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고향 땅
백신 접종 완료자에 대해 14일의 격리가 면제되고 고향을 다녀왔다. 영국을 올 때엔 이곳에 직장을 잡고 살리라는 단단한 목표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기에 3년의 타향살이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1년 후 휴가를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어딜 오도 가도 못했다. 가족들과의 밥상이 그립고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고팠다. 한국의, 특히 지하철의 깨끗함을 동경하게 되고 신속한 행정 및 일처리 등을 사모하게 됐다. 한국은 여전히 내가 살고 싶은 곳이다.
유튜브에서 보는 한국 프로그램 중에서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울컥했다. 특히 코로나 전 유퀴즈에 나오는 일반 시민분들 중에서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정말 그랬다.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된 귀국 절차들을 지나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서 서울로 향할 때 맑고 따뜻한 날씨는 나의 마음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을 만나 꼬옥 안았다. 울지 안으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여러 말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꽤 오랫동안 아빠와 엄마를 안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 길거리를 걷는 것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것 없었다. 도착과 동시에 편안했다. 한국어를 쓰는 것, 망설임 없이 대화를 하는 것이 이렇게 편할 줄 알고 있었다. 정말 편했다.
계획하지 않은 3년의 공백 때문에 처리해야 될 일들이 있어서 바쁘게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치과 및 병원도 가서 치료 및 검진도 받았다. 의료 시스템, 역시나 최고다.
운 좋게도 휴가 내내 날씨가 정말 좋았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항상 피곤해서 부모님 집만 가면 집밥 먹고 누워서 쉬기 바빴다. 부모님은 항상 나와 드라이브를 가거나 좋은 곳 구경 가길 원했지만 나는 그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부모님과 많은 곳들을 돌아다녔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나도 오랜만에 소풍? 수학여행 가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3주를 거의 부모님과 붙어있었다. 대학 때 자취를 시작한 후 최장 기간 부모님 집에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도 앞으로 이런 긴 휴가가 있을까 하셨다. 있더라고 내가 집에 이렇게 오래 있겠냐 하셨다. 3주 동안 많은 것들을 같이 하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부모님의 모습,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부모님도 나에 대해 그러셨을 것이다.
평소 말이 많은 없는 아빠는 내 영국 생활에 대해 자주 물어봤다. 때로는 그냥 옆에 앉아 내 손을 꼭 잡거나 등을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휴가가 점점 끝을 향해갈 때, 엄마는 내 손을 자주 잡으며 '한국에 언제 완전히 올 거야?' 하고 물으셨다. 그러곤 '그냥 묻는 거야. 엄마는 항상 아들이 하고 싶은 일 하면 행복해. 아들이 먼저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와'하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한국에 있으면 자주 볼 아들이 떨어져 있으니 서운한 마음을 최대한 최대한 숨기며 조심히 물어보셨다.
마음이 뭉그적뭉그적거렸다.