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에 진입했다. 국토종주가 아니었다면 와보지 못했을 것 같은 곳. 의령에는 무엇이 있으려나.
오늘 무덤을 몇 개째 보는지. 가만 보면 항상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본 공동묘지가 생각난다. 산을 깎아서 유골함이나 관을 모자이크처럼 가득 채워 넣은 모습. 스페인 법인 사람들에게 물으니 '죽어서라도 바다 뷰를 즐기고 싶으니까?'라고 답했다. 살아서 누리지 못한 것을 죽어서라도 누린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오늘만 두 번째 산을 넘는다. 자전거 종주자들에게 악명 높은 박진고개다. 걷다 보니 무릎은 괜찮아졌는데 오른쪽 고관절에 가벼운 통증이 있다. 거기에 오른발 아치가 심하게 아파서 오르기 전 쉼터에 짐을 풀고 마사지볼을 굴려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깨끗했던 데크가 실제로는 먼지구덩이였는지, 까만색이었던 마사지볼이 코코볼이 되고 말았다.
정상까지 1200m. 쉬엄쉬엄 가보자. 오르막길에서는 자전거보다 도보종주가 낫다. 날이 흐리고 쌀쌀해서 분위기가 어째 음산하다. 해지기 전에는 넘어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고난은 인생의 조미료"
헉헉대며 올라서 무난하게 정상에 닿았다. 국토종주길 인증센터는 아닌데 왜인지 도장이 있어서 여백에 하나 찍어주었다.
높은 곳에 올라서니 풍경이 꽤나 멋지다. 낙동강과 함께 한 장 담아보기.
10년 전 이곳 구름재 쉼터에서 찍었던 사진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재현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나중에 비슷한 배경을 찾아 찍은 사진. 이제 보니 손 방향도 틀렸다.
구름재 가는 길의 돌벽에는 종주자들이 남긴 낙서가 가득하다. 지저분하지 않나 했는데 정상에서 보니 오히려 의령군에서 권장하는 낙서 맛집이었다.
재미있는 건 인천에서 부산 가는 방향으로 오르막길에는 낙서가 많고, 내리막길에는 낙서가 드문드문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남쪽 방향으로 종주를 하니, 업힐 타는 동안은 힘들어서 주저앉아 낙서를 남길 마음이 들고, 다운힐에서는 속도를 즐기느라 쉴 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나는 북쪽으로 종주 중이었기에 내려가는 길에 수많은 낙서를 지나치게 되었다. 이 길을 지나쳐간 종주자들의 흔적을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외국인들도 종주를 많이 하는지 영어, 심지어는 아랍어 낙서들도 볼 수 있었다.
"끌바(오르막길 등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는 쉬운 줄 아냐!"
(부산 방향을 가리키며) 서울
ㄴ 아니다 이 악마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만들어진 길이라 유독 그를 찾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명박이 형 나 죽어 사랑해"
"명박이 형 다 좋은데 이건 아니자나"
10년 전에도 박진고개를 넘으며 낙서 사진을 몇 개 찍어 두었는데, 그 메시지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끝없이 덧대지는 새 메시지와 눈, 비 그리고 바람이 과거 종주자들이 새겨놓은 이야기를 지워 버리는 모양이다.
고개를 내려오니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늘은 어디서 자지. 근처에 아무런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근처 숙소를 다시 한번 검색해 보았다. 현재 시간 6시, 3시간쯤 걸으면 10년 전에 묵었던 자전거 종주자들의 성지 적교장 모텔이 나온다. 강 따라 난 자전거길을 걸으면 13km, 산속 마을을 가로질러 걸으면 9.6km다.
고민 끝에 더 짧은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저께 부상을 당한 이후 무식하게 경로를 따라 걷는 것보다 '다치지 않고 인천까지 걸어서 간다'는 목표 달성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미 바닥 친 체력과 발의 통증도 이 결정에 한몫했다. 강을 따라 걷다가 중간에 더 갈 수 없게 되면 정말로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걷는 동안에는 마을회관들이나 캠핑장이나마 있으니 최소한 사면이 벽으로 막힌 곳에서 쉴 수는 있을 것이었다.
자전거도로를 벗어나니 인도가 따로 없어 차도의 갓길로 걸어야 했다. 다행히도 차가 거의 안 지나다니다시피 해서 걷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와중에 신청해 둔 온라인 그룹 멘토링 시간이 되어서 이어폰을 꽂고 들으며 걸었다. 누군가와 대화하니 정신이 팔려서 힘들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와중에 야속하게 해는 떨어져 가고. 부상으로 하루를 쉬어간 다음날이었기에 무리해서 걸을 컨디션도 아니었거니와 산속이어서 그런지 날이 흐려서 그런지 이틀 전 밤길을 걸었을 때와는 다르게 사방이 캄캄해졌다. 이따금 만나는 가로등이 비추는 만큼을 벗어나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이대로 세 시간을 더 걷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되어 급하게 지도 앱을 켜고 묵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캠핑장이 있길래 희망을 가지고 눌러보았으나 2015년 블로그 후기가 마지막. 홈페이지를 눌러보니 2022년에 누군가가 '캠핑장 운영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현재 캠핑장은 폐쇄된 상태입니다'라고 글을 올려놓았다.
좌절하지 않고 계속 검색을 해 본다. 근처에 오토캠핑장이 하나 더 있다. 후기 사진을 보니 텐트 한 동을 어린이 놀이방으로 꾸며놓은 걸로 보였다. 캠핑비를 내고 여기서 좀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 정 안 되면 화장실에서라도 쉬다가겠노라고 부탁드릴 수 있지 않을까? 주인 입장에서 민폐라고 생각되지 않을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써 내려가며 캠핑장을 향해 걸어가 보았다.
캠핑장 입구에 들어서니 큰 개들이 서서 나를 향해 짖었다. 동물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목줄 안 맨 대형견 세 마리와 대치하자니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짐승은 기세라고, 겁을 먹으면 귀신같이 알아챈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바가 있어 안 쫀 척 당당하게 걸었다. 다행히 개들이 길을 비켜주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캠핑장은 뜻밖에 텅 비어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분에게 다가가 사정을 간절하게 말씀드려 보았다.
"아... 어쩌죠. 여기가 주말만 하는 캠핑장이라... 지금 문 다 잠그고 가려던 참이거든요. 제가 타지에 살아서 평일에는 캠핑장에 안 와서요."
아뿔싸.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왜 당연히 잘 흘러가리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데. 잔뜩 상심한 채로 돌아나가려는데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초대해 주셔서 관리동에 잠깐 들렀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서 따뜻한 물이면 된다고 말씀드리니 유자차를 타 주셨다.
"가끔 종주하시는 분들이 와요."
뜻밖이었다. 종주길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어서 자전거 종주자들이 들릴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내가 이곳에 냅다 찾아온 종주자가 아니라니. 이전에도 이렇게 일요일 밤에 찾아온 자전거 종주자가 있어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덧붙이는 말을 듣고 새삼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종이컵을 비우고 감사 인사를 드린 다음 캠핑장을 나왔다. 조금 더 가면 마을이 있다. 지도상으로는 마을회관도 보인다. 마을회관 소파에서라도 잠깐 눈만 붙일 수 있다면 좋을 터였다. 캄캄한 길을 헤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희망을 안고 도착한 마을. 아니나 다를까 텅 비어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체국도 있고 버스정류장도 있는 걸 보니 지난번 묵었던 마을보다는 번화한 곳인 것 같다. 기대를 가득 안고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아, 오늘따라 철저히 외면받는 나의 간절함이라니. 2층짜리 마을회관은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을회관은 밤에 잠가놓는 것이 보통이더라. 바깥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길래 핸드폰 플래시에 의존해 올라가 보았다. 공포영화의 인트로 같아 겁이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단을 다 올랐을 때 펼쳐진 장면은 공포영화 그 자체였다. 공사 자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폐허인 듯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공간인 것 같았다. 그래봤자 노숙이니 그냥 잘까 했지만 벽에 유리 없는 큰 창이 나 있어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바람에 야외래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쌀쌀했다. 화장실 역시 양변기임에도 불과하고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귀신이 나온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여서 고양이세수도 못할 것 같았다. 여긴 아닌 것 같아. 나는 마을회관을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작은 마을을 계속 서성이며 고민을 이어갔다. 버스정류장에서 잘까 생각해 봤지만 새벽에 기온이 더 떨어지면 위험할 것 같았다. 적교장까지 계속 걸어볼까도 고민해 봤지만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면 불빛이 하나도 없는 암흑 그 자체였다. 한동안은 마을도 없고 가로등도 없고 산속을 걸어야 하는지라 중간에 까라지면 꼼짝없이 조난이었다.
그때였다. 언덕 위 새빨갛게 빛나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렸을 때 엄마가 시켜서 성당을 일이 년 다닌 후로 쭉 무교였던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고요한 마을을 가로질러 교회를 향해 갔다.
계단을 올라가니 자그마한 교회 예배당이 나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닫이문을 밀었다. 열린다! 불이 켜져 있어 누군가 있기를 기대했건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담요며, 동작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바닥에 깔려 있는 전기장판을 보니 냅다 엎어져 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이대로 얼어 죽지 않아도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내였지만 난방이 되고 있지는 않았기에 배낭에서 옷을 있는 대로 꺼내 입었다. 내복 두 겹에 걸을 때 입는 옷, 거기에 패딩까지 챙겨 입고 구석에 누웠다. 전기장판은 아무래도 동작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갑을 꺼내서 꼈다.
신세 지는 주제에 들어오는 신도분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눈만 붙였다가 해뜨기 전 새벽에 출발할 생각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눈을 감았다. 마을회관에서 잘 때와는 달리 겁이 나지는 않았다. 어딘가 등 대고 누워 잘 수 있음에 안도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