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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Jun 16. 2024

위기를 직면하다: 나, 계속 걸을 수 있을까?

국토종주 3일 차, 창녕-함안 구간


부곡하와이와 우포늪의 고장 창녕군에 도착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밀양에 하루종일 머물렀는데, 하루에 시계를 두 개나 넘다니 참으로 흥미로운 날이다.



더운데 춥고 추운데 더운 알 수 없는 날씨. 날이 참 좋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괴로운 스스로에게 괴리감이 느껴진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이기에 맑은 날에는 항상 기분이 좋았는데 말이다. 아름다운 날에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구나.



어째 풀씨가 안 붙네 했더니 드디어 등장한 도깨비바늘. 이때까지만 해도 반갑고 떼는 재미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성가셔졌다.



창녕에서 만난 첫 번째 표지판. 휴식과 휴식 사이 텀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다리가 아파서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 앉아서 쉰다고 해도 회복이 잘 되지 않는다.


저 멀리 보이는 노리


심심하면 지도 앱을 켜서 늘였다 줄였다 하며 근처 식당이나 숙소를 찾아보곤 한다. 마을이 하나 있길래 살펴보니 리 (읍면리 할 때 리) 이름이 '노'인 노리다. 심지어는 카페도 하나 있는데 그 상호명도 노리다. 노리에 있는 노리 카페를 가볼까 했지만 막상 근처에 가보니 차도로 가로막혀서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갓길인 데다가 너무 좁은데? 위험하지 않나?' 하며 걸으려는 찰나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차도로 가는 것이 맞았으나 최근 자전거도로가 새로 뚫린 모양이었다. 10년 전 걸을 때와 비교해 보면 노후된 시설들도 많지만 오히려 개선된 것들도 꽤나 많다. 차도를 걸어야 하는 일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적어서 좋았다.


겨울 맞아? 하늘만 보면 완전 여름인뎁쇼.


힘들어서 또 냅다 드러눕기. '숙소 없는 거 아냐?' 하는 불안을 애써 무시하며 오전 내내 걷다가 잔뜩 지쳐 휴식이 간절해질 때쯤 숙소를 검색해 보고 대단히 난처한 상황임을 깨닫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낙동강 구간, 특히 경상남도 쪽은 숙박할 데가 정말 없다. 코로나 이후로 운전해서 놀러 가는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0년 전 종주할 때 대비 숙소가 늘긴 했는데 그나마도 차박 캠핑장 또는 인스타 갬성 독채펜션뿐이다. 혼자 입실해서 죽은 듯이 잠만 자다 가기에 1박 23만 원 55만 원은 너무 과한 금액이잖아요.


좋아. 일단 지금이 두 시 반이니까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아직도 두 시 반이라니) 네 시 반까지 창녕함안보, 여섯 시 반까지 남지읍 한번 가보자. 남지에는 모텔이 꽤 많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자아아아.



좀 쌀쌀해서 이러고 사진을 찍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앞뒤에 있는 사진들 속 하늘은 너무나도 맑고 청명. 그늘이라 추웠나? 갑자기 구름에 해가 가려졌나?



갓길로 넘어야 하는 언덕. 차가 꽤 다녀서 벽에 붙어 걷느라고 고생했다. 10년 전 이곳을 걸을 당시 더워서 지쳐 있었는데, 이 날도 패딩을 벗고 걷게 되었다. 그때는 올라가는 길이었고 이번에는 내려가는 길이라 배경이 조금 다르게 찍혔다. 다시 찍을까 했지만 차가 많이 다녀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토종주 총 기간을 통틀어 이날만큼 풍경 감상이 즐거웠던 날이 또 있을까나. 여름이었다... 아니 겨울이었다.



발이 너무 아파서 일부러 풀을 밟으며 걸었다. 포장도로보다 푹신하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덕분에 발이 닿는 부분을 계속 바꿔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잘 닦인 좋은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이 근사한 풍경을 나 혼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다니. 감사하고 신기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좀 쉬고 싶은데 쉼터가 나오지 않아 고통스럽기도.



드디어 만난 쉼터. 4시 반까지 도착하는 게 목표였던 창녕함안보까지는 2km가 남아 있었고 시곗바늘은 4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걸을 수가 없어 일단 앉았다. 풀숲을 헤치며 걸으니 도깨비바늘이 왕창 붙었다. 심심한 휴식에 재미있는 컨텐츠가 되어 주었다.


걷고 있는데 뒤에서 오토바이가 나를 앞질러 간다. 마을이 근처에 있나 보다 하고 작아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어라 얼마 안 가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정지하는 오토바이. 경계 모드에 불이 들어온다.


"학생인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우유 줄게 먹고 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이 괜찮아 먹고 가! 여기 꺼내 줄게!"

"아니 정말 괜찮아요!"


낯선 사람에게 음료 받아먹는 일이 달갑지 않은 사회를 살고 있는지라 극구 손사래를 쳤지만 오토바이 할아버지는 꽤나 완강했다. 냅다 오토바이 좌석을 열고 검은참깨우유를 꺼내주시기에 일단은 받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어디까지 가나?"

"남지까지요~"

"내가 늙어서 귀가 잘 안 들려..."

"남! 지! 까지요!!!!"

"이이... 남지 가면 다리 건너지 말고 여기로 쭉 가 다리 건너서 가면 멀어..."

"제가 이거 인증 도장을 찍어야 해서 다리를 건너가야 해요."

"응? 남지 가면 다리 건너지 말고 쭉 가~"

"이 수첩!!! 도장!!! 찍어야 해요!!!!!!!!!!"

"이이... 내가 남지 사는데... 다리 건너면 아주 멀어... 쭉 가야 해..."


다리를 건너지 마라,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며 실랑이를 한참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도장을 찍고 남지까지 가야 하는데. 따뜻한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인 건 알겠다만 마음이 초조하니 오지랖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충 끄덕이니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거시기에 시야를 벗어나면 가던 길을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검은참깨우유 할아버지가 '다리 못 건너게 하기' 작전을 포기하셨으리라고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할아버지는 3m마다 멈춰 서서 내가 걸어오기까지를 기다렸다가 '다리 건너지 말어~', '다리 건너면 멀어~'를 반복하셨다. 제발 절 보내주세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건너지 말라고 말리셨던 '다리'에 도착한 나. 동시에 함안군에도 도착했다!



열심히 걸은 덕분에 애초 목표였던 4시 반을 많이 넘기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넜던 시각이 4시 49분이었으니 좋지 않은 컨디션과 검은참깨우유 할아버지와의 설왕설래를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성취였다.



10년 전 괜히 어색한 마음에 뒤돌아서서 소심한 브이를 했던 나. 그로부터 10년 후 같은 자리에서 재현해 본다.



문제의 그 인증도장을 후다닥 찍어줍니다. 10년 전 이곳에 도착했을 때 산책하던 중년 부부에게 부탁해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당시에는 내성적이라 사진 부탁하는 게 어렵기도 했고, 인증센터 앞에서 사람을 만날 일도 흔치 않았기에 10년 전 인증부스에서 남긴 사진이 많지 않다. 이번에도 누군가에게 부탁해 볼까 했으나 행인이 없어 그냥 여느 때처럼 삼각대에게 맡기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함안 In! 남지까지 8.5km


두 시간만 더 걸으면 된다! 밭 사이로 고불고불 나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슬슬 해가 지고 있지만 그래도 마을 사이에 있는 길이고 종종 가로등도 보여서 걸을 만은 하다. 다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어보기 위해 킨더 초콜릿과 젤리를 꺼내먹었다.



검은참깨우유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다리를 건너면 정말 멀다! 왼쪽 무릎의 고통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계속 걸을 수 있을까, 오늘이 마지막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고민이 끊임없이 피어올라왔다. 정말 이거 힘든 일이구나. 십 년 전의 나는 이 짓을 어떻게 끝까지 해낸 거지. 


강가를 걷다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낚시꾼들. 퇴근후 낚시 재미있어 보인다.


남지읍 가기 직전에 있는 생태공원까지 어찌어찌 죽자사자 하며 왔다. 오늘 해도 뜨기 전에 일찍부터 나와 걸었는데 해가 다 진 이 순간까지도 걷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서러웠다. 두고 온 회사 생각이 났다. 내가 아무리 많이 일하고 열심히 일해도 진척도는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아무도 몰라주는 나만의 레이스.


또 잔뜩 붙은 도깨비바늘. 무한리필이여 뭐여.


컴컴한 생태공원 벤치에 앉아 잠깐 쉬었다. 그냥 단순히 통증만 있었다면 참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느끼기에 이건 명백한 부상이었다. 다치면서까지 강행할 정도로 가치 있는 여행인가? 아니, 나는 이 여행이 끝나고도 건강하고 멀쩡한 신체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쭈그려 앉아 고민하다가 중대한 결론을 내렸다.


택시를 타자.


택시를 탄다는 건 내게 국토종주의 종료를 결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10년 전 숙박했던 자전거민박의 권유로 중간에 구간 점프를 하고 죄책감이 들어 한동안 걷지 못하고 오도카니 서 있어야만 했다. 그 무거운 마음이 아직까지 생생해서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구간을 걸어내리라고 다짐했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더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무릎이 아파서 다리를 절뚝이지 않으면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고 발과 종아리가 얼얼해서 쉬려고 앉는 것조차 고민될 정도였다. 국토종주를 완주하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목표였지만 그게 내 몸을 잘 지켜내서 오래오래 운동과 활동을 즐기는 목표를 앞서가지는 않는다.



공원에는 차량 진입이 불가했기에 큰길로 나가서 택시를 불러 보기로 했다. 거의 기다시피 하며 긴긴 오르막길을 걸었다.



그런데... 택시를 잡는 데 필요한 건 내 의지뿐이 아니었다는 사실. 택시를 타는 데는 택시의 의지 역시 필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지금 이곳 함안에서 창녕 남지읍까지 차로 7분 거리. 대교 하나만 건너면 되는 이 짧은 운행의 콜을 아무도 잡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시도해 보고 또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해 볼까 했지만 애초에 몇 개 안 다니는 버스조차 이미 끊긴 상황. 그렇다. 유일한 방법은 걷는 것뿐이었다. 포기하려 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이 국토종주 대체 뭘까. 그나마 걸어가면 숙소와 식당이나마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산속에서 이렇게 되었다면 정말 방법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원래 자전거길은 조금 더 가서 있는 남지철교를 건넌 다음 마을을 들르지 않고 이어가는 루트지만 루트고 나발이고 그런 건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남지대교를 이를 악물고 건너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하루종일 외고 또 외었던 그 남지에 도착했다


정말이지 무릎이 반대로 접힌 느낌이었다. 이대로 무릎을 잃느니 그냥 오늘 하루 자고 내일 아침에 터미널에서 티켓 사서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작은 걸음걸음을 걸어냈다. 다리 건너로 빨간색 모텔 싸인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눈을 들어 보면 모텔이라는 두 글자가 조금씩 커져 있었다. 그거 하나 보고 버티며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암만 긴 다리라도 끝은 있었다. 모텔 싸인은 신기루가 아니었다. 대교를 건너자마자 위치한 진짜 모텔이었다. 원래는 시내에 좀 깔끔한 모텔을 갈 생각이었지만 이때는 정말 청결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내 한 몸 누일 자리만 있으면 될 정도로 지쳐있었기에 눈앞에 나타난 그 모텔을 향해 절뚝이며 걸었다.



미국 배우 캐시 베이츠를 닮은 사장님이 방을 내주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왈칵 울음이 터질 뻔했지만 막상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그냥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몇 번 몰아쉬고 말았다.


아... 정말 긴 하루였다.


대체 천장에 거울은 왜 있는 건데요... 쓸데없이 섹시하다


숨을 고르고 나니 그제야 모텔의 상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에 은은하게 배어 있는 담배 냄새, 할머니댁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꽃무늬 이불, 비누 위에 얹혀 있는 누가 언제 쓰고 둔 건지 감도 안 잡히는 뜯어진 여성청결제 봉지... 보통은 경악했을 법한 위생 상태였지만 이때의 나에게는 대궐집보다도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전날 노숙하고 오는 길이라서 더욱이 그랬다. 뜨거운 물 나오고 비누로 몸 씻을 수 있고 들킬 걱정 안 하면서 푹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쟁취하기 어려운 조건인지.



걷는 동안 '남지에 도착하면 뭘 먹지?' 하고 갖은 고민을 다 했지만 화장실 갈 힘도 없어서 한참을 참다가 절뚝이며 변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왕복하고 온 나로서는 나가서 먹는다는 옵션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천운으로 배달 어플을 쓸 수 있는 동네였기에 나는 얼른 밥을 시켰다.


치즈 잔뜩 올린 오븐스파게티와 스테이크 샐러드. 나는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욱여넣는' 느낌이 드는 음식을 정량보다 많이 시켜 와구와구 먹다가 남기곤 하는데 국토종주를 한다고 그 습관이 어딜 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스파게티 면을 잔뜩 집어 입안에 쑤셔 넣으며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을 치하했다.



이렇게 다이내믹했던 3일 차 종료. 다리가 하도 욱신거려서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질까, 내일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한 10km 정도만 가볍게 걷고 싶은데, 숙박할 데가 없겠지...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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