.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방 1열 vip 우리 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