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하고 눈이 뜨였다. 발치의 히터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저 멀리 강단의 스피커에서는 찬송가가 꿈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젯밤 잠들 때는 분명 춥고 고요했는데. 음악도 히터 바람도 저 혼자 켜졌을 리는 없으니 그것은 곧 내 노숙이 발각되었음을 의미했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다급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럴까 봐 해 뜨기 전에 일찍 나가려고 한 건데. 시계를 확인해 보니 4시 50분. 다섯 시에 맞춰둔 알람은 아직 울리기도 전이었다. 교회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는 얘기는 들어 봤는데, 새벽이래 봤자 여섯 시 즈음이겠거니 했었다. 검색이라도 해 볼 걸 안일했다.
살금살금 일어나서 눈만 빼꼼 내밀고 예배당 안쪽을 살펴보았다. 앞쪽 강단에 목사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분 앉아 계셨다. 뭐라고 설명하지, 제가 혼자 여행 중에 어젯밤 해가 져서 어두운 산길을 걸을 수가 없어 이곳에... 땀 찬 손바닥을 꼼지락거리며 마음속으로 대본을 쓰고 있는데 교회 문이 드르륵 열렸다.
예배드리러 오신 듯 한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가능한 한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드렸다. 토끼눈이 된 아주머니께 마음속에 써 둔 대본을 읊으며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 없이 들어와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
혼이 날까 화를 내실까 걱정하며 변명을 마무리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뜻밖이었다. 촉촉하고 자애로운 눈으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너무 잘 왔다고, 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 같이 예배드리고 사택 가서 눈도 좀 붙이고 아침도 좀 먹고 가라고, 오늘 비가 와서 할머니 한 분이 안 오시니 여기 이 성경책 보면 된다고,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있을까 싶은 목소리로 온화하게 말씀하셨다.
맨 앞줄 아주머니 옆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니 한두 명이 더 들어와 나까지 다섯 명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일이 년 성당을 다녔던 경험을 되살려 성경책을 뒤적이고 노래를 불렀다. 어리바리해질라치면 옆자리 아주머니가 손수 페이지를 넘겨주셔서 나름대로 어우러질 수 있었다.
예배를 다 드리고 나면 불을 끄고 개인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맨 뒷자리로 가서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기도드리는 신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분들은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드릴까, 무엇이 저분들을 저리 간절하게 만들까...
이내 아까의 그 아주머니께서 예배당의 어둠을 뚫고 다가오신다. 사택으로 가자며 나를 이끄시는 손이 참 따뜻하셨다. 나는 내게 다가온 운명을 믿어보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배웠지만, 아무래도 여기선 내가 제일 수상한 사람이니까...
멀지 않은 곳에 '사택'이 있었다. 나는 사택이라길래 예전 다니던 성당에서 예배 끝나고 우르르 몰려가 곰탕 냄비에 떡볶이 끓여 먹고 하던 그런 큼지막한 주방 정도를 생각했는데, 정말로 누군가 사는 평범한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까 교회에서 뵌 신도 한 분이 눈인사를 하신다. 곤히 잠든 어린아이 두 명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알게 된 반전 사실. 나를 이곳에 데려오신 신도 아주머니는 알고 보니 목사님 사모님이셨고, 이 집에서 마주친 다른 신도분은 그 두 분의 따님이시며, 이 사택은 목사님 부부와 따님 그리고 손주들이 사시는 집이었다. 다녀본 곳이라곤 성당밖에 없어서 신부와 달리 목사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잠깐 간과하고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자고, 앞에 화장실 있으니까 씻고, 푸욱 쉬다 가요. 오늘 비 오는데 여기서 우리랑 수다 떨다 저녁에 가도 괜찮아. 여긴 하느님의 집이니까, 뭐든 마음대로 하다 가도 돼요. 2층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편하게 푹 쉬어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일러주시고 내려가시는 사모님. 원래 5시에 일어나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출발해도 상관없었는데, 예배 때문에 나를 깨우셨다고 생각하신 걸까, 자꾸만 더 자라고 하셔서 어리둥절. 하지만 깔아주신 폭신한 이불의 성의를 생각해서 10분만 더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두 시간 반을 달게 잔 뒤였다. 아니 이렇게 푹 잘 거면서 뭐 하러 사양했담. 이불을 개어 올려두고 세수를 한 다음 계단을 내려갔다. 1층에는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목이 부어서 유치원 가는 길에 집으로 돌아왔다는 두 분의 첫째 손녀 C가 있었다.
나는 사실 어린이 대하는 일이 좀 어렵다. 어린이들을 만나본 적도 그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얼마 없거니와 어린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에 대한 감조차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C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이후로 나는 줄곧 뚝딱거렸다. 하지만 C는 달랐다. 낯가림이라는 단어 따위 제 사전에 없다는 듯, 내 옆에 붙어 앉아 종알거렸다. 나는 유치원 선생님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C와의 교감(?)을 시도했다.
자기는 종이접기를 잘한다며 색종이를 한 뭉텅이 가져오는 C. "와 멋지다! 이모도 보여줘!" 해서 즉석 종이접기 교실이 열렸다. C를 따라 물고기를 한 마리 접어내고 얼굴도 귀엽게 그려주었다. 스스로에 대한 호칭을 언니로 할지 이모로 할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나는데 언니는 좀 양심이 없는 것 같아 이모를 선택했다.
와아 내가 이모라니. 나중에 들어오신 목사님 따님이자 C의 어머님이 나와 딱 한 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새삼스러웠다. 서른이란 이런 나이구나. 새로운 인간 한 명을 낳고 이만치 키워낼 수도 있는, 또는 부산에서 인천까지 걸어가겠다며 매일 노숙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아무튼간에 뭐든 할 수 있는 나이.
아침을 차려주셔서 감사히 먹었다. 식당이랄 것도 많지 않은 지역이라 꼼짝없이 굶고 걸을 위기였는데 미역국에 잡채, 계란 후라이에 경상도 김치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밥상을 받으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식사 전에 기도를 하시기에 두 손을 모으고 들었는데, 식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실 뿐 아니라 내 여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하셔서 놀랐다.
사모님은 봉사를 하러 나가시고 목사님과 커피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천 지인들 몇 명이 생각났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었다. 어딘가 초월한 듯한 평온함, 쉽게 조급해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선과 평화와 행복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 그들이 나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때마다 나는 감사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신앙심이 전혀 없는 내가 이런 친절을 받아도 괜찮은 걸까, 어쩐지 속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목사님은 당신이 신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셨다. 언젠가는 나래씨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종이컵 바닥이 드러날 때쯤 목사님은 내게,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또 편하게 찾아오라고 따뜻하게 얘기해 주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동네 의령에 기대 쉴 수 있는 든든한 아름드리나무가 생긴 것 같았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덕분에 잘 쉬고 잘 먹고 간다고 감사 인사를 드린 다음 사택을 나섰다. 도시에서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각종 엽기적인 범죄들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곤 하는데, 이렇게 나와서 세상을 누비다 보면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린 날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쏟아진 건 처음이었다. 나는 우비를 꺼내 입었다. 어젯밤에는 도저히 더 갈 수 없을 것처럼 어두웠던 동네가 이제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였다. 여호와께서 빛이 있으라 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참.
우비 XL 사이즈로 살걸... 아님 판초 스타일로 살걸... 배낭을 메고 우비를 입었더니 단추가 안 잠겨서 패딩이 금세 흠뻑 젖었다. 배낭을 밖에 멜까도 고민해 봤지만, 그나마 지금 입고 있는 옷만 젖으면 하룻밤만에 말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배낭과 그 내용물까지 싸그리 젖어버리면 갈아입을 것조차 없는 상황이 제법 절망스러울 것 같아 뭐라도 뽀송한 옷가지를 남겨두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어지는 메멘토 모리의 하루. 이제 무덤을 봐도 감흥이 없다.
온 동네 담장에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던 마을. 아무래도 그 비법이 여기 숨겨져 있었던 듯하다. 화백 한 명이 동네를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구나.
꽤나 자주 마주치게 되는 소들. 셋이서 나란히 나를 쳐다보는 게 귀여웠다.
어제 숙박할 곳을 찾아보겠다며 벗어난 자전거길로 다시 돌아왔다. 비가 많이 오니 힘들다. 축축해서 찝찝하고 추워서 처지고. 잠시 정자에 앉아서 비가 잦아들 때까지 쉬기로 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수상한 눈초리를 보내며 지나갔다.
비가 잦아들 기미 따위 보이지 않아 우비 뒤집어쓰고 다시 출발. 아 이날 정말 날씨가 최악이었다. 비도 비인데 바람이 정말 많이 불어서 손은 시리고 얼굴은 빗물로 축축해지고 우비 모자도 자꾸만 벗겨져서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강수량도 꽤 많아서 우비를 조금만 움직여도 고여 있었던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합천 In! 넋 나간 표정으로 만세를 불러본다.
이게 진짜 무슨 고생이지 싶었던 날. 흥미로웠던 건 이런 대환장 악조건에서도 딱히 짜증이 나지 않고 할 만하다고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승률이 제법 높은 편이 아닌가 싶다. 남들이 질색을 하는 고생도 굳이 사서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또 그걸 꼭 해내버리고 마는 그런 류의 인간. 한편으로는 이런 나를 지치게 한다면 그건 그 상황이 진짜 잘못된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듣고 있나요, 나를 번아웃으로 몰고 간 나의 회사여...
부산에서 134km나 걸어왔다고 하네요.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저 멀리 큼지막한 새떼가 몰려 있어 보니 아마도 가마우지인 듯했다.
이날 처음으로 마을이란 곳에 닿았다. 전날밤 애절하고 간절하게 갈망했던 바로 그 모텔, 국토종주길 숙소 중 가장 홍보를 열심히 하는 곳이 아닐까 싶은 국토종주자들의 성지, 적교장이 저 멀리 보인다.
10년 전 어둠을 헤치고 겨우겨우 도착한 적교장. 사장님이 방 열쇠와 함께 건네주신 바구니에는 직접 구우신 듯한 군고구마와 귤그리고 맥주 한 병이 들어 있었다. 갓 성인이 되어 있었던 당시의 나는 크으으으 고생하고 마시는 맥주, 이게 어른의 삶이지! 를 외치며 병을 땄고 세 모금만에 얼굴이 빨개져 짧은 술자리를 종료해야만 했다.
사진을 다시 보니 많이 어려 보이지만 숙박업소 이용과 주류 구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이였답니다. 그땐 무슨 용기로 이 모험을 떠났던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란 인간 참 해맑다.
걷는 동안 힘들 때마다 지도를 켜놓고 '마을에 도착하면 뭐 먹지'에 대해 고민했다. 고심 끝에 결정한 메뉴는 바로바로 어탕. 그런데 아뿔싸, 그 가게가 문을 닫았다. 다방도 있고 식당도 대여섯 군데 있는 걸 보니 관광지이긴 한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겨울이어서인지 문을 닫은 식당이 꽤나 많다. 메뉴를 고르겠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였구나. 밥 대신 요기할 거리가 있을까 싶어 마을의 작은 수퍼를 들렀는데 딱히 식욕을 돋우는 상품이 없어 관두고 물 한 병을 사서 나왔다. 종주 내내 현금을 쓴 처음이자 마지막 소비였다.
작은 동네를 둘러본 결과 이곳에 문을 연 식당은 딱 하나, '무지개회타운' 뿐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후기를 보아하니 회덮밥 정도면 혼자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외관, 고요하기 짝이 없었던 동네 분위기, 이런저런 상황을 미루어보아 내가 유일한 손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온 동네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나, 꽤나 넓은 식당을 사람들이 바글바글 채우고 있었다. 잠시 벙쪄있다가 일하는 분들에게 한 명 식사되냐고 물었다. 회덮밥 먹으려구요 회덮밥.
"회덮밥 무그 봤어요?"
"아뇨, 근데 뭐든 잘 먹어요."
내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나를 구석 빈자리로 안내해 주신다. 남지에서 처음 보고 줄곧 맛보고 싶었지만 한 대접씩 파는 바람에 혼자서는 사 먹을 엄두를 못 냈던 바로 그 생선, 향어. 드디어 먹어볼 수 있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테이블보를 깔아주고 반찬을 올려주셨다.
"니 향어회 무 봤나?"
아니 왜 다들 향어회 시식 여부를 물어보시는 거지. 향어 이거 초심자가 먹기 힘든 음식인가. 혹시 홍어처럼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리는 건가. 나 지금 실수하는 건가. 입도 못 대고 물리는 거 아닌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와중에 안 먹어봤다고 말씀을 드렸다.
"함 무 봐라 그럼. 육회같이 쫄깃쫄깃하고 맛있다."
휴. 안도의 한숨.
이내 등장한 향어회 덮밥. 밥과 초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벼 크게 한 입 넣었다. 으으음! 이것이 진정한 美味. 어쩌면 내 국토종주 끼니 최고의 맛도리 메뉴가 아니었을까나. 두툼하고 쫄깃한 회가 정말로 별미였다. 육회보다 씹는 맛이 좋았고 세꼬시보다 부드러웠다. 인생 최고의 회덮밥이었다.
혼자 먹는데 알차게 내어주신 매운탕, 그리고 반찬으로 처음 받아보는 삶은 땅콩까지. 경상도에서는 땅콩을 삶아 먹는다고 얘기만 들어 봤는데 실제로 맛보는 건 처음이다. 나에게 땅콩은 오독오독한 맛으로 먹는 견과류인데 어쩐지 눅눅해서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았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배불리 먹었으니 마저 가봅시다.
건너편에서 걸어오시던 할머님 두 분. 옷과 우산을 깔맞춤 하셔서 재미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종주 풍경. 나름대로 근사한 맛이 있는데 그 깊고 어두운 색감이 사진으로는 잘 안 담겨서 아쉬웠다. 찢어진 헝겊처럼 온 사방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이 식물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어딘가에서 겨우살이라고 읽은 것 같은데, 검색해 보니 왠지 아닌 것 같다.
98.5km 지점을 놓쳐서 대신 138km 지점에서 찍었다. 어쩔 수 없지.
저 멀리 오늘의 중간 목표인 합천창녕보가 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보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어서 왠지 뭐가 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라니 한 마리가 펄쩍펄쩍 뛰어서 도망갔다.
음울한 분위기 잘 담아낸 풍경화마냥 멋진 풍경들이 자꾸만 이어졌다. 비가 오니 또 이런 척척한 느낌이 난다.
인간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합천창녕보까지 남은 거리 2.3km. 평소였다면 단숨에 걸을 수도 있을 만한 멀지 않은 거리지만 고관절과 왼발목 통증이 심해서 한번 쉬어주기로 했다. 벤치 따위 이때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하여 그냥 바닥에 우비를 깔고 앉아 쉬었다.
당 충전이 필요해서 간식봉지에서 크런키를 하나 꺼내먹었다.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는 간식봉지. 오늘 대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으니, 대구 편의점에서 채워야겠다고 희망적인 다짐을 했다. 아침에 C가 접어준 바람개비를 보며 용기를 냈다.
드디어 도착한 합천창녕보. 디자인이 마치 철새들의 머리처럼 보인다. 이때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두 손을 꼬옥 모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넜다. 제발 화장실 열려있어라 제발, 화장실 못 가면 나 길에서 싸야 된다...
바지에 지리기 전에 무사히 인증 완료. 그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적교장모텔의 광고. 앞으로 며칠간 이 광고를 보게 된다. 사장님 대체 어디까지 가서 붙이신 거예요. 인증센터 건물이 공사 중이라 잠깐 쫄았는데, 다행히 화장실은 멀쩡하게 열려 있었다.
하 그런데 여기서 정말 환장할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핸드폰 배터리가 15%로 간당간당한데 충전단자에 물기가 감지되었다며 충전기를 꽂으면 짜증 나는 알람 소리가 계속 나고 충전이 강제 중단되는 것이다. 나는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안 사본 주변에서 알아주는 진성 갤럭시 팬인데 이때 너무 화가 나서 탈 갤럭시 할 뻔했다. 무선 충전을 하라는데 아니 충전단자 안에 물기가 들어갈만한 상황에 무선 충전기가 있겠냐고요. 나 진짜 돌아버리겠네.
초절전 모드로 설정한 다음 물기 제거 방법을 열심히 검색했다. 드라이기로 말리라길래 화장실 핸드드라이어를 수상할 정도로 오래 사용하며 단자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해 지기 직전 귀한 시간을 약 30분 정도 사용했는데도 여전히 뜨는 물기 감지 알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런 일이 사실 처음이 아니다. 작년 양양으로 서핑 갔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무선충전기를 구매해서 극적으로 핸드폰을 살려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여기서 핸드드라이어로 더 말리고 휴지를 더 쑤셔 넣어봤자 차도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꽤 많이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5% 배터리를 이용해 편의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경로를 최소한의 배터리만 써서 가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썼다. 정말 이렇게까지 급한 마음으로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다리 통증은 잊힌 지 오래였다.
눈앞에 보이는 마을.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보았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직원이 나오길래 무선충전기 있냐고 묻자 알아듣지를 못했다. 한참을 설명해서 이해시켰는데 여기엔 그런 물건이 없다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내게 남은 희망은 편의점뿐. 편의점이 가까워지자 나는 희망에 부푸는 동시에 불안해서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평소 혼자 있을 때도 혼잣말을 절대 하지 않는 편인데 이 때는 너무 간절해서 제발, 제발, 제발... 하고 되뇌며 걸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생활용품 매대로 달려갔다. 애닳는 마음으로 물건을 하나하나 살폈으나 무선충전기는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그런 건 없는데...' 하신다. 내면에서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서러워서 거의 눈물이 터질 지경이었다.
사장님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당신 충전기를 쓰라고 내주셨다. 제가 지금 핸드폰이 침수가 되어서요, 무선 충전밖에 안되더라구요... 하니 그럼 이걸로 좀 말려보라고 쐬고 계시던 히터를 내주신다. 따뜻한 마음에 좌절한 마음이 진정이 좀 되었다. 일단 면봉으로 좀 닦아볼게요 하니 앉아서 하라고 라면 먹는 자리를 안내해 주신다.
물집 짜려고 가져온 면봉을 이런 데에 쓸 줄이야. 하지만 면봉 대가리가 충전단자보다 커서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열심히 쑤셔 넣고 있으니 사장님이 다가와서 충전되냐며 말을 거셨다. 도보여행을 하고 있고 오늘 대구까지 가야 하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없다, 플래시와 지도 없이 이 어두운 길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고 상황을 설명드리고 혹시나 싶어 근방에 민박이나 모텔 또는 그 어떤 형태의 숙박업소라도 있을지를 여쭤보았다.
"여기는 숙박할 데 없지... 잠만 자려고?"
"네 진짜 눈만 붙일 수 있으면 돼요. ㅠㅠ"
"그러면... 내가 여 근처에 가끔 자러 들어가고 그러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자고 가라. 좀 어수선한데 이불도 있고 씻을 수도 있고."
"네? 진짜요?"
"어 진짜."
"아 그런데 너무 신세 지는 것 같은데... 그러면 사장님은 어디서 주무셔요..."
"나는 집에 가서 자야지! 어차피 이불 깔려 있으니까 자고 가라."
하시더니 내 손을 이끌고 편의점 근처의 비밀공간(?)으로 가신다. 공사 중인지 여기저기 자재가 널려 있었고 안쪽에 전기장판과 이불이 깔려 있었다. 잠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절초풍했을지도 모르는 장소였지만 내게는 그 어떤 고급 호텔보다도 아름답고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절망의 심연에 내던져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구원을 받다니.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며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나를 뒤로 하고 사장님은 편의점으로 돌아가셨다.
짐을 풀까 하다가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어차피 대구에 가서 간식을 좀 채울 요량이기도 했으니 과자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다시 갔다. 젤리를 구경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다가오셔서 또 말을 거신다.
"니 밥은 먹었나?"
"아 점심을 좀 늦게 먹어서 괜찮아요!"
"아니... 여기 폐기가 있는데 나도 방금 폐기 먹었그든... 하나 먹어라 밥이 길어서 배고프다."
하고 또 나를 편의점 창고로 이끄시는 천사 사장님. 폐기 도시락이 두 개 있어서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으니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신다.
"이게 안 낫겠나? 고민될 땐 비싼 거 먹어라."
하여 이런 진수성찬까지 얻어먹게 되었다. 정말이지 대궐에 재워 주며 12첩 반상을 내주었다고 해도 이때처럼 감동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쌀알 하나하나가 달았다. 죽기 직전인 핸드폰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음에도 마음이 놓였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친절하실 뿐 아니라 정말 닮고 싶은 분이셨다. 예전에 하셨던 일과 지금 하시는 일, 배우자와 자녀 분들의 이야기 등을 들으며 거의 방청객마냥 감탄을 했다. 뭘 해도 잘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그런 스타일이신 듯. 우연으로 이런 멋진 분을 알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편의점에 손님이 와서 인사를 드리고 하루짜리 임시 숙소로 돌아왔다. 폐기라고 쥐어주신 딸기샌드와 쿨하게 냉장고에서 꺼내주신 생수를 들고. 정말이지 황송할 따름이었다. 화장실 온수 켜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뭘 해도 찬물만 나와서 얼굴만 대충 고양이세수로 닦아내고 자리에 누웠다. 이틀 연속 샤워를 못 하고 자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불만은 딱히 없었다. 다음날 대구에서 목욕탕이라도 가던지.
하루종일 비 맞고 차게 식은 몸을 뜨끈뜨끈한 전기장판 속에 밀어 넣으니 이내 노곤노곤해졌다. 야 이게 휴식이지. 핸드폰은 어떻게 되었냐고? 부러뜨린 면봉의 뾰족한 나무 부분을 밀어 넣고 휘저으니 해결되었다. 가까스로 뜬 충전 중 표시에 기쁨의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집 안 생긴다며 면봉 왜 챙겼지 하고 생각한 아침의 나 무릎 꿇고 반성해라. 갓면봉님 없었으면 아무 데도 못 갔다. 면봉 선생님 믿었습니다. 10년 전에는 물집, 이번에는 물기, 그저 면봉 선생님께서 유일한 해결책이십니다.
대구까지 갈 수 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생각보다 적게 걸어 아쉬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여정을 일찍 시작하지 뭐. 장판의 온기에 빨려들 듯 까무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