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가을이 익어가던 어느 날 지하철 역 스마트 도서관에서 딱 만나고 말았다. 제목이 워낙 뇌리에 박혔기 때문에 역시 책에 대하서는 잘 알지 못한 채 바로 빌려왔다. 하지만 늘상 그러하듯 또 책상에서 3주 정도 묵혔다가 반납 당일이 돼서야 읽기 시작했다. 사실 연체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반납할까 하며 첫 꼭지를 읽었는데 그냥 반납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읽을 수밖에.
눈물을 줄줄, 훌쩍거리면서 몇 시간 만에 완독 하고야 말았다. 모든 내용에 눈물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꽉 차 있는 에세이. 나는 상상도 못 할 일상들을 살아가고 있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항상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큰일이 생기지 않으면 연락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물 콧물 훌쩍거리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넣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픈 곳은 없냐고 물으니 엄마가 웬일이냐며 웃는다. 곁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소홀히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도 이럴 때가 아니면 잘 표현도 못한다.
본디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허송하게 보낸 지난날들. 그렇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이렇게 또 후회만 하다가 현재를, 가지고 있는 걸 제대로 못 본채 다시 후회를 하고야 말겠지. 지금을 꽉 채워서 조밀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항상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는 건 어렵다. 자꾸만 느슨해지고 싶은 기분. 이대로 괜찮을 지도 모르잖아. 꼭 그렇게 루틴이 꽉 짜여 있고 바쁘게 살아야 하나 싶다 가고, 그게 아니잖아! 라며 뒤통수를 세게 쳐주고 싶다. 느슨하게 살아도 중요한 걸 하면서 살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거, 지금 당장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해. 하지만 내 몸과 손끝은 가장 급하지 않은 일을 찾아 헤매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의지도 필요 없이 그저 물흐르듯 흘러가버려서, 그래서 그러고 앉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마 나는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기껏해야 동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책을 보며 내가 눈물을 흘려도 되는 걸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더 든다. 나는 어쩌면 저자가 경멸하고 있는 걸 하고 있는걸까. 그리하여 저자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을 계속해서 반추한다. 잃어버리기 전에는 소중함을 잘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일까.
무언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불안감도 같이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면 어쩌지. 갑자기 세상 모든 게 애틋해진다. 걱정과 불안없이 다정다감해야 하는데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상냥함이 겨우 비어져 나온다. 좋은 사람이 되기는 글러버린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냥 노력 없이 저절로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일 하나 할 때마다 힘을 들여야 하나. 어떤 사람들은 그냥 숨 쉬듯 선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하면 마냥 위선인 것 같다. 그래도 이제까지 산 날 보다 앞으로 살 날이 많지 않을까. 무병장수한다면. 그러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도 될까. 항상 사람이 싫고, 만나서 북적거리는 게 싫다고 혼자가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인 척하기 힘들어서 숨어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