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래 Jul 04. 2024

국토종주자의 왓츠인마이백

국토종주 배낭 속 필수템


10년 전의 배낭과 올해의 배낭


국토종주를 계획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면, 총 거리를 평소 걸을 수 있는 최대 거리로 나눠서 일정을 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고? 해맑았던 종주 첫날의 나 자신을 소환해 보자. 나는 평소에 시속 5-6km로 걷는다. 여덟 시간 걷는다고 치면 하루에 40km. 총 633km를 걸으려면 16일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단 인간은 안 쉬고 여덟 시간을 걸을 수 없다. 중간에 쉬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으로 두 시간을 잡아도 부족하다. 그리고 몇 시간 며칠을 내리 걷다 보면 몸이 지치기 때문에 원래 속력으로 걷기 어렵다. 게다가 평소에 맨몸으로 걷는 것과 어깨 위에 5kg 가방을 지고 걷는 것은 아예 다른 얘기다.


배낭을 메고 걸으면 몸이 금방 지친다. 평소에 바리바리스타였을지라도 국토종주를 하는 동안에는 배낭에 최소한의 것만 챙겨야 한다. 배낭 무게가 내 몸의 연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 종주 배낭을 채웠던 물건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챙겨간 걸 후회했거나, 챙기기 잘했다고 생각한 것들은 그 이유를 적어 두었다. 나중에 짐을 챙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전자제품


- 스마트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템. 다 잃어버려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찌저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지도이자 플래시이자 지갑이자 카메라, 그리고 그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역할을 하는 내 소중한 갤럭시 S23 Ultra. 다시 챙긴다면 USB-C 단자 마개를 사갈 것 같다. 비 오는 날 단자에 물기가 감지되면 무선충전만 가능해져서 난감할 때가 있었다.


- 갤럭시 워치: 사진을 건지고 싶은 나 홀로 종주자라면 추천하는 아이템. 삼각대에 설치해 둔 핸드폰 카메라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확인하며 촬영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게 없으면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체력 소모가 제법 크다. 이외에 운동기록, 수면기록도 능하다.


- 보조배터리: 2000mAh 샤오미 배터리를 챙겼다. 핸드폰을 두 번 풀충전할 수 있는 대용량에 무게도 가벼워서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숙소 없는 동네에서 해가 져도 스마트폰만 켜져 있으면 죽으란 법은 없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다면 그건 악몽이죠. 배터리는 좀 비싸더라도 가볍고 용량 큰 것으로 가져가기를 추천한다.


- 충전기: 두 개를 챙겼다. 충전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날도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를 동시에 충전하려는 목적으로. 여기에 워치 충전기도 함께.


의류


- 패딩: 허벅지까지 오는 롱패딩을 챙겼다. 10년 전 종주할 때는 기모가 들어간 바람막이를 입었는데, 활동성 면에서 훨씬 유리했다. 롱패딩을 챙긴 이유는 새로 사기엔 돈이 없었기 때문이므로, 옷을 하나 장만한다면 얇고 짧고 가벼운 겉옷을 선택하기를. 방수까지 되면 더할 나위 없다. 패딩은 비가 오면 축축하게 젖어서 무거워진다.


- 내복: 히트택 상하의, 슬림한 스타일의 조거팬츠와 얇은 폴라티, 이렇게 두 세트를 챙겼다. 길 위에 있는 동안 따뜻한 날도 있고 추운 날도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얇은 옷을 여러 벌 챙기면 유리하다. 가끔 이상기후인지 정말로 더운 날들이 있어서 히트택 대신 반팔을 나 챙길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 후드티, 조거팬츠: 좀 넉넉한 사이즈의 바지를 챙겨서 껴입어도 거슬리지 않게 했다. 후드티는 추천할 만한 아이템이다. 앞주머니에 빨리빨리 넣고 꺼내야 하는 물건들을 넣어두기 좋고, 모자가 달려있어 패딩과 겹쳐 쓰면 방한 효과도 있다.


- 발목보호대, 무릎보호대: 꼭 반드시 챙겨야 하는 아이템. '이게 효과가 있겠어' 싶었지만 아는 언니가 준 게 있어서 그냥 챙겨 왔는데 없었으면 중간에 관둬야 할 뻔했다. 발목보호대는 종주 후반에 장렬히 전사했다(구멍이 났는데 점점 커져서 나중에 버렸다).


이쯤되면 다리를 보호대로 도배한 수준

- 장갑: 스마트폰 터치 되는 장갑을 챙겼더니 매우 유용했다. 보온성이 은근히 좋기 때문에 하나 가져가길 추천.


- 양말: 무조건 등산양말. 두껍고 폭신하고 발목 잘 잡아주는 것으로. 네 켤레 챙겨서 중간중간 빨고 말리며 신었다. 한 켤레는 칠곡쯤에서 구멍이 나서 버렸다.


- 속옷: 팬티 세 장 스포츠브라 한 개 챙겼다. 생리대를 활용하면 빨래하지 않고도 매일 (비교적) 뽀송한 팬티를 입을 수 있다. 스포츠브라는 안 챙겼어도 됐을 듯. 안에 히트택을 입거나 널널한 후드티만 입거나 했기 때문에 딱히 불편할 일이 없었다. 니플패치도 챙기지 말 걸 그랬다. 너무 불편해서 챙겨 온 과거의 나를 한 대 치고 싶었다.


- 우비: 일회용 우비를 두 개 챙겼는데 비 오는 날이 많았음에도 한 개면 충분했다. 한번 입고 밤새 말렸다가 가방에 구겨 넣으면 부피도 별로 안 차지하고 하여 들고 다니며 두고두고 입을만하다. 하지만 다시 챙긴다면 특대형 사이즈나 판초를 구매할 듯. 배낭이 젖으면 짐까지 젖고 말리는 데 한참 걸리기 때문에 배낭 위에 우비를 입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단추가 안 잠겨서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팔과 배낭 빼고 온몸이 쫄딱 젖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팔만 뽀송한 나

- 신발: 발측정을 받고 산 Brooks 러닝화. 가볍고 편해서 매우 만족했다. 오른쪽 고관절 통증을 야기했지만 나중에는 적응했는지 괜찮아졌다. 신발은 무조건 널널한 사이즈로 사야 한다. 발이 꽉 맞으면 불편하고, 쓸려서 물집이 생길 수 있다. 안 그래도 괴로운데 물집 잡히면 정말 울면서 가야 할 수도 있다.


- 마스크: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얼굴이 시릴 수 있기에 KF94를 몇 개 챙겨갔는데, 숨 쉬기가 답답해서 실제로는 몇 개 안 썼다. 다음엔 안 챙길 듯.


- 넥워머: 10년 전 종주할 때는 목도리를 했는데, 꽤나 짐이라 이번에는 축구 유니폼 살 때 서비스로 끼워 준 넥워머를 가져갔다. 보온성이 좋고 부피를 덜 차지해서 매우 만족! 하지만 얼굴까지 덮을 수 없는 점은 아쉬웠다.


잡화류


- 국토종주 인증수첩, 지도, 인주: 국토종주 인증서와 메달을 받고 싶다면 수첩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하지만 모바일로도 인증도장 수집 및 지도 확인이 가능하니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면 인증수첩과 지도는 앱으로 대체하자. 인증부스에 스탬프잉크가 비치되어 있지만 가끔 말라서 안 찍힐 때도 있다고 해서 인주도 챙겼다. 종주 기간 내내 한 번 사용했다.


- 삼각대: 나의 전속 포토그래퍼. 고릴라 삼각대를 강력 추천한다. 일반 삼각대를 세워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무 데나 거치할 수 있어 매우 만족. 다만 모가지 회전 각도에 제한이 있어 세로 사진 찍기가 어렵기는 했다.



- 세면도구: 샴푸, 트리트먼트, 폼클렌저, 바디로션, 면봉, 치약, 칫솔을 챙겼다. 다시 챙긴다면 샴푸랑 바디로션은 뺄 듯. 모텔에서 자면 샴푸가 제공되고, 노숙하면 어차피 못 씻기 때문이다. 면봉은 물집 짜려고 챙겨갔는데, 물집이 안 생겨서 쓸 일이 없었다.


- 손소독제: 손을 씻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밥을 먹거나 렌즈를 빼야 하면 사용하려고 작은 것을 챙겼는데 딱히 쓸 데는 없었다.


- 수분크림, 선크림: 겨울에도 얼굴은 탄다. 나는 까만 피부가 좋아서 일부러 태우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크림은 꼭 발랐다. 10년 전 선크림 안 바르고 걸었다가 코만 얼룩덜룩하게 탔던 기억이 있어서다.


- 핸드크림, 립밤: 쓸데없이 챙겨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겨울에 하루종일 밖에서 찬바람 맞다 보면 손과 입술이 트기 마련.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하루에 이런 거슬리는 통증까지 추가하지 말자.


- 안경닦이: 옷자락으로 닦는 거랑 안경닦이로 닦는 건 확연히 다르니까.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카메라 렌즈 닦을 때도 사용했다. 어디 흘렸는지 나중에는 잃어버려서 그냥 옷자락으로 닦았다. 안경집은 잊어버리고 안 챙겨갔는데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도로에 떨어뜨려서 비싼 렌즈에 기스를 냈다.


- 렌즈: 렌즈 용액은 짐이 되니 일회용 렌즈를 다섯 쌍 가져갔다. 안경에 빗방울이 맺히면 거슬리기 때문에 비 오는 날 꼈다.


- 의약품: 감기약, 배탈약, 뿌리는 파스와 붙이는 파스, 진통제를 챙겼다. 간중간 약국, 편의점이 많으므로 절대 무겁게 챙기지 말자. 쓸데없이 배탈약을 많이 챙겼다가 무거워서 땅 치고 후회했다.


- 마사지볼, 폼롤러: 국토종주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하루이틀 아픈 것을 버텨서는 끝낼 수 없다. 하룻밤 수면으로는 이루어지는 회복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배낭의 절반을 차지하는 폼롤러였지만 챙긴 것에 후회는 없다.


- 물티슈, 휴지: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경우가 있고 또 뭐든 흘리면 닦아야 하므로 있으면 유용하다. 예시가 생각이 잘 나진 않지만 물티슈를 꽤 자주 사용했다.


- 생리대: 평소에는 탐폰을 주로 사용하지만 종주하는 동안에는 화장실이 자주 있지도 않고 손을 씻을 수 없는 상황도 있기 때문에 생리대를 챙겼다. 생리 중이 아니어도 속옷 빨래의 빈도를 줄여주는 효자템.


- 물: 물을 거의 낙타 수준으로 안 마시는 편이라 500ml 물병으로 2-3일을 버틸 수 있었다. 공중화장실 마주치기가 생각보다 어려우므로 화장실 가고 싶을 일은 안 만드는 것이 좋았다. 물을 뜰 수 있는 곳보다 살 수 있는 곳을 더 많이 마주치기에 지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물병을 챙겨가기보단 사 먹는 편이 가볍고 편하다.


- 간식: 평소 군것질, 특히 편의점 간식 먹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 걷는 동안은 힘들어서 그런지 단 게 심각할 정도로 당겼다. 걸으면서 먹을 수 있고, 유통기한이 길거나 해서 보관이 용이하고, 목이 마르지 않고, 또 수분감이 너무 많지도 않은 초콜릿이나 젤리, 에너지바 등을 주로 먹었다. 중간중간 편의점이 많으니 그때그때 보급하면 된다. 걷다 보면 식당 찾기가 어려운 날도 있으므로 식사 대신 먹을만한 것을 하나쯤 챙겨 다니는 것도 좋다.


- 비닐봉지, 파우치: 쓰레기를 담거나 물건들을 분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걷다가 짐을 꺼내야 할 때면 잡다한 물건들 사이에 손을 넣어 찾는 것보다 그 물건이 들어있는 파우치나 비닐봉지를 찾는 게 더 편하고 빠르다. 세면도구 뚜껑이 열려서 내용물이 새는 등의 대참사를 막기에도 좋다.


- 식칼: 10년 전 국토종주 떠날 때 호신용으로 샀다가 집에 두고 과일 잘 깎아먹은 바로 그 식칼. 고민하다 챙겼는데 딱히 쓸 데는 없었다. 당시에는 주머니 속에 쥐고 다니면서 부적처럼 썼는데 이번엔 겁대가리까지 상실해서 가방 속에 처박아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 현금: 필요가 저언혀 없었다. 대부분의 가게는 삼성페이에 넣어둔 카드로 결제 가능했고, 이따금 호떡이나 붕어빵 사 먹을 때는 계좌이체를 했다. 딱 한번 편의점 없는 시골마을 슈퍼에서 물을 살 때 현금을 썼는데, 카드가 됐을 것도 같고, 물을 반드시 보급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전 14화 하루 걸러 하루 노숙하는 팔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