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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라니깐!

마녀 시간

by 날랩

나는 불안도는 높지만 그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준비하고 대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냥 영원히 불안해하기만 한다. 게으르고 대책 없는 불안봇, 그게 나다.


“벌써 6개월이네?!”


“오 50일 남았네!!”


“내일이잖아!!?”


출산 날짜를 잡아두고(제왕절개로 출산했다.) 디데이를 기다리면서 줄어드는 숫자에만 놀랐을 뿐 불안을 없애기 위한 공부? 준비? 는 하지 않았다.


조리원에 들어가서도 비슷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죽일 것이라면 맘이라도 편하게 있던지, 태평히 있지도 못하면서 걱정만 한가득이었다.


아마, 나와 아기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우리 엄마, 아빠가 ‘어떻게든’ 날 도와줄 것만 같았고 그게 나에겐 꽤 믿는 구석이었다.


부모님은 같은 아파트 옆 옆 동에 살고 계신 데다,

엄마는 근 사십 년 만에 다시 경험하는 신생아 육아를 위해 ‘산후도우미 교육’을 다녔을 만큼 열정이 넘쳤다.


그야말로, 축복받은 환경이었다.


자꾸 주변에서 ‘낳아만 달라’는 분위기로 몰아가니, 착각해 버린 것 같다.


‘정말 낳기만 하면 된다고.’


남편이 출근하고, 엄마가 와주시기 전의 서너 시간, 엄마가 집에 가고 남편이 오기 전까지의 서너 시간.


단둘만의 시간이 이렇게나 어색하고 힘에 부칠 줄은 몰랐다.


초반에 조용히 잠에 들어있거나 끔뻑끔뻑 눈을 뜨고 나를 가만히 본다고 생각될 때는 그저 예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또 나만 보기 몹시 아까워 사진에 담고 이 (카톡) 방 저 방으로 퍼 나르느라 바빴다.


하지만 아가는 인형이 아니다.


우는 즉시 들어 안아 둥가둥가 달래야 했다. 평소에도 안 좋던 손목은 출산 후 말 너덜너덜해졌고, 그 손목으로 아가를 이리저리 고쳐 안았다.


불편한 손목과 굳어가는 어깨로 애를 써봐도 아가는 달래 지지 않았다. 노력에 비례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육아란 것은.


아기는 유독 나와 단둘이 있을 땐 온몸을 떨며 울었다.


몸조리 잘하라고 낮잠 자라고 배려해 주고, 잘 먹으라고 밥까지 차려주고 간 엄마를 다시 소환할 염치는 없었다. 출근 한 남편을 무작정 오라고 부를 배짱도 없었다.


이건 오롯이 나와 내 딸이 적응하고 견뎌야만 하는 시간이다.


달래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내가 만만한지 발버둥을 치고 수술 후유증으로 스치기만 해도 아픈 내 배를 퍽퍽 찼다.


아무리 내가 엄마라지만, 37년을 나만 알고 자라온 사람이 한 달도 안 되어 아가만을 아끼며 이해하고 다 희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성질은, 성질대로 났다.


“왜! 다시 들어가려고?! 배 다시 열려고 그렇게 차는 거야? 상처 도로 찢어지겠어.”


내 눈엔, 내 목소리엔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울분’만이 가득 묻어있었다.


문제는, 나와 둘이 있을 때가 아니면 그녀는 마치 나를 놀리듯이 천사가 된다는 것이다.


순둥이 순둥이 이런 순둥이가 없다.


다음날 친정 엄마가 와서는 아가를 안아 올렸고, 나는 그제야 팔을 주무르며 ‘울 엄마’한테 조잘조잘 일러댔다.


“아니, 막 발로 쿵쿵 차면서 뒤로 넘어가라 우는데, 뭘 해도 안 달래지고, 아주 성질이 보통이 아니야…!”


그러자 엄마는 나를 뺑덕어멈의 부활을 직관한 듯이 매섭게 쏘아보면서


“아기가 그러면 울지! 우는 게 맞지, 이래도 가만, 저래도 가만히 있어야 하겠니?


니 딸이 너처럼, 어디 가서 화낼 일에 화도 못 내고 혼자 훌쩍거리고 그러면 좋겠어?”


하… 아니 왜 불똥이 내 못난 성격에까지 튀는 거죠….?


또 언젠가는 내려놓으려고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버리는 통해 한 시간을 넘게 안고선 제발 그만 울어, 뚝 그쳐라고 빌며 나마저 울었던 날에도,


“서현아~ 아빠 왔다” 라며 해맑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더니 조용히 진정되는 딸을 보며 황당한 맘을 감출 수 없었다.


둘만의 세상 속 애틋한 부녀 사이에서 나는 정말이지 거짓말쟁이, 나약하고 못 돼먹은 엄마가 되어버린 채로 그렇게 억울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껴야 했다.


“아니 내가 엄만데!! 너 왜 나만 미워해?”


울컥해서 혼자 입 밖으로 뱉은 그 말에 갑자기 너무 서러워져서 엉엉 울기도 했다.


당황한 듯한 아가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속상함은 가시질 않았다.


엄마가 되면 넘치는 모성애는 당연하고, 아가가 나만 바라보고 나만 좋아해 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내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왜 내 앞에서만 인격을 갈아 끼우는 것인지, 내 딸은 진정 날 약 올리고 화나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건지... 아기를 엄마나 남편에게 넘기고 한 발 짝 뒤에서 바라보면 너무 사랑스러운 천사인데 왜 유독 독대가 힘든 건지.


모자라고 자격 없는 나를 탓하고, 죄는 없지만 야속한 딸을 몰래 미워하며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즈음 여유가 생겨 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혼자가 되는 오후의 4~7시 사이가 아이의 ‘마녀 시간’이라는 것을.


신생아는 밤잠 입면 전 이유 없이 울고, 자지러지며 보채는 데 이 시간을 ‘마녀 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맘카페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 시간대에 육아의 매운맛을 보며 지쳐가고 있었다.


하, 불안해만 하고 미리 공부하지 않은 이 모자란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 딸이 지극히 당연히 보내는 성장의 시간을 ‘내가 니 엄만데 왜 나만 미워해’라며 원망했다니.


이 사실마저 초보 엄마를 또 한 번 울리고 말았다.


‘잘 알지도 못하고 네 탓만 해서 미안해. 다 이해하고 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낳기만 했을 뿐 사과할 일투성이인 초보 엄마는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워가며 커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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