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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Jun 27. 2024

고요한 산속에서, 열정소나타를 연주하다

국토종주 4일 차, 창녕 구간


눈을 뜨자마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가락과 발, 다리를 꼼지락거려 보았다. 여전히 통증은 있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제 안마사 선생님의 손길이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폼롤러를 충분히 굴려준 다음 짐을 챙겼다. 좋아, 포기란 없다. 계속 간다.



아침 일찍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곰탕을 선택했다. 간이 너무 슴슴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곰탕은 원래 밍밍한 맛으로 먹는 건가? 사 먹을 때마다 상상했던 맛이 아니라서 어리둥절해진다.



본격적으로 걷기에 나선다. 오른쪽 고관절 통증은 여전하다. 가다가 자전거를 사버릴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출발. 몸 상태를 잘 살피면서, 천천히 걷고 많이 쉬면서 가보기로 한다.


어제 하루를 쉬면서 이번 국토종주의 원칙을 새로 정립했다.


1. 다치지 않는 것이 제1원칙. 절대로 무리해서 걷지 않는다.
2. 목표는 '부산에서 인천까지 걸어서 가는 것'으로 한다. 반드시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최소경로인 우회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차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도보로만 종주한다. 부상이 염려되면 하루고 이틀이고 쉬었다가 가는 것으로 한다.
3. 인도, 보행자전용도로를 우선적으로 이용하고, 불가능할 경우 최대한 갓길로 걸어 자전거나 차량 운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한다. 차도에서는 귀를 잘 열고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4. 되도록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어깨를 펴고 팔을 흔들면서 걷는다.



후회되는 게 하나 있다면 부산에서 배탈약을 추가로 산 것. 평소에는 그렇게 배탈이 잘 나더니 걷는 동안에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이놈의 약이 무게가 제법 나가는 데다가 가격도 비싼 편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기만 했다. 두 개 가져온 걸로 버티다가 부족하면 살걸. 약을 보급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골길을 연이어 걷는 일은 잘 없는데 말이다.




죄송한데 무덤가에 종주길 만들지 말아 주시겠어요? 벌건 대낮이라 망정이지 밤길 걷는 중이었으면 꽤나 무서울 뻔했다. 무덤 바로 앞에서 농사를 짓는 동네라니. 메멘토 모리가 따로 없다.


조심하라기엔 너무 순둥이 같은걸요
작은 저수지에 떠 있는 수상 스키. 재미로 타는 걸까, 실용적이라서 타는 걸까?


주변에 사람도 민가도 없는 아주 외진 산속에서 무인 카페를 발견했다. 힘들어서 쉬고 싶긴 했지만 딱히 목이 마르지도 않고 괜히 마셨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 봐 고민하던 차에 지도의 후기 사진에서 피아노를 발견해 버렸다. 망설임 없이 입장해서 핫초코를 주문했다.



야아, 밤낮으로 피아노 생각만 하면 국토종주 중에 이런 두메산골에서도 피아노를 만날 수 있구나. 연주회를 위해 연습해 온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3악장을 쳤다. 걷는 동안 손이 굳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쁘지 않은 연주가 가능했다. 악보를 완전히 외우지 못해서 중간에 그만둬야 했지만.


이어서 악보 없이 칠 수 있는 월광소나타 1악장과 쇼팽 프렐류드 24번도 연주했다. 들어주는 관객 하나 없는 나 홀로 연주였지만 치는 동안 신이 나고 설렜다. 영상을 찍어서 피아노 선생님에게 보내드렸더니 장문의 카톡으로 기쁨 가득 담긴 답장을 주셨다. 아침부터 뿌듯함과 반가움을 주어서 고맙다 하시며.



'겨울 종주의 장점'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우회할 일이 없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7km 거리를 9km 길로 우회하라고 했으면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밭을 바라보는 무덤들을 또 발견했다. 미리 스포 하자면 나는 국토종주 내내 무덤을 지겹도록 보게 된다. 애초에 무덤자리는 명당에 쓰니, 강가와 숲 속을 누비는 나로서는 많이 볼 수밖에 없었겠지.



오늘은 작은 산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느껴지는 통증은 평지를 오래 걸어서 생긴 것이라, 오르막길을 걷는 동안은 아프지 않은 부위를 쓸 수 있어 좋았다. 왜인지 오르막길에서 더 빨라지는 느낌. 나는 역시 산에서 날아다니는 타입인가 보다.


구불구불한 길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 반사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니 국토종주길에 이 정도로 가파른 업힐이 있었나? 생각보다 많이 올라가야 해서 좀 놀랐다. 방금 자전거를 타고 나를 지나쳐간 사람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면 이 내리막이 천국의 롤러코스터처럼 느껴졌을 텐데. 아니 차라리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몰랐더라면 아쉬운 마음이라도 안 들었을 텐데. 3년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바퀴의 맛을 제대로 보고 나니 걷는 내내 잊히지도 않고 계속 생각이 난다. 바퀴, 자전거, 자동차, 기차 그리고 비행기까지, 나는 왜 인류가 진보시킨 문명의 이기들을 외면하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황량해 보였는데 나름 농장도 있고, 다른 계절에는 북적북적한 산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에 귀여운 바람개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등에 땀은 차지만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다. 아 오르막길만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정상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쉬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탁 트인 풍경을 즐기니 참 좋았다. 이런 공간을 전세 낼 수 있으니 나는 정말이지 운이 좋은 사람.


다시 부상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금만 힘들어도 쉬어 주며, 몸 상태를 소상히 살피며 아주 천천히 쉬엄쉬엄 걷고 있다. 아직까지는 견딜만하다.


어쩌면 이게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에 국토종주를 할 때는 힘이 들고 발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나아가서 결국에는 해내고야 말았다. 내 20대는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힘들고 지쳐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서 성취하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었다. 버티면서 일하다가 번아웃이 와버린 서른의 나. 10년 만에 다시 오른 국토종주길 그때와 같이 버티며 걸었더니 다쳐서 더 걷지 못하고 하루를 쉬어가야만 했다. 20대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내 임계치는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들고 또 줄어들 것이다.


의지로 고통을 이겨내고 힘들어도 인내하며 해내는 방식을 졸업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내가 가진 만큼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마일스톤을 그때그때 수정해 가며 성취를 진행해 가야 할 것이다. 밤을 새우고 졸음을 쫓으며 독하게 해내는 방식을 버리고, 속도를 늦추고 휴식을 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며 완주하는 데에 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여정을 당초 계획했던 18일 내에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고개를 오르는 동안만 해도 속도가 3km/h로 떨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이 장대한 여정을 시작했고, 여기까지 걸어왔으며, 오늘도 걷고 있고, 내일도 걸을 뿐 아니라 이 종주가 끝난 후에도 멀쩡히 걸을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행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십 년을 요약하는 훌륭한 인트로가 되어줄 것이다. 십 년 전의 국토종주가 그랬듯이 말이다.



산을 오르는 내내 사방에서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들리는 방향을 열심히 좇아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마저도 수줍음이 많은 친구인지 빽빽한 가지 사이에 숨어서 나오질 않았다. 거의 '월리를 찾아라' 익스트림 난이도 수준이었다.


딱따구리 소리를 몰랐다면 으스스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타라라라라 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리니 묘하고 기이하게 들리기도 한다.



산악회 홍보 리본이 잔뜩 걸려 있다. 각자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을 골라 제작한 리본들이겠지. 모여 있으니 알록달록하고 예쁘다. 이런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자이크들이 참 좋다.



영아지고개를 다 넘었다. 정자에서 쉬어갈까 고민했지만 휴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킵고잉 하기로 했다.


걸으면서 오늘은 어디까지 가야 할지, 어느 숙소를 목적지로 찍고 가야 하는지를 검색했다. 불행히도 이렇다 할 마을도 번화가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하진 않다. 마을회관에서 한번 노숙을 하고 나니 이젠 꼭 모텔에서 자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달까... 그새 좀 의연해진 모양이다.



올라갈 땐 신났는데 내려가려니 무릎이 부서질 것 같아서 거꾸로 걸었다. 기록해 두고 싶어서 찍었는데 친구가 보더니 '저러고 내려갔다가 카메라 가지러 다시 올라왔을 언니를 생각하니 웃겨'라고 한다. 실제로 이 뒤에는 도로 털레털레 올라오는 내 모습이 찍혀 있다...



긴긴 임도를 지나고 나면 마을이 나온다. 영아지마을과 창아지마을이다. 이름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여기에도 유래가 있다. 산으로 앞이 가려져 있어서 아까리라고 부르던 것이 아지가 되었고 (언덕 아에 가를 지를 쓴다고 한다) 창녕현의 아까리는 창아지 영산현의 아까리는 영아지가 되었다고 한다.



국토종주 중에 지나가는 마을들은 대체로 고요하다. 종종 어르신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긴 하지만 그마저도 드물다. 비어 있는 집도 꽤나 많다. 하지만 완전히 빈 마을은 보지 못했다.



마을을 나오니 '창녕 개비리길' 시작점이다. 나름 관리되는 관광지인지 주차장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랜만에 만난 데다가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화장실이니 한 번 들러주었다.


불행히도 생리는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절찬리 진행 중. 평소에는 사흘이면 끝이 나는데 고행 중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양도 많고 오래간다. 번거롭게시리.



영아지 안녕. 예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일을 시작하고 나니 너무나도 잘 보인다. 저게 말이죠 기지국 안테나인데요 여기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니 Radio Unit만 설치한 거거든요 어쩌구저쩌구 설명하고 싶은 마음 억누르기.


창아지마을 진입. 강이 보이니 시원스러워서 좋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지판을 보고 칠현에 도착한 걸 알았다. 과자며 젤리며 계속 까먹은 탓에 배가 아주 고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쯤 하면 먹어줘야 할 것 같아서 아침에 사들고 온 삼각김밥을 뜯어먹었다.


저 멀리 학교처럼 생긴 건물이 보인다. 저출생의 시대에 학생이 충분할까 궁금해졌다.


드디어 박진교까지 왔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의령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창녕 이제는 안녕. 저는 인천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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