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진짜' 나인가.
도서명 : 혼모노
글 : 성해나
출판사 : 창비
출판 연도 : 2025.3.28
별점 : ★★★
난이도 : 보통
내 맘대로 한 줄 발제 :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인가.
같은 생활권이 아니면 만나는 약속 한 번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책 한 권을 읽고 독토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어영부영 한 달 두 달 넘어가다 보니 한 권을 더 읽고 같이 보자고 했다. 그리고 고른, 지금 가장 핫한 그 책. 책 제목보다도, 표지보다도 먼저 뇌리에 박힌 '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 (박정민 님) 그래, 사실 요즘 누가 책을 보나. 영상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전에 어디서 봤는데 유튜브인지 넷플릭스인지 자기들 경쟁상대는 잠이라고. 그래, 재미있으면 일상생활이고 잠이고 뭐고 다 놓고 보는 거지. 그런데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고? 정말?
현재 국내 도서, 소설 모두 베스트 1위인 그 책. 혼모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우선 바로 결제하고 다음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술술 읽히는 데 뚝 끊긴다. 아, 이대로 끝인가 궁금한데.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게 단편의 맛인가. 아쉬워. 내용이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 소설을 모아 만든 단편집이다. 대부분 1인칭 시점에서 서술이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이 모르는 건 나도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란 한국 사람이니까 이리저리 끼워 맞춰볼 수는 있다. 일부러 그런 건지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수월하게 읽힌다. 그렇지 않으면 이승만광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있게 될 수도 있다. 좀 더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영화감독 김곤이 진짜 무슨 짓을 한 건지. 구의 집은 의도대로 사용되었을까. 권도우와 진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알 수가 없다. 다만 가늠해 본다. 우선 혼모노가 무슨 뜻인지 모르니 찾아본다.
本ほ(ん物もの) 일본어로 진짜라는 뜻, 반의어는 니세모노偽物(にせもの). -나무위키
이 책은 스스로가 진짜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왠지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 읽기에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어려운 내용은 없는데 궁금한 건 많아지네. 진짜 시간이 훅 지나가고 보는 동안에는 딴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장 공감되고 몰입했던 이야기는 '잉태기'. 내가 엄마여서 그런가 엄마 시점에서 자식에게 좋은 건 다 해주고 싶은 그 마음. 어디까지가 적정한 선인지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는, 어쩌면 집착.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누누이 듣고 마음에 새겨왔던, 육아란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키워주는 거라고 그랬는데. 아직 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이 80이 되어도 엄마한테는 아이처럼 보인다는데. 저렇게 딱 붙어서 모든 걸 케어해 주는 게 진짜 엄마인가. 가짜 엄마인가. 엄마가 가짜이면 할아버지는 진짜인가.
얼마 전 대학교에 학점이 잘못되었다며 이의신청한 엄마가 있었는데. 중고등학교 수행평가를 대신해 주는 엄마들도 이미 많다 하고. 나는 안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 어릴 때 엄마는 내가 뭐 배우는 지도 몰랐던 것 같은데. 아이의 친구관계가 내 인간관계 같고, 아이의 성적이 내 성적이라고 동일시해 버리면. 엄마는 과연 뭐지.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건가. 그러면 이제 엄마도 가짜, 그리고 엄마에게 인생을 맡겨버린 아이도 가짜가 되는 걸까. 하지만 벌써 아이의 두 배의 이상의 삶을 살아버린 엄마는 자식이 하는 것 하나하나가 다 손바닥 위고 빤히 보이는걸. 간섭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참지.
여러 단편을 엮었는데 왜 제목을 혼모노라고 정했을까. 게다가 마지막을 보니 단편의 공개일 순서대로 목차를 나열하지도 않았다. 진짜. 本 근본 본. 근본. 무엇의 근본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책 한 권으로 엮은 건 그만큼 묶어서 같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 진짜 정체성은 겉모습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평생을 살아온 나의 진짜는 이제 가짜가 되었을까.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은 진짜 인간인가. 진짜 진심을 나누는 인간관계는 어디까지 감추고 어디까지 들어내야 할까. 그런 걸 계산하지 않고 그저 사랑만 하는 관계,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을까. 내 의지로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처음에는 진짜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다. 그 사람의 죄까지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인가. 그 사람의 흠결까지도,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그마저도 받아들일 것인가. 그를 위해 내가 그 죄의 정당함을 소리칠까. 그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런 것도 다 이유가 있고 그럴 수밖에 없고, 사랑한다면 그 쯤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빨 빠진 호랑이를 만졌을 때 그 기시감이 이런 게 맞나.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데 '왜 나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일까. 그는 그렇게 사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나. 그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서 그런 걸까. 그도 그저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에게 결점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나. 그의 무엇을 위해 항변했나. 이빨 빠진 호랑이 일수도 있다고 이미 느끼고 있었을까. 모른 척했나. 내가 대신 변명해 줘야 하는 사람이라니. (길티 클럽)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그 사건, 진실에 닿을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 겪는 친절, 열기와 분위기. 그 사람들은 진짜 좋은 사람들인가. 이것도 내가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 걸까. 선입견을 싸악 빼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까. 어쩌면 너무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평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 가까이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던데. (스무드)
그렇게 30년간 나를 지탱해 주던 삶의 기둥이 홀연히 사라졌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 나는 껍데기 인가. 나는 나의 평생을 진심을 다해 할멈을 모셨는데. 내 인생 가짜라고 할 텐가. 나를 가짜라 할 수 있나. 아니면 그동안의 나는 나만 모른 채 가짜였나. 나의 삶이 가짜였다는 걸 나만 모르고 그렇게 30년을 이용당하고 이제야 진짜 가짜가 돼버린 건가. 타인, 타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존재에 좌지우지되는 나의 삶은 과연 오롯이 내 것이었나 모르겠다. 어쩌면 트루먼처럼 이제야 비로소 나는 진짜 내가 되는 걸까. (혼모노)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나. 인간을 위한다고 했는데 '어떤' 인간을 위한 설계였나. 구보승은 오롯이 발주한 사람을 인간으로 상정한 것 같다. 고문해야 하는 인간을 위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기 위해 설계를 하지 않았을까. 도덕, 인정, 양심들을 배제한 채 오롯이 목적만을 최우선으로 두는. 읽다 보면 구보승은 꼭 기계(AI)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고 입력된 명령어에 따라 출력하는. 그리고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으니 개의치 않는. (구의 집)
결국 사람은 사람과 섞여서 관계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게 다 환상이라고 하면 어떻게 살아. 이 사람이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닌지를 매번 살펴봐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나도 그에게 진심이 아닐 수 있는데.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온갖 언급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뒤로 숨기면서 별명을 부르며 겉으로만 친해지는 이 관계. 혹시 나만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척을 했던 거야? 그때 그 공기, 온도와 색은 추억이 아닌 나만 느낀 착각이었나. (우호적 감정)
그렇다면 내가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아마도 자식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 줘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것들로 아이가 아프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해줄 거야. 하지만 이걸 내가 싫어하는 그 영감탱이와 나눠서 해야 하나. 그것도 이렇게나 맞지 않는데. 사사건건 시비다. 이 아이를 진짜로 사랑하는 건 난데. 나뿐인데. 너의 사랑은 가짜야. 그 가짜 사랑으로 아이를 흔들어내지 마. 내게서 뺏어가지마. 하지만 역시나 나의 사랑도 가짜였나 봐.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잉태기)
그래서. 나는 그대로 있으면 될까. 가짜가 진짜인 척한다고. 가짜가 너무나 많다고.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꼭꼭 숨어있을 거야? 피하면 가짜가 진짜가 되나. 오해가 이해가 될 수 있나. 이렇게 또 생각만 하다가 미룰 거야? 생각보다 간단해. 어려운 건 없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만히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메탈)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긴가 민가 했는데. 재미있다. 지인들과 모여 혼모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같이 글을 남겨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쏟아낸다. 본질이 무엇인지, 진짜가 무엇인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인지. 인간이란 원래 쉽게 풀리는 문제보다는 그렇지 않은 문제에 어쩔 수 없이 골몰하게 되기 마련인가 보다. 그리고 그래서 나오는 답이 제발, 제대로 된 방향이길.
2025.07.09 -07.11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65.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무드
109. 저 지금 이승만 광장에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요.
혼모노
153.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193.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우호적 감정
236. 그런 관계가 어디 있겠어요. 다 환상이죠.
잉태기
297. 연갈색 눈을 굴리며, 아주 작게, 기운이 다 빠진 소리로, 힘겹게.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도.
메탈
333. 이렇게 간단한 일을 왜 지금껏 미뤄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