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 내용 일부 포함되어 있음
* 5부 4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포함한 감상평
일제의 패망이 눈앞에 있는 듯하지만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삶은 점점 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조선의 젊은 남녀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남희와 성환이의 불행으로 성환할매가 눈이 멀고야 만다. 그래도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버텨왔건만 도무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 아침이 오기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저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걸까.
19권. 크게 양현과 영광, 남희와 성환, 쇼지, 상의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양현과 영광은 도대체 왜 이루어질 수 없는 걸까. 신분 차이? 백정의 자손이라는 게 그렇게나 흠이 될 일인가. 신분제라는 거 많이 뒤흔들어 놓은 것 같지만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그저 둘만 바라본다면 걸릴 게 없는 사이 아닌가. 양현도 그리 좋은 출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광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가. 내 여자는 내가 책임져야지 부담이 될 수는 없다는 마음인가.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서는 걸까. 그렇다면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닐까. 여자와 남자로 만나 어느 한 쪽이 기울지 않는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어디 그렇게 자로 잰 듯이 딱 맞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나. 결국 어느 한쪽이 조금이라도 기울 수가 있는데 그 기우는 게 나라서, 혹은 내가 더 주는 것 같아 아깝다면, 그런 서로의 조건의 무게가 맞지 않아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면, 그건 사랑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부족한 만큼 나의 사랑이든 너의 것이든 채우면 되지 않을까. 채울 자신이 없는가. 결국 삶은 현실이 되고야 말 것인가. 사랑은 어차피 유효기간이 있고 그 끝을 장담할 수가 없어 무서운지도.
남희와 성환.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조선의 현실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남희는 일본 병사에게 짓밟히고, 성환도 학병으로 끌려가고야 만다. 그때쯤 우리 청년들이 겪었던 일들과 유사하다. 평범한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구석구석 일본의 손길이 뻗친다. 피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탈탈 털리게 되지 않을까. 그게 자원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일제의 수탈에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있을까.
그런데 인실과 오가타의 아들 쇼지. 해맑다. 이건, 일본과 조선의 화해를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화해할 수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화해가 가능할까. 언젠간 해야 하지 않을까. 가능할까. 화해를 하려면 사과와 용서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가능할까. 인실은 오가타에게 일본이 망하면 보자고 했지. 가능한 일인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늘 없이 자라는 쇼지는 그러한 화해의 상징 같지만 환상인 것 같다. 현실에는 용서를 구하는 자와, 용서하는 자가 존재치 않는데. 아예 전제부터 이루어지지 않는 꿈인 것 같아. 벌써 80년이 흘러버렸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마지막에 상의가 일본인 교사에게 용서를 받으며 19권이 끝난다. 일본인에 의한 불공정한 처사, 거기에 대한 온당한 항의, 하지만 힘을 가진 일본인에게 결국 무릎을 꿇어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상의. 용서받지 못한 경우에 대해 온갖 대안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상의는 일본인에게 용서받기 위해 사감실에 간다. 그 일본인 선생은 자기 사회에 깊이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일본인이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 선생이기에 있었나. 겉도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선인 학생을 용서할 수밖에 없었나. 사가모토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그건 어떤 일일까.
이제 마지막 한 권만 남았다. 이게 소설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끝이 있겠지만. 사실 진짜 삶이라면 끝이 있겠나. 무엇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까. 해방이 되면 그 이후를 기대할 수 있을까. 더 나아지지 않는 삶에 실망하고 더 이상은 기대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으려나. 당장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걱정되고 걱정된다. 다른 이의 앞날을 알고 있다 한들 나아지는 게 없다. 희망은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빛나는 걸까. 실망하지 않을 수도, 희망을 버릴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