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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8

by 날나


* 책 속 내용 일부 포함되어 있음

* 등장인물 중 한 인물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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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시새움이 생기지 않는다. 터무니없이 격차가 난다면 또 별세계 이야기라 아무렇지 않아진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뺏어가고 독차지한 것 같다면, 그게 그의 분수에 가당치 않다 생각되면. 그 사랑이 내 것이 아니지만 왠지 원통하고 분한 것이다. 과연 양현이가 존재하지 않았던들 그 사랑을 덕희가 받을 수 있을까. 그를 집안에서 쫓아낸들 양현만큼의 사랑과 귀함을 받을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내 몫을 빼앗아간 게 아닌데 왜 샘이 난단 말인가. 이건 내가 받을 사랑을 앗아간 게 아니라 내가 그가 아님이 샘이 나는 걸까. 저리 태어나서 저리 귀함을 받고 어여쁘게 자라난 게 내 복이 아니라 그의 복이라서 마음이 편하지 않는 걸까. 봉순이가 어릴 적부터 보아오니 어쩔 수 없이 양현에게 정이 갈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나의 편애일까. 덕희가 좀 더 마음 그릇이 넓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그런 시새움은 환국이나 윤국이가 해야 하지 않는가. 결국 마음이 번다함은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비교하지 않았다면 내 마음이 이리 번다할 일이 없을 텐데.


뭐하나 놓치기 싫어했던 서희는 결국 환국과 양현의 혼인을 추진하고야 만다. 이거야말로 제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데. 어찌 되었건 남매로 자라났는데 피가 섞이고 안 섞이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친 남매가 아니니 혼인해도 된다는 게 도대체 어떤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인가. 어려서부터 친남매가 아님을 인지시키고 키웠으니 상관없을 수가 있을까. 혈연으로 이어져야지만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동안은 그저 가족놀이였었나. 이성적으로 냉철하다고 여겼던 서희도 결국 욕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하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아주 일말의 희망으로 사고 회로를 돌려 보자면 영광이 없었더라면 양현이 이 혼인을 수락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윤국이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인물이고, 양현도 그러하니. 아마 윤국도 따로 사랑하는 이가 없어서 더욱 양현이 좋다 생각이 든 게 아니었을까. 주변 여인들 중 양현만 한 이가 없지 않나. 그러나 아무리 이리저리 망상을 돌려보아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남매인데. 아무리 선남선녀의 남매라 할지라도 현실 남매는 결국 흔한 남매가 아닌가. 양현은 영광과의 사이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결국 파국을 향해 갈 것 같다. 이 혼인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결말을,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달려왔는가. 나는 무엇을 보고자 이제껏 읽어 왔나.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어차피 이미 현실에서 청산되지 않는 친일파와 아직도 대우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소설에서는 못다 이룬 결말을 이뤄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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