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실의 특권 안마의자를 아침까지 알차게 즐겨주었다. 몸이 힘들어서인지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늦게 모텔을 나섰다. 언제 한번 나오는 시간을 당겨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늦게 나오니 늦게 들어가서 늦게 자고, 다음날 또 늦게 나오는 악순환에 갇혀버렸다.
아침밥 메뉴를 고민하다가 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밥집을 선택했다. 살코기가 많다는 후기를 보고 꽂혀 버렸다. 그런데 받아 든 것은 실망스럽게도 당면순대가 가득한 순대국밥이었다. 천안의 딸로서 순대국밥에 당면순대 넣는 일 용서할 수 없다. 당면순대는 떡볶이와 함께 먹고, 국밥에는 야채순대를 넣어야 한다구요.
어쨌거나 시장 구경은 잘했다. 설이 다가와서인지 시장이 엄청나게 북적거린다. 광장시장 같은 서울에 큰 시장들을 가면 구경하는 사람과 호객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곳 시장에선 정말로 거래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새삼 신기했다. 그게 시장의 본질인데 말이다.
얼마 안 가 달성보에 도착했다. 날이 쌀쌀해서 코를 훌쩍거리며 걸었다. 위로 올라올수록 추워지긴 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구미보까지는 걸어보기로. 아무리 찾아봐도 근처에 잘 데가 보이지 않아서 열려있을지도 확실치 않은 청소년수련원을 찍고 가보기로 했다.
앉아 쉬던 벤치에서 보안스티커를 발견했다. 보안사업장에 들어갈 때 핸드폰 카메라에 붙여야 하는 스티커다. 구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반가운 내 이름
어제 늦게 잠들어서인지 걷는 동안 졸려서 힘들었다. 잠이 덜 깨서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컨디션이 악화되어 3시쯤 되니 머리가 아프고 몸이 처졌다.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표가 다시금 떠올랐다.
걷는 중에 찹쌀 잉어빵을 발견했다. '바싹바싹'한 찹쌀 잉어빵 왠지 맛있을 것 같길래 철물점 안에 들어가서 두 개를 주문했다. 계좌이체를 하니 금방 봉투에 담아 주신다. 10년 전과는 달리 현금 쓸 일이 딱히 없는 2024년의 국토종주.
구워놓은 지가 한참 되었는지 '바싹바싹'과는 거리가 먼, 완벽하다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붕어빵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참 맛있게 느껴졌다. 3개 살걸, 아니 5개 살걸... 하고 후회했다. 맛있는 걸 먹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왼쪽으로 가시오. 오른쪽으로도 가시오.
남구미대교를 건너며 구미로 넘어왔다.
10년 전에는 수줍어서 그림자만 찍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와도 삼각대 설치 가능.
구미는, 특히 구미공단은 나름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없어졌다지만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우리 회사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제품 생산 라인에 보내 한두 달 실습을 시켰다. 보통은 이 실습을 한 번 하는데, 내가 2년 차 되는 해 물량이 갑자기 증가해서 본사에서 제조 지원 인력을 차출해 보낸 덕분에 나는 구미 실습을 두 번이나 했다.
B2B 회사이다 보니 일을 하다 보면 제품을 만져볼 일도, 심지어는 볼 일도 잘 없는데 직접 조립을 하고 부품을 챙기는 등의 일을 해 보며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실습 자체를 떠나서도 구미에서의 생활은 꽤나 재미있었다. 당시 실습생들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교대 근무를 했는데, 야간 근무를 끝내고 아침에 삼겹살 회식을 한다던가 (지역 특성상 그런 식당들이 여러 개 있었다) 하는,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했던 경험을 많이 했다. 밤에 혼자 공포영화를 보러 갔다 오고, 친해진 라인 언니들과 닭갈비를 먹으러 가고, 당시 남자친구를 구미로 불러 주말 금오산 등산을 하는 등 이런저런 추억도 많다.
10년 전 국토종주를 하며 구미공단을 가로지를 때에는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완주 후 약 한 달 뒤 구미에서 실습을 하며 출퇴근 버스에서 블로그에 국토종주 글을 쓰곤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잘 아는 이 동네를 한번 더 걸을 수 있다니 참 즐거운 일이다.
내가 일했던 사업장까지 가볼까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돌아가야 하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거의 기고 있는 상태였기에 근처까지 와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나마 식당과 숙소가 있는 이 동네를 벗어나기 전에 결정이 필요할 것 같아 휴식을 취할 겸 밥을 먹으러 왔다. 걷다 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는 식당의 업종이 바로 중국집인데 이때까지는 필사적으로 피해 왔다. 되도록 그 지역 음식, 이곳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자는 것이 내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뒤져 봐도 딱히 구미 음식이랄 것을 찾기 어렵고,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라 문 연 집이 많지 않았던 데다가, 중국집을 이렇게 자주 마주치는데 한 번쯤 가줘야 의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이날의 메뉴는 중식으로 결정했다.
넓은 홀 여기저기에서 낮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보며 쉬고 있었던 식당 직원들에게 나는 뜻밖의 손님일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식사를 가져다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넉넉한 계란과 함께 고슬고슬 볶은 볶음밥, 그리고 찍먹파의 본분을 잠시 잊게 한 탕수육 둘 다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음악이 내 취향이었다. 중고등학생 때 들었던 노래들, 브아걸의 식스센스, 에픽하이의 One, 카라의 Pretty Girl 등을 들으며 역시 이때 노래가 좋았지, 하고 추억에 잠겼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14-15세 때 주로 들은 노래가 평생의 음악 취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내가 듣기에 별로인 요즘 노래들이 다른 세대에게는 명곡이 되겠지. 다시 들어도 정말 좋은데 추억보정이 된 거라니 믿을 수 없다.
근처 카페에 앉아 지도를 펼쳐 놓고 앞으로 남은 날과 거리를 따져 보았다. 계획한 거리만큼 매일 걸어준다고 가정하면 아쉽게도 딱 하루가 모자라게 된다. 서울쯤 가면 무거운 배낭을 집에 두고 가벼운 몸으로 진도를 쭉쭉 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지에서 부상으로 쉬지만 않았어도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교훈을 곱씹으며 이날의 여정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은 데다가 날이 추워 무리해서 걷거나 노숙을 하면 병이 날 확률이 높았다. 하루를 통으로 쉬느니 걷는 거리를 줄이는 편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여정을 일찍 마무리하는 대신 근처에 있는 모텔 중 가장 멀리 있는 곳에서 숙박하기로 결정했다. 발을 질질 끌며 짧지만은 않은 거리를 걸었다.
"네, 키는 거 신발 벗는 데다가 낑가 주셔야 돼요~ 네~"
방에 들어오자마자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세상 우아하신 목소리로 네이티브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사장님. 방이 좀 춥다 싶었는데 보일러를 올리고 잠깐 있으니 달궈진 후라이팬마냥 뜨끈뜨끈해졌다.
왼쪽 햄스트링이 계속 당겨서 매일 파스를 붙여 왔는데, 샤워하려고 뜯다가 피부가 까지고 말았다. 근육도 다치고 피부도 다치고 아주 대환장 파티로구나. 따끔거려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푹 자고 다음날부터는 출발 시간을 좀 당겨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절절 끓는 온돌바닥을 즐기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