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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20

by 날나


* 책 속 내용 일부 포함되어 있음

* 《토지》를 마무리하는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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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이다. 읽는 내내 초조하다. 과연 언제 광복이 될 것인가.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처럼 그 일이 언제 일어나서 마무리될 것인가 궁금하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서 끝이 난다. 어쩌면 이럴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양현과 영광은 어떻게 마무리할지, 윤국과 성환이 돌아올 수 있는지, 남희는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헤어졌던 가족들은 다들 무사히 만날 수 있을지. 사실은 20권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내 우울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석이나 연학이가 보이는 깊은 패배감. 이건 광복에 대한 기대보다는 광복이 되어도 별수 없을 거라는 체념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을까. 상현과 두매, 뒷부분에서 범학과의 갈등에서도 얼핏 비친다. 그건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저자와 독자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일제라는 큰 적이 눈앞에 있으니 합심하고 있지만, 그 적이 사라졌을 때는 어찌 될지 자명하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사상에 따라 이미 여러 갈래 파가 나뉜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그러하고 공산주의가 그랬다. 5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뻔한 상황은 그저 무력감만 느끼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빨리 광복이 되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읽는 내내 희망을 갖지 못했던 터라 오히려 이렇게 끝난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생각이 든다. 광복만 되면 근심 걱정이 없는 그런 세상이 될 것만 같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리라 믿었는데, 왠지 요원해 보인다. 다른 이는 몰라도 길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어쩌면 6부가 있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와 갈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갑자기 상현이 등장해서 양현과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모화는 이렇게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인실과 오가타는 결국 못 만날 것인가, 쇼지는 영영 찬하의 아들로 살게 될까. 덕희는 결국 영영 양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환국과 화해를 한 걸까.


책을 덮고 보니 허무하다. 그래서 공주님과 왕자님은 오래오래 행복하였습니다,의 결말인가. 어차피 인생은 흘러가기 마련이어서 광복이 된 후에도 각자의 삶은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날 줄을 몰랐는데. 먹다만 것처럼, 읽다 만 것처럼 아직 더 읽어야 할 것이 남아있는 것처럼.


작년 4월, 약간은 즉흥적으로 챌린지를 신청해서 중간에 많이도 밀렸지만 그래도 아예 놓지 않고 겨우 끝까지 따라왔다. 약간은 의무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그래도 챌린지가 있어서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읽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마감시일이 정해져있으니, 커트라인을 세어가며 가끔은 한주 씩 건너뛰며 아슬아슬하게 완료했다. 이런 긴 소설의 끝은 항상 허무하단 걸 알지만 그래도 엔딩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이왕이면 가장 애정하는 등장인물의 끝을 그 끝의 끝까지 따라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안되겠지.


관음 탱화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서희를 닮았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그에 관한 언급이 없어서 그저 길상이 서희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를 이상향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저 나의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병수가 관음 탱화를 보면서 서희를 닮은 듯하다는 모습에 역시나 싶었다. 내내 서희를 외면했지만 역시 길상은 서희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게지? 서희도 그러하고. 그저 서희라도 길상과 편안하게 말년을 보냈길. 덕희가 마음을 고쳐먹고 환국에게 용서받고 양현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기를. 성환과 윤국은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돌아오고 양현은 영광과 다시 만나 맺어질 수 있기를. 그래서 그 병원에서 남희가 삶의 희망을 갖고 씩씩하게 살아나가길.


그리고 이 곳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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