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장래희망가로 살아가기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심리 상담을 받을 때였다.
"무기력증에 걸린 것 같아요. 머리가 멍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안개에 싸인 기분이에요."
"코로나 후유증 아닌가요?(웃음)"
운동 가방을 들고 가서 주말엔 빵을 배우고 있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있는 일도 많은 사람은 무기력증이 아니라고.
그랬다. 나는 갓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회사에서 충족되지 못한 삶의 만족감 때문에 회사 외의 시간들을 가열차게 돌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선생님이 주시는 해결책으로 마음을 정리하며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인간 사회라는 곳은 비슷하기 마련이니까.
한 회사를 오래 다녔고 연차도 꽤 되었으니 새로운 곳을 가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상담 끝에 나는 깨달았다.
"퇴사는 욕망인 것 같아요."
돈이든 안정된 직장 때문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회사를 다닐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해오던 고민을 끝내보고 싶었다.
지금 환경을 끊어내야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세상의 시선과 기준들에 스스로를 옭아매던 일상에서 벗어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 없이 퇴사를 내가 이루고 싶은 욕망, 꿈이라고 정의 내리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회사를 다녔던 말미엔 주말마다 빵을 배우고 작사 학원을 다니고, 평일에는 과제를 하는 삶을 살았다.
운동, 글쓰기, 덕질, 베이킹, 그리고 회사 중에 가장 큰 덩어리인 회사만 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퇴사한지 6개월째,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사는 중이다.
사실 나의 일상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고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것 외에는.
누군가 어떤지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아 정말로. 퇴사하기 전에 그렇게 고민했던 것들이 정말 다 아무렇지 않아서 신기할 정도야."
회사라는 거대한 파이 하나를 뺐는데 그 사이의 시간들이 나로 꽉 채워져서 정말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퇴직금으로 거하게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생각했던 것만큼 특별나게 새로운 일과 예상 못 한 사람들을 만난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회사 다니면서 했던 일들을 연속해서 계속 해나가면서 살짝의 게으름과 알람이 필요 없는 아침 시간을 확보했으며, 비어버린 사회생활을 채우려 SNS를 더 자주 들여다보는 도파민 중독자의 삶이 더해졌달까.
예전 같았으면 해외여행을 가는 게 우선순위였을 텐데 이번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현재에서도 계속 이어나가고 성취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퇴사를 하고 안 후의 해방감은 엄청났다.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자고 일어나는 생활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모른다.
얼굴에 가득했던 짜증과 불편함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내가 그리워했던, 찾고 싶었던 환한 웃음이 생겼다.
스스로에게 허락했던 안식년은 올해까지이다.
이제 나에게 약속했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여 가끔은 조급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지만 휴식기에 목표한 대로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일을 벌이지는 못했다.
사실 제일 편한 길은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오래 했고 또 분명 잘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너무 겁먹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으로 더 살아보고 싶다. 내년이 되면 무엇이라도 할 나라는 걸 알기에.
나를 위해 한 중요한 선택이 인생의 경험으로서도 얼마나 필요했고 중요했던 일인지 몸소 경험한다.
너무나 가치 있는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백수가 체질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