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라 다행이야
재작년 겨울, 소문만 듣던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무빙을 디즈니 플러스 구독권 이벤트를 통해 드디어 보게 됐다.
거기에서 류승룡 배우가 분한 장주원의 암호명이 구룡포다. 그의 능력은 ‘초재생능력’
어떤 적과 싸워 상처를 입어도 빠르게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그 구룡포가 우리 집에 나타났다.
바로 우리 집 슈퍼히어로! 우리 딸내미.
여리디 여린 새살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아가는 습자지같이 얇은 손톱을 가지고도 본인의 얼굴을 세게 할퀸다.
손싸개를 잠시 벗기기라도 하면 꼬물대다가 얼굴을 쉬익 긁기 일쑤였다.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 위에 빨간 스크래치가 얼마나 도드라져 보이고 맘이 아픈지.
알고 그런 것도 아닐 테고, 혼낸다고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속상한 맘에
“누가 누가 이렇게 하래! 봐봐 이거 이거! 다쳤잖아. 이게 뭐야!”
라고 쏘아붙이고선 내 맘을 할퀸 듯이 한창 속상해했다.
태어난 지 며칠이 되지 않은 이 아가한테는 어떻게 상처를 치료해줘야 하지?
연고를 써야 하는 건가?
손도 대기 무서울 만큼 여린 신생아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자 상처가 사라졌다.
오잉?
아기의 피부재생능력이 이 정도라고…?
정말 무빙에서 나온 구룡포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고 또 기뻤다.
흉 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그새 사라져서.
그렇게 상처가 생기고 뒤돌아보면 사라지고를 반복하며 아이는 신기하게 자랐다.
그런데!!
나는 구룡포가 아니다. 애석하게도 난 노화가 시작된 지 좀 됐고, 흉터는 고사하고 베갯자국도 없어지려면 서너 시간이 걸리는 나이다.
그런데!!!
내 딸은 자꾸 나를 할퀴고 꼬집는다. 정말 그 작은 손에서 나오는 힘, 악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입술을 잡아 뜯고, 목을 할퀴며 상처를 낸다.
외동으로 자라서 형제랑 치고받고 싸워본 적이 없는 데다가, 친구들이랑도 주먹다짐을 해본 경험이 없는 37세 물주먹에 맷집 제로인 나는 0세 딸에게, 구룡포 따님에게 당한 상처로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안 그래도 보살피고 모시느라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온전치 못한데, 이제 손톱자국에 벌겋게 꼬집힌 자국까지….
‘초재생능력’을 가진 딸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나는 너무나도 나약한 범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 딸은 큰 흉에도 처방받은 약을 좁쌀만큼만 발라도 금방 회복하니 엄마로서는 맘이 다행스럽다.
무빙에서도 교통사고를 함께 당한 구룡포의 아내가 아이가 아빠를 닮아 다치고도 회복하는 것을 보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웃음을 지었던 것과 같이.
아니 무슨 그런 판타지 드라마에 일상을 대입하냐고?
겨우 0세 아가가 할퀸 것에 아파하고, 아이가 작은 상처를 하루 이틀 안에 회복한 평범한 일이지만 초보 엄마에겐 그 어떤 액션 드라마보다도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무빙이 따로 없다.
작은 일상 속 스치는 에피소드들이 나에게는 블록버스터이고, 내 삶의 하이라이트다.
우리 딸이 지금처럼 마치 구룡포처럼, 아파도 빨리빨리 회복하길 바라며!
오늘도 영화 한 편을 뚝딱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