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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Sep 28. 2024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시간은 정말 '흘러'가는 개념일까.

(어바웃타임 내용 포함)

도서명 : 이토록 평범한 미래

글 그림 : 김연수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 연도 : 2022.10.07

별점 : ★★★★

난이도 : 읽기엔 약간 어려움

내 맘대로 한 줄 발제 : 시간은 정말 '흘러'가는 개념일까.


 김연수 님의 책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제목을 여러 번 보았는데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소년 같은 작가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용과 저자에 대해서 일절 알아보지도 않고 원더보이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라는 책의 제목으로만 막연히 갖게 된 선입견. 이번에도 스마트 도서관에 운 좋게 남아있는 책을 발견하고 바로 빌렸다. 한 권짜리 긴 소설일 줄 알았는데 단편집이었다. 


 처음엔 편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어렵다. 첫 번째 단편부터가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의 장자가 생각나고 어바웃타임이 생각난다.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고 무슨 말인가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머리말인 줄 알고 읽었었는데 아니었다. 소설인의 짧은 소설이 더 인상적이다.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똑같은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 그건 처음과 같은 행동을 하겠지만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 그래서 어바웃타임이 생각났나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하루에 만족하고 살게 되면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게 되는 걸까. 지금 나의 삶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가 버린 시간에 자꾸 후회하고 고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언제든 새로 고침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럼 후회를 하지 않게 될까. 어차피 뒤로 돌려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되면 오히려 담담하게 하루를 즐길 수 있게 될까.


 단편을 몇 개 읽어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몇 개의 이야기를 모아서 이야기하는 건 무언가 관통하는 주제가 있을 텐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 어떤 게 이토록 평범하다는 걸까. 모두의 미래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후기를 적다가 교보문고 검색을 해보니 책의 띠지까지 이미지로 남아있다. 

"종말 이후 사랑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아.. 이별. 누군가와의 이별을 평범한 미래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언젠가는 오게 될 평범한 미래라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픈 결말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현재의 슬픔이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고 하다. 물론 그렇겠지. 다만 나는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자는 이별은 정해져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조금 슬프다.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건. 이렇게 열심히 아등바등 살아도 헤어짐과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는 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P207.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해도 그중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명뿐이라고.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그래도 다행인 건 그 한 사람이 내게 있어서 다행이고, 그 사람에게 내가 그 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래도 그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니 다행이야. 언제는 이별이 정해진 미래라면 그때 조금 덜 슬플 수 있게 지금 함께 하는 나날들에 충실해야지. 어쩌면 영원히 옆에 있을 거라는 믿음보다는 언젠간 헤어질 수 있는 사이라는 게 오히려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해주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 그냥 지인보다 가족에게 더 소홀하고 막 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무얼 해도 다 이해해 주고받아 줄 거라 생각하고 태어날 때부터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에 헤어지는 상황에 대해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남에게 친절한 것보다 가족에게 친절해야 하는데 더 퉁명스럽고 더 기분대로 행동하고야 만다. 그리고 언젠가 이별하게 되면 더 잘해 줄걸. 이라며 후회하고야 만다. 사실 언젠가 그때가 오는 건 피할 수 없다. 지금 미래를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을 뿐.


모든 미래에는 이별이 있다.

만남으로 끝나는 미래는 없겠지. 

혹시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고 하는 건 

이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이별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아주 평범한 미래이니까 

너무 거기에 매몰되어 있지 말라고.


그리고 언젠가 마주하게 될 이별이니까 

그 미래를 기억하고 지금에 충실하라고.




-책 속 내용-

이토록 평범한 미래


16. 어느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서로 공유하는 시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시간의 종말이란 세계의 종말은 아니고, 둘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뜻했다. 

사실 인류가 멸망해도 세상과 지구의 시간은 흘러가겠지. 다만 나의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이 나에게 진짜 종말이고 내 시간과 상관없는 언젠가 다가올 인류의 멸망도 사실은 나에게 종말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게 내 세대가 아니길 바라는 건 또 지독한 이기심이겠지.


18.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다행이다. 기본이 행복이어서. 지금 당장은 파도에 가려서 보이진 않지만 거기에 있어서. 


29. 소설 속 연인은 두 번의 시간 여행을 통해 시간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사실 과거도 미래도 약간은 관념적으로 내가 실제 겪을 수 없는 부분이니 그건 실제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그 흐르고 있다는 시간은 사실 없는 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겪은 게 정말로 '정말' 인가.


31. 대부분의 말은 듣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어떤 말들은 씨앗처럼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마음에 콕 자리 잡아서 계속 되새김질하게 되는 말이 있다. 사실 별거 아닌 사소한 말인데 왜 사라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걸까. 그 말이 소중해서일까 가슴이 아파서일까. 나도 모르는 나의 무의식이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34.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을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는 건 아직 미래에 다가가지 못했다는 게 아닐까. 사실 미래와 기억이란 단어는 서로 같이 어울릴 수가 없는 말이다. 그런데 미래가 오지 않았다는 말로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왠지 미래도 과거처럼 갈 수 있다는 기분을 준다. 사실은 과거도 갈 수는 없는데. 


난주의 바다 앞에서


44. 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본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에 가까웠지만, 그는 늘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모습을 통해 지금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그런 생각은 종종 하고 있다. 내가 있고 없고 가 세상에 객관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뇌가 이미 시각의 일부를 자기 마음대로 편집하고 있는데 내가 보고 듣고 하는 세상의 것들이 이미 나의 주관이 들어간 채 편집된 세상이라면. 내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사실이다.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습으로 나를 돌이켜 본다는 것.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불행한가 행복한가. 어두운가 밝은가. 미래는 있는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 그건 나의 어두운 마음 때문일까. 


진주의 결말


85.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내가 가지고 있는 틀에 상대를 맞춰서 설명이 가능할 때 나는 상대를 이해했다. 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사람 그 자체로 인정할 수는 없는 걸까. 이해가 필요한 걸까.


88.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생각들에 우리가 줄을 그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혼돈과 카오스의 상태로라도 제 곁에 아빠가 남아 있는 게 더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었다면?

..... 아까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진주는 마지막까지 아빠의 생각들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줄을 그어버렸다. 그냥 그 생각들도 다 옳다고 인정해 주는 게 어려웠을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생각은 모두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줄을 그어버린다.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애쓰기"라도 하라는 걸까.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야 마는 사람을 배척할 것인가 그러한 사람도 포용할 것인가. 아마도 배척할 것만 같은데. 그렇다면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게 더 나은 삶의 방식이 아닐까.  



엄마 없는 아이들


113. 몸이 죽기로 결정하면 그가 계속 살아갈 방법은 없었다. 과연 몸이 죽기로 결정하는 순간을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내 몸이 죽기로 결정하면 어떤 기분일까. 이미 노화를 시작하는 순간이 죽기로 결정한 순간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 몸은 이미 죽기로 결정한 듯하다. 내가 건강해지기 위한 그 모든 시도들은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걸까. 죽기로 결정했는데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이미 내 몸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불수의근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데.


147.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인생에는 있는 법이다.

그냥. 내 의지와 상관없이 피할 수 없는 불행이라고 읽혀버렸다. 내가 피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내게 닥칠 때. 그때 나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151. 울음을 멈추는 데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던 것들.

울고 있을 때는 아무리 달래줘도 울음이 더 복받칠 뿐. 


사랑의 단상 2014


192. 애당초 원해서 빠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원한다고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누군가를 대하는 감정. 미움이든 사랑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안 좋은 감정이라면 좀 더 유하게 하려고 노력할 뿐.


207.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해도 그중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명뿐이라고.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한다. 이미 기억 속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예전에 알바할때는 가끔 지나간 알바생 이름을 기억 못 하는 직원이 이상했다. 같이 일했던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기억을 못 하지. 소개팅했던 사람의 이름을 잊었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이상했다. 그래도 일대일로 만남을 가지고 시간을 보낸 사람인데 이름을 까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도 그렇게 돼버렸다. 밖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연락하는 사람은 더 소수이고 만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관계.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깊어지는 건 어렵고 힘들다. 


209. 그처럼 내 안에는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 아무런 쓸모도 없는 말들이 가득하네요. 끝내 부치지 못할 이 편지에 적힌 단어들처럼.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말은, 그때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그 말, 한때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는 말할 수 있었으나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소중하고 중요한 말은. 아껴두면 안 된다. 민망해서, 소중해서, 흔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껴두었지만 막상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소중한 것들은 뒤로 미루면 안 된다. 


2024.01.16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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