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충분히 '나'다운가.
도서명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글 :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출판사 : 나무생각
출판 연도 : 2016.08.08
별점 : ★★★★
난이도 : 보통
내 맘대로 한 줄 발제 : 나는 지금 충분히 '나'다운가.
책 선물,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미지와 감각에 의존하는 다른 선물들과 다르게 책 속에는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다. 없을 수가 없다. 너무나 명확해서 바로 알 수 없더라도 은근히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게다가 내가 받아들인 내용과 선물 받은 사람이 이해하는 부분은 또 다를 텐데. 그래서 보통은 재미있는 책이니까, 좋은 내용이니까 너도 보았으면 좋겠어라며 가볍게 선물을 하는 편인 것 같다. 책 선물을 위해 추천을 해야 하는 경우 베스트셀러의 자기 계발서가 어지간해서는 실패의 확률이 줄어든다. 그런데 영감이 책 선물을 받아왔다. 그것도 팀장에게서.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왜 이 책이었을까. 영감에게만 준 게 아니라 팀 전체에 돌린 것 같은데. 출간된 지도 오래된 이 책이 무엇이 좋았을까. 개인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다. 군더더기가 없이 여기저기 발췌하고 싶은 글들이 많고 이해가 어렵지 않은 인문학 책. 그치만 경험상 출간된 지 이렇게 오래된 책은 진짜 마음에 들어서 선물한 경우가 더 많은데. 아니면 서점 매대에서 우연히 제목만 보고 끌려서 선물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에리히 프롬 책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호불호 없이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읽어 내려가기는 어렵지 않고 나랑 결이 비슷한 것 같다. 철학 책 치고는 그래도 친절하게 내용이 진행되는 편이다. 인생이란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특히. 내 경우에는 답을 못 찾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책은 제목에서부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음, 그래. 나는 지금 무기력한가 먼저 물어봐야겠다.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 책의 질문부터 글러먹은 게 아닌가. 혹시 선물 한 사람은 받을 사람들이 무기력해 보였던 걸까. 좀 더 생기 있게 과업을 완수하기를 바랐던 걸까. 회사 생활을 하면서 활기 넘칠 수가 있는지가 더 궁금한데.
이 질문에 답을 한 문장으로 답하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해 본다. 사람은 이제 목적이 아닌 도구가 되어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주어진 본성대로 살지 못해서 무기력해지는 걸까.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틀에 따라 살면 굳이 자기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점점 의지가 사라지면서 스스로 힘을 내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줄에 달린 인형은 최대한 힘을 빼야 줄의 움직임에 따라 예쁘게 움직일 수 있게 되니까.
이름이 없으면 정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남의 생각을 듣고 자기 생각인 것처럼 읊으면서 꾸며진 가짜 감정을 진짜라고 믿는다. 정말 스스로 인식하고 사고하는 법을 마냥 잃어버린 걸까. 아마도 이미 세상은 소수의 마음대로 꾸며지고 있는지도. 정보가 많고,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내 머릿속이 아니라 기사와 포스팅 링크들을 주고받으면서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일일이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찾아다니기에 지금 세상은 또 너무 복잡해지지 않았나.
예전에는 누군가 커뮤니티에 질문 글이 올리면 그래도 직접 타이핑하며 문제 해결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챗 GPT에서 답변을 그대로 긁어와서 답글을 달아준다. 맙소사. 읽다 보면 중간에 오탈자도 그대로 있다. 그 답글을 달아주는 사람은 읽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그냥 전달하기만 한 것이다. 나도 챗 GPT에 물어보고 글자 읽을 줄 아는데요. 굳이 그걸 긁어다 복사 붙여 넣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에게 관여하고는 싶고, 생각하기는 싫고, 챗 GPT의 답변은 그럴듯하니까. 특유의 말투가 있는데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조차도 생각하기를 포기한 걸까.
타인, 혹은 자신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피상적인 관계로만 엮이다 보면 어느 순간 허무해진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쓸모없음. 허무, 공허가 반복되면 무기력도 같이 반복되지 않을까. 굳이 내가 힘을 내지 않아도 되는데. 꼭 쓸모가 있어야 하나. 그저 현상 유지만 하고 살아도 그럭저럭 시간은 흘러가고 월급날이면 돈이 들어오고 또 그렇게 하루하루 먹고살아가지는데.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그날그날 눈앞에 닥친 일들만 어떻게든 해치워나가도 살아지는데. 힘을 내는 건 힘이 들어. 어쩔 수 없어. 나를 힘들게 하지 마.
이 일의 결과가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고, 내게 쌓여가는 경험치였어도 이랬을까. 그렇다면 좀 더 좋은 보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그냥저냥 했을 때 1의 경험치가 쌓이지만 좀 더 열심히 하면 10의 경험치가 쌓이고 1000 정도 쌓이면 레벨 업도 하고. 그치만 레벨 업 할 때마다 아무 스탯만 찍어대면 또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없다. 어떤 스탯을 집중적으로 쌓고 싶은 건지. 그럭저럭 살더라도 하나의 스탯만 계속 찍어나갈지, 골고루 찍을지.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먼저 알아야 하겠네. 공주를 만들지, 연예인을 만들지, 일꾼을 만들지. 그게 없으니 뭔가 할 의지도 없고 그런 거 아냐.
근데 그것도 게임같이 쉽지 않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이리저리 떠밀리다 이렇게 온 것 같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도움이 되는 걸까. 발전은 하는 걸까. 이러니 또 무기력해지지. 어차피 또 떠밀려 갈 것 같은데. 커다란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버둥거려도 바다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어지는데. 이대로 이렇게 흔들거려도 괜찮은 거 아닐까. 이렇게 또 괜찮지 않냐고 응석 부리고, 제자리에 멈추고.
책을 여기저기 발췌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라가면 더 재미있다. 사람은 계속해서 균형을 찾아가고 싶어 하지만 균형을 찾는 순간 바로 불균형이 오는 부분은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성인들은 그 균형을 찾고자 평생을 노력했을 텐데, 그들도 그 균형을 찾지 못한 걸까. 저항하기 위해 공개적인 권위를 선택해야 하는 부분은 요즈음에 더 생각이 많게 한다.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쾌락주의자는 꼭 나 같기도 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한 이에 대한 내용이다. 스스로가 존중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언행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자기 자신을 하찮게 생각했던 걸까. 이렇게 이 정도는 강하게 행동해야 다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목소리가 크고 폭력적인 사람은 그만큼 그동안 수많은 무시를 당했던 걸까. 오히려 권위가 있으면 작은 목소리로도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사람일까. 조용히 집중시킬 수 있을까.
질문을 하고 질문의 답이 나왔는데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 말고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데 뭔데, 내가 해야 하는 게 어떤 건데, 그래서 나는 무기력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나. 아직 나는 답을 찾지 못했는데 그럼 계속해서 무기력을 반복해야 하나. 나답게 살수 있을 때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나는 나답게 살고 있나. 나는 정말, 언젠가는 '나답게' 살 수 있나. 그래, 그래서 그 '나답게' 가 뭔데.
책 속 발췌
9. 자아 경험이 집단 암시의 결과인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자아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고유의 사고, 감정, 행위로 경험하는 것이 집단 암시의 결과물은 아닌가에 대해 의심해 볼 계기도 사라진다.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면 모두가 완벽한 진짜 삶을 산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19. 자연에서 거의 뿌리가 뽑힌 존재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문제를 떠안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의미를 삶에 부여할까?
... 하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는 대답을 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우리가 내놓는 대답에 좌우된다.
21.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지금도 과거와 모습만 다를 뿐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 윤리 문제에 봉착해 있다.
25. 우리는 무조건 공개적 권위를 택해야 한다. 그래야 권위의 요구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 일주일에 3일만 일을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시간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붕괴를 수용할 만한 병원은 아직 충분치 않다.
30. 모든 인간은 자기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아니며, 그 어떤 인간도 타인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37. 모든 역사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현실성을 잃은 것이다.
47. 하지만 설사 균형을 찾았다 해도 그 균형에 도달하자마자 새로운 모순이 등장하고, 인간은 다시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끝없이 계속된다.
51.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를 기계를 조작하고 그 기계에 조작당하는 사물로 느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그만큼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58.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자유로운지, 얼마나 자유로운지의 문제이다.
61. '열정적인 사람' 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65. 쾌락주의자의 슬픔은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결국에는 별것 아닌 사람이 되고 마는 '세인'의 슬픔이다.
95. 학생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점점 더 많은 사실을 배우는 데 쓰이기 때문에 정작 사고를 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는다 물론 사실의 습득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허구일 뿐이다.
98. 냉소주의와 순진함의 결합은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 결과 현대인은 자신의 사고를 하며 결단을 내릴 용기를 잃게 된다.
110. 현대인이 느끼는 고립과 무기력의 감정은 인간관계를 통해 더 강화된다. 인간은 서로를 조종하고 서로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며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114. 추상적 고객으로서 그는 중요하지만 구체적 고객으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125. 이 모든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사고가 자기 생각의 결과, 즉 자기 행동의 결과인가 하는 점이다. 사고의 내용이 옳은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151.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 이 놀라움을 따라가 보면 자신이 진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깊은 확신이 원인으로 밝혀진다.
189. 우리는 구체적인 사람에게서 추상을 본다.
199. 갈등은 감탄의 원천이며, 자신의 힘과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원천이다. 갈등을 피하면 인간은 마찰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된다.
201. 오늘날의 평등은 무리와 달라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동일성이다. 차이가 평등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공포가 지배하는 것이다.
203. 태어날 준비- 모든 안전과 착각을 포기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