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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Sep 20. 2024

[문학] 자기 앞의 생

나는 오롯이 내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있는가.

* 책 속 결말 포함되어 있음


도서명 : 자기 앞의 생

글 : 에밀 아자르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 연도 : 2003.5.6 (2판 2015.8.11)

별점 : ★★★★

난이도 : 쉬움

내 맘대로 한 줄 발제 : 나는 오롯이 내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있는가.



-책을 읽고 나서-


그냥 제목과 표지만 보고 나서 한번 읽고 싶어졌다. 꾸준히 스테디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계속 그 책을 찾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대신 소설은 배경지식 없이 그냥 바로 읽기. 미리 선입견이 생겨버리면 책 읽기에 방해가 된다. 최대한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지 않고 책을 먼저 읽고 그 후에 탐색하는 편.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는 것 같아. 어린아이들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이 그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제목은 무슨 의미일까. 제목은 허투루 짓지 않는다는 건 내가 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고정관념 중 하나이다. 글을 쓰는 내내 단어, 조사 하나하나 고민해서 쓰다 보면 그중 제일 눈에 띄고 중요한 제목은 제일 숙고해서 정하지 않을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건 참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가장 내 색깔을, 내 의도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제목. 


그런 면에서 자기 앞의 생은 도대체 왜 제목이 자기 앞인 생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잘 와닿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모모의 입장에서만 봤다. 엄마와 같은 존재를 잃어가는 어린아이. 어린 시절, 아니 평생을 거쳐 엄마라는 존재는,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나라는 도화지의 색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죽어간다. 그래서 나는 남겨질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에 자꾸 슬퍼졌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모는 그녀가 원하는 죽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같지만 또 그 거짓말에 주변 어른들은 깜빡 속아 넘어간다. 속아 넘어간 걸까 속아 넘어가 준 걸까. 마침내 로자아줌마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모모는. 과연 건강한 정신을 지니고 자랄 수 있을까. 


 이미 로자 아줌마의 비뚤어진 애정으로 자기 나이보다 4살은 어린 나이로 알고 자라왔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혼자 숟가락으로 밥을 먹게 되고, 대소변을 가리게 되고, 혼자 씻고 청결을 유지할 줄 알게 된다.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것들이 해결되고 나면 그다음엔 정신적인 성장과 독립도 해 주워야 한다. 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모모가 떠날까 걱정하고 두려워서 모모의 나이를 원래 나이보다 어리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미 14살이 된 모모는 10살이 살아야 할 세상을 살게 되었는데 그건 모모의 결정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였다. 남들처럼 경험하고 했어야 할 일들을 스스로 하지 못하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평생 로자아줌마가 모모를 챙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홀로 설 수가 있을까. 


 가끔 나는 걱정이 된다. 나와 영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경우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물론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언젠가 독립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게 계속 걱정이 될 것만 같아. 남겨진 아이들이 씩씩하고 강한 마음으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더는 못 자라게 마냥 아이 취급만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무럭무럭 키워야 할 텐데. 아픈데 없이 건강한 나는 그렇지만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끌어안고만 있다.


 그러던 중 독서토론의 날이 왔다. 이름은 거창하게 독서토론이긴 하지만 친한 지인들과 같은 책을 읽고 내용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누는 그런 소소하고 사적인 친목 모임. 그런데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니었나 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책은, 나이 듦에 대하여, 자기 삶의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젊었을 때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몸이 아픈 나이 든 사람. 그녀는 자신이 생명이 자연적으로 끝날 때가 되면 더 이상 연장을 하지 않은 채 죽고 싶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의미 없는 삶을 얼마나 더 살게 될지 기네스북을 갱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아프고 힘들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한다. 모모만 빼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끝낼지 결정은 했지만 모모 말고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런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는 모모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이루워준다.


이 책은 모모의 뒷이야기까지 나오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나이 드는 어른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들에 더 집중되어 있다. 아이들은 낳으면 알아서 잘 자라는 게 아닌데. 언젠가 엄마 품을 떠나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보호자의 품에서 잘 경험시키고 성장시켜 줘야 하는데.


 로자 아줌마나 모모나 모두 자기 삶을 결정했지만 그대로 행동으로 바꿀 능력이 없다. 로자아줌마의 삶도,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혼자서 할 수 없게 된다. 모모는 태어나서, 버려지고 원래 나이보다 어리게 살게 되는 모든 것들이 자기가 그러려고 했던 일들이 아니다. 엄마가, 아빠가, 로자 아줌마가 그렇게 정해 버렸다. 하지만 이제 사랑하던 로자 아줌마는 세상을 떠났고, 부모에 대한 일을 알게 되었고, 원래 나이를 찾게 된다. 이제 모모는 어떻게 자랄까.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주어진 대로 살 지, 행동을 할지.


과연 나는 나의 인생에 어디까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뭔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가 결정해 주는 인생. 그리고 이제는 내가 결정해도 되는 나이와 상황인데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이제 보니 결정을 했다, 안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행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로자아줌마가 그렇게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모모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그냥 병원에서 연명치료가 더 통화지 않을 때까지 자신도 잃은 채 그냥 누워서 숨만 이어가고 있었을 테지. 주변 사람들이 다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내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누군가는 나를 위해 함께 행동해 줄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해줄 수 있는지.


 이렇게 어영부영 사는 게 나이 드는 걸까. 앞으로의 날들 중에서 지금이 제일 어리다는데. 지나간 날들에 대한 후회와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걱정을 가득 안고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지금 이 순간을 꽉 채워야 하는데 후회와 걱정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런 내가 싫어서. 


 점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텐데.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면서 앞으로 못하게 될 일들에 대해 걱정이다. 뭐지. 나란 애는. 


원래 입으로 걱정하는 게, 손가락으로 물어보는 게 제일 쉽지. 그러지 말자.



-책 속 내용-


13.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17. 그녀가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때는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적시에 올바르게 깨달으려면 얼마나 더 배우고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22. 하지만 우리는 무정한 나이였다. 

나는 몇 살을 더 먹어야 다정한 나이가 될까.


23. 아이와 아이의 미소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수 없이 둘 다 데리고 있을 수밖에.

사랑스러움과 아이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아.


54. 마음은 한마디 한마디 모두 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고 싶은데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종종, 아니 아주 자주. 하고 싶은 이상은 크고 계획은 방대한 반면에 실행이 안 된다. 그러다 결국 몽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망상이 되진 않을까 늘 걱정.


63.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결국 내가 바라는 현실을 말로 계속해야 한다. 꿈꾸는 다락방과 시크릿이 여기에서 또 나오는데. 아무래도 말에는 힘이 있으니까. 우울한 소릴 계속하면서 우울 속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65.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만 싶어 진다. 

내 안에서 내가 만드는 폭력.


72.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86.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어린아이는 모두 사랑받고 행복하길.


95.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 붙박이장은 문짝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조금만 흔들려도 발칵 열려버리는 바람에 온갖 것들에 눈물이 쏟아지고야 만다.


96.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99.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아줌마에겐 모모가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아무도 없는 게 아닌데. 모모가 이렇게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는데. 


101.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능력이 떨어지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


102. 노인들에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젊은 시절이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자꾸 라떼는.. 하면서 말이 나온다. 현재를 살아야 하는데 자꾸 과거를 추억하고 싶어 진다.


142.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죽고 싶어질 때는 초콜릿이 다른 때보다 더 맛있다.


165. 어쩌면 그런저런 욕망이 아니라 그저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런 생각을 하느니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173. 완벽하게 죽고 싶다고. 죽은 다음에 또 가야 할 길이 남은 그런 죽음이 아닌.


178.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코코가 생각났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면 사후세계의 그의 존재도 사라지고 만다고.


178.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256.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71.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 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그리고 무얼 하기에 너무 늦은 때도 없지.


279.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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